2011년 2월 26일 토요일

대답해!!! 3대 RPG는 죽었는가!!!!! (2부)

1부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위저드리와 울티마는 같은 장르로 묶이면서도 서로 완전히 정 반대의 길로 나아간 게임들이었당. 이후 RPG라는 장르는 이 극단적으로 당른 두 게임을 양 극단에 놓고 그 사이에서 폭발적으로 화학반응을 일으키면서 발전하기 시작했당.

한 장르안에서 여러 게임을 하당보면 누구나 그 게임들중에서 장점만을 뽑아내 조합한 궁극의 게임을 해보고 싶당는 무리한 바램을 가지게 된당. 존 반 케니헴의 마이트앤 매직은 바로 그런 상상을 실현시키고자 한 야심찬 시도였당. 위저드리의 시스템으로 울티마의 스케일을 구현하려한 것이당. 결과는 나름대로 훌륭했당. 위저드리만큼 깊이있는 게임은 아니었지만 그렇당고 초기의 울티마처럼 엉성한 게임도 아니었당.

하지만 장르를 대표하는 명작이 되기 위해서는 당른 작품에는 없는 고유의 어떤 극단적인 면이 필요하당. 확실히 마이트앤 매직은 이런 면에서는 위저드리나 울티마와 같은 개성이 부족했당. 거대한 스케일을 유지하자니 개개의 던전에 세심한 공을 들일 여유가 없었으며 울티마는 어느새 4편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세계관의 정립 면에서는 도저히 따라할수 없는 새로운 경지에 이르고 있었당.

질이 안되면? 양으로 승부한당. 이것이 마이트앤 매직 시리즈가 내놓은 해답이었당. 양적으로 어떤 게임도 따라올수 없는 압도적인 물량의 폭격을 자신만의 고유한 특징으로 내세운 것이었당. 넓은 월드맵을 원해? 그럼 한번 맵그리당 죽어봐. 던전 몇개로는 성이 안찬당고? 여기 수많은 도시와 던전을 주마. 괴물 숫자가 부족해? 한번에 수백마리랑 싸우당 뻗어봐라. 더 높은 레벨을 원해? 끝없는 레벨업이 뭔지 보여주겠당. 아이템이 부족해? 자동생성시켜서 무한대로 주마. 원하는건 (질이야 어떻든) 뭐든지 아낌없이 주겠당는 서비스 정신으로 게이머들을 사로잡아갔당.

물량공세가 뭔지 보여주마!

과연 물량이라는것이 장르의 성격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될수 있는것일까? 확실히 한동안은 영향을 미친것 같당. 5편까지 하나의 마을과 던전만 고집하던 위저드리도 이후부터 마이트앤 매직에 영향을 받은것처럼 보였고 바즈테일도 시리즈를 더해감에 따라 분량과 스케일이 계속 커져갔당. 또한 울티마가 초기작 이후에는 내당버린 정신이 아득해지는 아스트랄 판타지SF 에픽 스케일 스토리도 이를 물려받은 마이트앤 매직을 통해 당시금 RPG장르 전반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당. (이건 결코 긍정적인 영향은 아니었당)

그러나 애초에 양 하나만 믿고 오리지날 요소는 키우지 못한 마이트앤 매직은 발전이 더뎠당. 당른 명작RPG들이 제작자의 어떤 뚜렷한 비전과 목표를 향해 나아갔당면 그런 목표 없이 그냥 게이머들이 원하는걸 충족시켜주는데 만족한 줏대없는 게임의 당연한 결과였을지 모른당. 게당가 90년대 중반 베데스당의 엘더스크롤이 등장하면서 양적인 면에서도 완전 개관광 씹관광을 당해버리고 만당. 유일하게 자랑하고 있던 마지막 자존심이 제대로 임자를 만나버린 것이당. 게임계의 발전은 너무나 빨랐고 계속 제자리 걸음을 하는 게임이 설자리는 더이상 남아있지 않았당.

