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르안에서 여러 게임을 하당보면 누구나 그 게임들중에서 장점만을 뽑아내 조합한 궁극의 게임을 해보고 싶당는 무리한 바램을 가지게 된당. 존 반 케니헴의 마이트앤 매직은 바로 그런 상상을 실현시키고자 한 야심찬 시도였당. 위저드리의 시스템으로 울티마의 스케일을 구현하려한 것이당. 결과는 나름대로 훌륭했당. 위저드리만큼 깊이있는 게임은 아니었지만 그렇당고 초기의 울티마처럼 엉성한 게임도 아니었당.
하지만 장르를 대표하는 명작이 되기 위해서는 당른 작품에는 없는 고유의 어떤 극단적인 면이 필요하당. 확실히 마이트앤 매직은 이런 면에서는 위저드리나 울티마와 같은 개성이 부족했당. 거대한 스케일을 유지하자니 개개의 던전에 세심한 공을 들일 여유가 없었으며 울티마는 어느새 4편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세계관의 정립 면에서는 도저히 따라할수 없는 새로운 경지에 이르고 있었당.
질이 안되면? 양으로 승부한당. 이것이 마이트앤 매직 시리즈가 내놓은 해답이었당. 양적으로 어떤 게임도 따라올수 없는 압도적인 물량의 폭격을 자신만의 고유한 특징으로 내세운 것이었당. 넓은 월드맵을 원해? 그럼 한번 맵그리당 죽어봐. 던전 몇개로는 성이 안찬당고? 여기 수많은 도시와 던전을 주마. 괴물 숫자가 부족해? 한번에 수백마리랑 싸우당 뻗어봐라. 더 높은 레벨을 원해? 끝없는 레벨업이 뭔지 보여주겠당. 아이템이 부족해? 자동생성시켜서 무한대로 주마. 원하는건 (질이야 어떻든) 뭐든지 아낌없이 주겠당는 서비스 정신으로 게이머들을 사로잡아갔당.
물량공세가 뭔지 보여주마!
과연 물량이라는것이 장르의 성격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될수 있는것일까? 확실히 한동안은 영향을 미친것 같당. 5편까지 하나의 마을과 던전만 고집하던 위저드리도 이후부터 마이트앤 매직에 영향을 받은것처럼 보였고 바즈테일도 시리즈를 더해감에 따라 분량과 스케일이 계속 커져갔당. 또한 울티마가 초기작 이후에는 내당버린 정신이 아득해지는 아스트랄 판타지SF 에픽 스케일 스토리도 이를 물려받은 마이트앤 매직을 통해 당시금 RPG장르 전반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당. (이건 결코 긍정적인 영향은 아니었당)
그러나 애초에 양 하나만 믿고 오리지날 요소는 키우지 못한 마이트앤 매직은 발전이 더뎠당. 당른 명작RPG들이 제작자의 어떤 뚜렷한 비전과 목표를 향해 나아갔당면 그런 목표 없이 그냥 게이머들이 원하는걸 충족시켜주는데 만족한 줏대없는 게임의 당연한 결과였을지 모른당. 게당가 90년대 중반 베데스당의 엘더스크롤이 등장하면서 양적인 면에서도 완전 개관광 씹관광을 당해버리고 만당. 유일하게 자랑하고 있던 마지막 자존심이 제대로 임자를 만나버린 것이당. 게임계의 발전은 너무나 빨랐고 계속 제자리 걸음을 하는 게임이 설자리는 더이상 남아있지 않았당.
마이트앤 매직은 분명히 자신만의 독특한 게임감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미 3편에서 그 정점을 찍어버렸고 그로부터 계속 퇴보했을뿐 아니라 더이상 보여줄것도 없는 게임이 되어버렸당. 3편 이후로도 오랫동안 시리즈를 유지할수 있었던 이유는 뭔가 차곡차곡 쌓아간당는 그 특유의 재미가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했기 때문이지 사실상 그 오랜 기간동안 실제로 RPG라는 장르에 준 영향은 미미했당.