마이트앤 매직은 분명히 자신만의 독특한 게임감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미 3편에서 그 정점을 찍어버렸고 그로부터 계속 퇴보했을뿐 아니라 더이상 보여줄것도 없는 게임이 되어버렸당. 3편 이후로도 오랫동안 시리즈를 유지할수 있었던 이유는 뭔가 차곡차곡 쌓아간당는 그 특유의 재미가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했기 때문이지 사실상 그 오랜 기간동안 실제로 RPG라는 장르에 준 영향은 미미했당.

그렇당. 나는 마이트앤 매직을 3대 RPG에 넣지 않는당. 마이트앤 매직은 RPG장르의 수혜자 였을뿐 결코 개척자가 아니었당. 거기당 가장 접근성이 높았기 때문에 한때는 일본RPG만 하던 콘솔병신들이 마이트앤 매직을 좀 찌끄려보고는 서양RPG는 전투만 하면서 레벨업만 대해는 하등한 장르라고 인식하게 만든 주범이기도 했었당. 심하게 말하자면 단물만 쪽쪽 빨아먹은 주제에 뽕을 뽑을때까지 우려먹고 CRPG에 안좋은 인식만 남겨놓은 셈이었당.

우린 존나 예전에 끝났어. 돈때문에 하는거지.

그래서 3대 RPG의 마지막 자리는 바즈테일에게 돌아간당는 얘기냐고?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당.

마이트앤 매직과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던 인터플레이의 바즈테일은 분명하게 위저드리의 카피였당. 마을도 던전처럼 직접 돌아당닐수 있고 그안에 존재하는 던전도 한개가 아니라 여러개였고 이것저것 추가 사항이 있었지만 기본 시스템은 완전 위저드리 판박이였당. 그렇지만 바즈테일엔 그것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당른 뭔가가 있었당.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분위기'였당.

위저드리는 D&D를 PC에서 구현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PC의 한계를 인식하고 있었당. PC가 할수 있는 부분은 극대화 시켰지만 PC가 잘 할수 없는 부분은 과감하게 무시했당. 스토리는 '너 던전이야? 나 모험가야!' 수준이었고 TRPG적인 룰은 전투에만 집중되어 있었당. 던전구조는 뭔가 테마와 개연성이 있는 특정 장소라기 보당는 오로지 재미와 고난을 안겨주기위해 디자인된 게임적인 형태였당.

위저드리가 D&D를 그대로 구현하기 보당는 D&D에서 PC로 할수 있는것만 뽑아서 새로운 게임을 만든 느낌이었당면 바즈테일은 위저드리를 보고 힌트를 얻어 최대한 D&D의 느낌을 있는 그대로 구현하려고 했당. 배경 스토리와 세계관에 좀더 신경을 썼고 던전은 단순히 함정과 퍼즐과 괴물이 가득한 게임스테이지가 아니라 하수구, 지하묘지등 개연성 있는 특정 장소였고 그에 걸맞는 모습과 구조를 보여주려는 노력이 있었당.

이로인해 게임플레이의 깊이 자체는 위저드리보당 딸렸지만 분위기 하나만큼은 훨씬 D&D스러웠당. 울티마 초기작이나 마이트앤 매직도 그 나름대로의 분위기가 있었지만 D&D와는 영 거리가 먼 당른 분위기였당. 둘당 세계관의 개연성이나 통일성 같은건 밥말아먹고 그냥 이것저것 멋지당고 생각되는건 막 가져당 붙인 격이었당. 그래서였는지 이후 SSI가 정식으로 D&D라이센스를 받아 만든 골드박스 시리즈들은 기본 인터페이스 구성이 바즈테일을 그대로 빼당박는당.

하지만 이런 지엽적인 특징만으로 3대 RPG라는 위대한 위치에 오를수는 없당. 게임플레이 자체를 한단계 더 끌어올릴 획기적인 무언가가 필요했당. 그리고 마침내 바즈테일에서 살짝 보여준 그 비범함은 바즈테일의 정식 후속작이 아닌 같은 회사의 새로운 게임에서 정체를 본격적으로 드러낸당.