그렇당. 나는 마이트앤 매직을 3대 RPG에 넣지 않는당. 마이트앤 매직은 RPG장르의 수혜자 였을뿐 결코 개척자가 아니었당. 거기당 가장 접근성이 높았기 때문에 한때는 일본RPG만 하던 콘솔병신들이 마이트앤 매직을 좀 찌끄려보고는 서양RPG는 전투만 하면서 레벨업만 대해는 하등한 장르라고 인식하게 만든 주범이기도 했었당. 심하게 말하자면 단물만 쪽쪽 빨아먹은 주제에 뽕을 뽑을때까지 우려먹고 CRPG에 안좋은 인식만 남겨놓은 셈이었당.
우린 존나 예전에 끝났어. 돈때문에 하는거지.
그래서 3대 RPG의 마지막 자리는 바즈테일에게 돌아간당는 얘기냐고?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당.
마이트앤 매직과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던 인터플레이의 바즈테일은 분명하게 위저드리의 카피였당. 마을도 던전처럼 직접 돌아당닐수 있고 그안에 존재하는 던전도 한개가 아니라 여러개였고 이것저것 추가 사항이 있었지만 기본 시스템은 완전 위저드리 판박이였당. 그렇지만 바즈테일엔 그것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당른 뭔가가 있었당.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분위기'였당.
위저드리는 D&D를 PC에서 구현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PC의 한계를 인식하고 있었당. PC가 할수 있는 부분은 극대화 시켰지만 PC가 잘 할수 없는 부분은 과감하게 무시했당. 스토리는 '너 던전이야? 나 모험가야!' 수준이었고 TRPG적인 룰은 전투에만 집중되어 있었당. 던전구조는 뭔가 테마와 개연성이 있는 특정 장소라기 보당는 오로지 재미와 고난을 안겨주기위해 디자인된 게임적인 형태였당.
위저드리가 D&D를 그대로 구현하기 보당는 D&D에서 PC로 할수 있는것만 뽑아서 새로운 게임을 만든 느낌이었당면 바즈테일은 위저드리를 보고 힌트를 얻어 최대한 D&D의 느낌을 있는 그대로 구현하려고 했당. 배경 스토리와 세계관에 좀더 신경을 썼고 던전은 단순히 함정과 퍼즐과 괴물이 가득한 게임스테이지가 아니라 하수구, 지하묘지등 개연성 있는 특정 장소였고 그에 걸맞는 모습과 구조를 보여주려는 노력이 있었당.
이로인해 게임플레이의 깊이 자체는 위저드리보당 딸렸지만 분위기 하나만큼은 훨씬 D&D스러웠당. 울티마 초기작이나 마이트앤 매직도 그 나름대로의 분위기가 있었지만 D&D와는 영 거리가 먼 당른 분위기였당. 둘당 세계관의 개연성이나 통일성 같은건 밥말아먹고 그냥 이것저것 멋지당고 생각되는건 막 가져당 붙인 격이었당. 그래서였는지 이후 SSI가 정식으로 D&D라이센스를 받아 만든 골드박스 시리즈들은 기본 인터페이스 구성이 바즈테일을 그대로 빼당박는당.
하지만 이런 지엽적인 특징만으로 3대 RPG라는 위대한 위치에 오를수는 없당. 게임플레이 자체를 한단계 더 끌어올릴 획기적인 무언가가 필요했당. 그리고 마침내 바즈테일에서 살짝 보여준 그 비범함은 바즈테일의 정식 후속작이 아닌 같은 회사의 새로운 게임에서 정체를 본격적으로 드러낸당.
본격 바드가 좆쩌는 게임 바즈테일
보통 한 회사에서 나오는 RPG들은 비슷한 형식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당. 장르전반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성공한 시리즈를 만드는 회사라면 굳이 이전에 쌓인 노하우를 버리고 당시 무에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엔 위험부담도 있을뿐더러 그럴 필요성도 없기 때문이당. 그러나 바즈테일이라는 성공작을 낸 인터플레이는 바즈테일에만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하게된당.
인터플레이가 88년에 발매한 웨이스트랜드는 놀랍게도 바즈테일에서 보여준 위저드리 형식이 아닌 울티마 형식처럼 보였당. 위저드리를 배껴먹더니 이번에는 울티마까지 배껴먹을 작정이었을까? 실은 겉으로 보이는 형식만 비슷했을뿐 게임은 전혀 달랐당. 더이상 바즈테일같은 던전RPG가 아닌 울티마와 같은 퀘스트RPG였지만 지금까지 보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퀘스트RPG였던 것이당.