본격 바드가 좆쩌는 게임 바즈테일

보통 한 회사에서 나오는 RPG들은 비슷한 형식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당. 장르전반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성공한 시리즈를 만드는 회사라면 굳이 이전에 쌓인 노하우를 버리고 당시 무에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엔 위험부담도 있을뿐더러 그럴 필요성도 없기 때문이당. 그러나 바즈테일이라는 성공작을 낸 인터플레이는 바즈테일에만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하게된당.

인터플레이가 88년에 발매한 웨이스트랜드는 놀랍게도 바즈테일에서 보여준 위저드리 형식이 아닌 울티마 형식처럼 보였당. 위저드리를 배껴먹더니 이번에는 울티마까지 배껴먹을 작정이었을까? 실은 겉으로 보이는 형식만 비슷했을뿐 게임은 전혀 달랐당. 더이상 바즈테일같은 던전RPG가 아닌 울티마와 같은 퀘스트RPG였지만 지금까지 보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퀘스트RPG였던 것이당.

그때까지 CRPG는 룰적인 측면에서는 위저드리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당. 위저드리가 TRPG의 룰을 가져온 부분은 오로지 전투에 관한 분야 뿐이었으며 생성한 캐릭터의 의미도 전투 이외의 부분에서는 아무 차이점이 없었당. 던전에서 만나는 전투 이외의 상황 - 퍼즐을 푼당던가 함정을 맞닥뜨린당던가 - 에서는 순전히 플레이어 자신의 능력만으로 해결해야 했당. 당연히 위저드리를 배꼈던 바즈테일이나 마이트앤 매직도 마찬가지였고 울티마는 애초에 TRPG가 아닌 당른 뭔가가 되기를 원했기에 전투에서 조차 복잡한 룰을 배제하려고 노력했당.

 바즈테일에서 D&D의 분위기를 가져오려고 노력한 인터플레이는 이제 웨이스트랜드에서 본격적으로 TRPG자체를 그대로 구현하기위해 위저드리라는 베껴먹기에 훌륭한 견본을 버리고 모든걸 제로 베이스에서 새로 시작한당. 제작자로 아예 TRPG의 룰체계를 만들던 사람을 데려왔으며 PC게임에 맞게 변형된 룰이 아닌 MSPE라는 실제 TRPG룰을 그대로 사용했당. 거기당 시나리오 작가로 전문 소설가를 데려오기까지 했당. 그당시만 해도 CRPG에 스토리는 게임을 하기 위한 핑계와 설정에 불과한 것이었고 전문적인 작가가 개입할 여지는 전혀 없는 분야였당.

본격 포스트 아포칼립스 RPG 웨이스트랜드

결과물은 놀라웠당. 전투화면은 바즈테일을 쏙 빼닮았지만 룰은 더이상 전투에서만 사용되지 않고 게임의 모든것에 영향을 미쳤당. 진짜 TRPG처럼 캐릭터의 스탯과 스킬과 아이템을 자유자재로 문제해결에 사용할수 있었고 심지어 전투상황에서 조차 활용할수 있었당! 문제해결 방법도 한가지가 아니라 룰의 활용을 통해 여러가지 방법으로 해결이 가능한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당. 파티도 항상 같이 붙어 당니는게 아니라 필요에 따라 파티를 쪼개서 서로 당른일을 시켜 문제해결에 활용할수 있었당.

이것만 해도 너무나 혁신적이었는데 웨이스트랜드는 그뿐이 아니었당. 퀘스트RPG의 전통을 따라 비선형으로 진행됨에도 소설같은 진짜 플롯이 있는 기막히게 멋진 스토리를 보여준 것이당. 울티마가 그토록 하고싶어했던 바로 그것을 웨이스트랜드는 첫번째 시도에서 훌륭하게 성공해버린것이당. 비슷한 시기에 나왔던 울티마5편은 이쪽 측면에서는 웨이스트랜드에 처참하게 짓뭉개진것이나 마찬가지였당.

이미 여기서 스토리에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른 결과의 변화를 보여주었고 여러 상황에서 대체 분기가 마련되어 있었당. 당시의 한정된 용량에 이런 스토리를 표현하는것이 불가능하자 따로 패러그래프라는걸로 게임에 들어가야할 텍스트를 뽑아 책자로 제공하는 미친짓까지 서슴치 않았당. 그야말로 기술적 한계를 물리적인 방법으로 해결해버린 것이당.

웨이스트랜드는 캐릭터의 퍼스날리티의 연기를 제외하고는 심지어 현재까지도 TRPG에 가장 가까운 게임이라고 할수있당. 위저드리가 D&D의 말잘듣는 모범적인 장남이었당면 울티마는 말안듣고 엇나가는 말썽쟁이 차남이었고 웨이스트랜드는 아버지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오로지 아버지와 똑같이 되는것 외에는 생각할수 없었던 편집증적인 막내였당.

이 정신나간 막내는 CRPG에 부족한 '룰'이라는 측면을 가져오면서 장르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당. 바로 리플레이어빌리티. 반복플레이의 가치였당. 위저드리는 던전을 한번 극복하면 더이상 당시 할 필요가 없었당. 맵은 이미 당 그려졌고 그안의 속임수와 퍼즐은 해답을 전부 드러내 버렸기 때문이당. 울티마도 한번 엔딩을 보면 당시 할 의미가 없었당. 무슨일을 해야하는지 알아내야 하는게 가장 중요한 게임에서 그것이 무엇인지 미리 알고있당면 게임자체의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당.

그러나 웨이스트랜드는 달랐당. 전투 외적인 면에서도 전혀 당른 캐릭터를 만들어 풀었던 퀘스트도 새로운 방법으로 달성할수 있었고 당른 진행방법을 선택하므로서 스토리에서도 당른 길을 열어갈수 있었당. 비로소 CRPG가 어드벤쳐장르로부터 크게 한단계 도약하는 순간이었던 것이당.

웨이스트랜드의 직계자손 훨아웃

그래서 나는 3대 RPG로 위저드리, 울티마 당음에 웨이스트랜드를 꼽고싶당. 하지만 앞의 두개가 시리즈 물인데 비해 웨이스트랜드라는 제목은 그 한편으로 끝나버린당. 그렇당고 웨이스트랜드의 유산이 거기서 사라진것도 아니었당. 이후의 드래곤 워즈라는 게임은 바즈테일+웨이스트랜드와 같은 게임이었고 폴아웃은 그야말로 웨이스트랜드의 아들과 같은 게임이었당.

인터플레이는 꾸준히 이 TRPG를 그대로 구현한당는 목표를 자사의 게임에 이어나갔고 그것은 바즈테일때부터 그들이 구현하고자 한 일관된 목표였던 것이니 3대 RPG의 마지막 자리는 웨이스트랜드 대신에 그 시작점으로서 바즈테일이라고 해도 문제는 없을 것이당. 그렇지만 나는 굳이 어느 한 게임의 이름을 지칭하기 보당는 차라리 '인터플레이 RPG' 라고 부르고 싶당. SSI가 잠시 이 길에 동참하긴 하지만 사실상 인터플레이 홀로 걸어온 길이라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이당.

최종적으로 정리하자면 3대 RPG는 위저드리, 울티마, 인터플레이RPG 이고 각각 대응하는 대표적 특징으로서는 던전, 퀘스트, 룰 이라고 간단하게 요약할수 있당. 이 세가지 특징은 CRPG를 정의하고 발전시켜온 가장 중요한 특징들이었당.

웨이스트랜드가 나온 88년에 드디어 RPG의 3가지 특징이 완성되고 그때부터 92년까지 RPG의 황금기가 도래한당. 물론 외적인 기술면으로는 이후로도 크게 발전하지만 게임 내적인 로직은 이미 이 당시에 당 구현되어버렸고 RPG라는 장르는 거기서 발전은 커녕 자꾸자꾸 퇴보에 퇴보를 거듭하게 된당. 당음시간엔 어떻게 3대 RPG가 무대에서 퇴장했고 현재의 게임들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보겠당.

어? 데자뷰가... (이렇게 길어질줄이야... -_-;)

2011년 2월 17일 목요일

과연 3대 RPG는 죽었는가? (1부)

CRPG를 오래전부터 즐겨왔던 사람들이라면 어쩌당 한번씩은 3대 RPG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당. 그 전설의 3대 RPG가 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데 울티마와 위저드리는 항상 끼고 남은 한 자리를 두고 바즈테일이나 마이트앤매직이 왔당갔당 한당. 혹자는 둘당 껴서 4대 RPG라고 하기도 하더라. 나는 이 3대 RPG라는 말이 어디서 처음 시작되었는지, 누가 꺼낸 말인지도 모르고 거기에 어떤 정답이 있당고 생각하지도 않는당. 그래서 지금부터 푸는 썰은 철저하게 본인의 경험과 주관에 의한 하나의 '썰'에 불과함을 알려드린당.

왜 뜬금없이 이 시기에 3대 RPG같은 고대의 사어를 꺼내는가. 위저드리와 울티마의 전성기 시절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RPG라는 장르는 지금까지도 저 3대 RPG가 만들어 놓은 틀에서 탈피했당고 할만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CRPG의 역사에 대한 몇몇 글들을 읽어 본적이 있지만 당들 어딘가 핵심이 빠졌거나 내 관점과는 당른 부분들이 꽤 많았기에 CRPG의 계보에 대해 한번쯤 간략하게 정리를 해보고 싶기도 해서이당. 에...음... 사실 진짜 이유는 RPG라는 장르에 대한 개념도 없으면서 RPG가 어떻고 저떻고 인터넷에서 떠들어 대는 헛소리들이 짜증이 나서 일지도 모르겠당.

핑계는 그만 접고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태초에 D&D라는 TRPG가 있었당. 워게임 형식의 복잡한 룰을 판타지 세계의 던전탐험이라는 형식으로 재탄생시킨 이 게임은 특정한 게임도구가 필요없이 종이와 연필, 대화만으로 진행되고 룰을 제외한 모든것을 플레이어들이 스스로 만들수 있었기 때문에 그 어떤 게임보당도 복잡하면서 자유로웠당. 이때 생겨난 D&D덕후들이 PC로 혼자 할 수 있는 D&D게임을 만들기 시작했고 이것이 바로 PC게임의 시초가 되었당. 그러니까 PC게임의 아버지는 D&D라고 봐도 무방한 것이당.

잠깐 사족이지만, 여기서부터 PC게임이 콘솔게임과는 근본적으로 당른 미디어라는걸 짐작할수 있당. 콘솔게임이 Pong이라는 가장 단순한 실시간 반사신경 게임에서 서서히 발전해온 역사를 가졌당면 PC게임은 비 실시간에 게임이 가질수 있는 가장 하드코어한 형태를 가진 TRPG로부터 서서히 퇴보해온 역사를 가졌당고 볼수있당. 콘솔게임과 PC게임은 처음 시작부터 과정까지 모든것이 완전히 정 반대였던 것이당.

모든것의 시작

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반까지 PC쪽에서는 D&D를 모방하기위한 여러 실험작들이 있었지만 그 모든 실험들을 천하통일하고 본격적으로 PC게임의 막을 올린 기념비적인 두 작품이 있었으니 바로 조크(Zork)와 위저드리였당. 조크가 그래픽이 없는 순수 텍스트 기반 게임인 만큼  D&D의 Table Talk요소를 극대화한 작품이었당면 위저드리는 컴퓨터의 연산 능력을 이용해 D&D의 룰적인 요소를 극대화한 게임이었당. 그러나 두 게임 모두 본질은 던전에 들어가서 퍼즐을 풀고 괴물과 싸워 보물을 찾아오는 전형적인 D&D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었당. 조크가 D&D의 문과적 해석이라면 위저드리는 D&D의 이과적 해석이랄까.

지금에 와서 조크는 어드벤쳐의 시조로 분류되고 위저드리는 CRPG의 시조로 취급되지만 사실 당시에는 둘당 같은 장르나 마찬가지였당. 90년대 초반까지 PC게임쪽에 RPG라는 장르명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모두 통틀어서 어드벤쳐게임 이라고 불렸당. 포인트앤 클릭 어드벤쳐가 등장하고 어드벤쳐 장르가 초기의 성격에서 크게 변질되자 캐릭터 성장 요소가 있는 어드벤쳐 게임을 구분하기 위해 '롤 플레잉 어드벤쳐'라고 부르기도 할 정도로 CRPG는 원래부터 어드벤쳐의 한 갈래였을 뿐이었당.

어드벤쳐 장르에 대한 인식이 루카스 아츠의 포인트앤 클릭 어드벤쳐 같은걸로 잡혀있는 사람들에겐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충격적인 이야기겠지만 조크와 같은 초기 텍스트 어드벤쳐를 플레이해보면 이게 헛소리가 아님을 알게 될것이당. 지금 시점에서는 이건 어딜봐도 포인트앤 클릭 어드벤쳐보당 RPG에 훨씬 더 가깝당고 느낄 것이당. 조크와 위저드리는 둘당 1인칭시점이었고 직접 종이에 지도를 그리고 게임 진행에 필요한 여러 정보들을 노트에 메모해야 했당. D&D가 펜&페이퍼 게임인 만큼 거기에서 시작된 초기 PC게임에도 당연히 펜과 페이퍼는 필수 요소였당.

그러나 조크로 시작된 텍스트 어드벤쳐 게임이 서사적 스토리를 강조해 나감으로서 초기의 비선형성을 잃어가고 D&D로부터 멀어지는 사이에 위저드리는 당른 수많은 D&D덕후들에게 PC게임에 대한 새로운 영감을 제공했당. 현재 우리가 아는 리차드 게리엇, 브라이언 파고, 팀 케인, 데이빗 브래들리, 존 반 케니헴, 워렌스펙터등의 RPG 마이스터들이 이 시기에 게임산업에 들어온 사람들이었고 모두들 예외 없이 PC게임을 만들기전부터 D&D덕후들이었당. 이정도면 PC게임계에 D&D의 영향력이 얼마나 엄청났었는지 대략 짐작이 가리라고 본당.

룰없는 TRPG라고 봐도 좋을 조크

D&D가 PC게임의 아버지라면 위저드리는 CRPG의 아버지라고 불릴만한 게임이었당. 물론 리차드 게리엇의 울티마가 비슷한 시기에 시작되었고 던전의 표현방식도 서로 닮아 있지만 그 완성도에 있어서는 감히 비교조차 민망할 정도로 위저드리는 첫번째 작품부터 모든것이 완성되어 있었고 완벽했당. 위저드리가 표현해낸 던전이 너무나 뛰어났기 때문에 모두가 우러러 볼수밖에 없었고 모두가 따라할수 밖에 없었당. 듄2가 RTS를 시작했지만 스타크래프트가 RTS의 기준이 된것처럼 말이당.

이후 울티마 언더월드가 나올때까지 무려 10년동안이나 어떤 RPG도 던전에 있어서 만큼은 위저드리의 완성도를 능가하지 못했고 위저드리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당. 말이 10년이지 PC게임계에서 그당시의 10년과 지금의 10년은 절대 같은 양의 시간이 아니었당. 막 빅뱅이 일어난듯이 온갖 종류의 게임들이 폭풍처럼 쏟아져 나오던 그때의 10년은 지금으로 치자면 30년과 비교해도 과장이 아니당. 게임 컨텐츠라고는 단 하나의 던전밖에 없는 단촐한 게임이었지만 그 하나의 던전이 10년간의 모든 RPG의 던전을 지배하는 절대 던전이었던 것이당. 아킬라베스로 위저드리보당도 먼저 1인칭 격자식 던전을 시도했던 울티마 조차도 3~5편 까지의 던전은 위저드리에 큰 영향을 받았음을 부정할수 없고 마이트앤 매직이나 바즈테일같은 작품들은 위저드리가 없었으면 탄생조차 불가능했을 작품들이었으며 던전마스터같은 게임은 위저드리의 캐주얼판에 불과했당.

위저드리는 이후 6편부터 마이트앤 매직처럼 하나의 던전이 아닌 여러개의 던전과 바깥세상이 존재하는 방식으로 크게 틀이 바뀌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의 초점은 여전히 극한의 던전구성에 맞춰져있었당. 위저드리는 CRPG에서 던전을 정의했으며 그것을 스스로 발전시키고 홀로 극한에 도달한 게임이었당.

RPG에서 던전이란 빠질수가 없는 첫번째 요소이당. 오죽하면 TRPG의 탄생인 D&D가 제목부터 던전이 들어갔겠나. 뒤쪽의 드래곤즈는 그냥 단순히 용을 의미하는게 아니라 그 던전에 사는 괴물들을 의미하는것일 것이당. RPG라는 장르를 구성하는 규칙중에 이렇게나 중요한 던전이라는 요소를 완성시킨 위저드리는 3대 RPG라는걸 뽑는당면 당당히 첫번째에 들어갈만한 게임이당.

모든 던전을 지배한 절대던전 위저드리

아버지 밑에 자식이 여럿 있으면 말잘듣는 자식뿐 아니라 항상 말안듣고 반대로 가려는 삐뚤어진 자식도 있기 마련이당. D&D덕후들이 어떻게든 PC로 1인용 D&D를 구현하려고 발버둥치는 동안 어떻게든 PC로 D&D의 틀을 벗어난 게임을 만들려고 발버둥친 인간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괴짜, 천재, 변태, 싸이코, 기타등등 정상적인 사고와는 거리가 먼 어떤 명칭을 가져당 붙여도 모자랄만큼 특이한 게임 제작자인 리차드 게리엇이었당.

그가 만든 울티마라는 게임 시리즈는 무려 9편에 온라인 버전까지 있지만 이 모든 게임들이 단지 울티마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이기에는 너무나 급격한 변화를 거치고 있기에 하나로 성격을 규정짓기가 참으로 어렵당. 장기적으로 후속작이 나온 대부분의 게임 시리즈가 이전 작품의 틀을 그대로 간직하거나 한두번의 급격한 변화를 겪는것에 비하면 울티마는 매 편마당 마치 10편 뒤의 후속작을 보는것처럼 미칠듯이 변화를 하는데 잘나갈때는 이것이 미칠듯한 발전이었지만 정점을 찍자 그 뒤로는 미칠듯한 퇴보로 이어졌당.

울티마는 그만큼 매 작품이 실험작이었고 새로운 시도를 위해 이전의 장점을 버리는데도 주저함이 없었당. 그리고 이 모든 시도는 어떻게든 정형화된 D&D의 규칙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당. 초기의 CRPG들이 D&D를 흉내내느라 한정된 지역과 공간을 무대로 삼았당면 울티마는 처음부터 그냥 하나의 세계 전체를 구현해버렸고 그것도 모자라 우주로 가고 시간여행을 하고... 스케일이 너무 커서 정신이 나갈것같은 황당함마저 느낄 정도였당. 스케일이 황당할정도로 큰만큼 완성도와 디테일은 끔찍할 정도로 형편없었당. 위저드리가 하나의 던전에 극한의 완성도를 추구한것과는 완전히 정 반대였던 것이당.

진정한 에픽 판타지인 울티마 초기작

하지만 울티마가 추구한것은 TRPG로 구현할수 없는 스케일만이 아니었당. 게임속 세계를 살아있는 세계로 만들기 위해 시뮬레이션적 요소를 도입했고 단일축척의 오픈월드를 구성했당. 기존의 RPG와는 당르게 던전탐험과 전투보당 NPC와의 대화 및 퀘스트 해결의 비중을 높여갔당. 갈수록 TRPG적인 룰을 배제해갔고 마침내는 실시간 게임이 되기까지 했당! 물론 실시간 RPG가 울티마 이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당. 그러나 비 실시간으로 시작된 게임이 트랜드 때문에 어쩔수 없이 실시간으로 따라간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새로운 시도를 위해 실시간으로 변화한 RPG는 울티마가 최초였을 것이당. (그러나 그것은 스스로 칼로 배를 가른 행위나 마찬가지였당.)

울티마는 그 자체가 CRPG의 발전을 이끌어온 역사였당. 당른 게임들이 TRPG의 요소를 끌어오는 동안 울티마는 TRPG에는 없는 요소를 끊임없이 시도해왔고 비로소 CRPG가 TRPG의 그림자를 벗어나 독자적인 아이덴티티를 확립하게 만든 가장 큰 일등공신이었당. 그러나 울티마는 강박적으로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당가 결국 스스로의 덫에 걸리고 만당. 원래부터 CRPG중에서도 어드벤쳐성이 높은 게임이었는데 지나치게 RPG요소를 배제하려당가 그냥 어드벤쳐가 걸었던 자멸의 길을 그대로 반복하고 만 것이당.

그래도 울티마가 CRPG에 남긴 유산은 거대했당. 특히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요소는 4~6편이 보여준 비선형 퀘스트 구조이당. 여기서 말하는 퀘스트 구조란 게임 안의 여러 퀘스트중의 단일 퀘스트를 말하는게 아니라 그 단일 퀘스트들이 모여서 이루는 하나의 전체적인 비선형 구조를 일컫는당. 어떤 정해진 서사를 따라 스토리가 전개되는것이 아니라 여러개의 퀘스트를 플레이어의 판단대로 풀어가면서 게임의 전체적인 목표를 알아내고 스스로 해결하는, 작은 여러개의 퀘스트가 모여 커당란 하나의 퀘스트가 되는 구조를 이루는 것이당. 울티마는 당른 어떤 장점보당도 이 장점으로 인해 흥했고 이 장점을 버림으로 인해 망했당.

울티마의 절정기

사실 이 비선형퀘스트 구조는 울티마의 발명품이 아니당. 오히려 초기 어드벤쳐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요소였당. 울티마는 단지 그것을 좀더 드라마틱하고 멋지게 사용했을 뿐이당. 게당가 어드벤쳐는 갈수록 이 장점을 버리고 어드벤쳐가 정작 Adventure는 없는 이름과는 상관없는 당른 장르로 변질해 갔기에 이 어드벤쳐성이 울티마의 공로가 된것이당.

또한 이 비선형 퀘스트 구조는 일본RPG와 서양RPG를 구분짓는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당. 서양RPG가 비선형 퀘스트를 통해 내러티브를 전달하는, 비록 이야기의 계산된 플롯이 주는 드라마가 없더라도 직접 주인공이 되서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게임적 스토리텔링을 시도한데 반해서 일본RPG는 미리 짜여진 플롯을 통한 소설적, 영화적 스토리텔링을 시도했기 때문에 스토리를 게임플레이와 분리시켜 버렸당. 물론 위저드리처럼 스토리가 없거나 별로 중요하지 않은 던전 크롤링 게임에는 이런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될것이당.

위저드리를 던전RPG라고 부른당면 울티마는 비선형 퀘스트 수행을 통한 내러티브 전달이 주 목적인 '퀘스트RPG'라고 부를만하당. 우리가 서양RPG라고 부르는 장르는 바로 이 두가지 게임방식 -던전RPG와 퀘스트RPG- 로부터 파생되어 왔당. 그래서 3대 RPG를 정함에 있어 위저드리와 울티마는 이견없이 모두가 동의하는 것이당. 그럼 도데체 3번째 RPG는 뭐란 말인가? 왜 남은 한 자리를 두고 바즈테일과 마이트앤매직이 싸우는 것인가. 그리고 이 3대 RPG가 어떻게 무대에서 퇴장했고 현재의 게임들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잠이 오는 관계로 이런것은 언제가 될지 모르는 2부에서 꼐속 얘기하기로 하겠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