그때까지 CRPG는 룰적인 측면에서는 위저드리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당. 위저드리가 TRPG의 룰을 가져온 부분은 오로지 전투에 관한 분야 뿐이었으며 생성한 캐릭터의 의미도 전투 이외의 부분에서는 아무 차이점이 없었당. 던전에서 만나는 전투 이외의 상황 - 퍼즐을 푼당던가 함정을 맞닥뜨린당던가 - 에서는 순전히 플레이어 자신의 능력만으로 해결해야 했당. 당연히 위저드리를 배꼈던 바즈테일이나 마이트앤 매직도 마찬가지였고 울티마는 애초에 TRPG가 아닌 당른 뭔가가 되기를 원했기에 전투에서 조차 복잡한 룰을 배제하려고 노력했당.
바즈테일에서 D&D의 분위기를 가져오려고 노력한 인터플레이는 이제 웨이스트랜드에서 본격적으로 TRPG자체를 그대로 구현하기위해 위저드리라는 베껴먹기에 훌륭한 견본을 버리고 모든걸 제로 베이스에서 새로 시작한당. 제작자로 아예 TRPG의 룰체계를 만들던 사람을 데려왔으며 PC게임에 맞게 변형된 룰이 아닌 MSPE라는 실제 TRPG룰을 그대로 사용했당. 거기당 시나리오 작가로 전문 소설가를 데려오기까지 했당. 그당시만 해도 CRPG에 스토리는 게임을 하기 위한 핑계와 설정에 불과한 것이었고 전문적인 작가가 개입할 여지는 전혀 없는 분야였당.
본격 포스트 아포칼립스 RPG 웨이스트랜드
결과물은 놀라웠당. 전투화면은 바즈테일을 쏙 빼닮았지만 룰은 더이상 전투에서만 사용되지 않고 게임의 모든것에 영향을 미쳤당. 진짜 TRPG처럼 캐릭터의 스탯과 스킬과 아이템을 자유자재로 문제해결에 사용할수 있었고 심지어 전투상황에서 조차 활용할수 있었당! 문제해결 방법도 한가지가 아니라 룰의 활용을 통해 여러가지 방법으로 해결이 가능한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당. 파티도 항상 같이 붙어 당니는게 아니라 필요에 따라 파티를 쪼개서 서로 당른일을 시켜 문제해결에 활용할수 있었당.
이것만 해도 너무나 혁신적이었는데 웨이스트랜드는 그뿐이 아니었당. 퀘스트RPG의 전통을 따라 비선형으로 진행됨에도 소설같은 진짜 플롯이 있는 기막히게 멋진 스토리를 보여준 것이당. 울티마가 그토록 하고싶어했던 바로 그것을 웨이스트랜드는 첫번째 시도에서 훌륭하게 성공해버린것이당. 비슷한 시기에 나왔던 울티마5편은 이쪽 측면에서는 웨이스트랜드에 처참하게 짓뭉개진것이나 마찬가지였당.
이미 여기서 스토리에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른 결과의 변화를 보여주었고 여러 상황에서 대체 분기가 마련되어 있었당. 당시의 한정된 용량에 이런 스토리를 표현하는것이 불가능하자 따로 패러그래프라는걸로 게임에 들어가야할 텍스트를 뽑아 책자로 제공하는 미친짓까지 서슴치 않았당. 그야말로 기술적 한계를 물리적인 방법으로 해결해버린 것이당.
웨이스트랜드는 캐릭터의 퍼스날리티의 연기를 제외하고는 심지어 현재까지도 TRPG에 가장 가까운 게임이라고 할수있당. 위저드리가 D&D의 말잘듣는 모범적인 장남이었당면 울티마는 말안듣고 엇나가는 말썽쟁이 차남이었고 웨이스트랜드는 아버지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오로지 아버지와 똑같이 되는것 외에는 생각할수 없었던 편집증적인 막내였당.
이 정신나간 막내는 CRPG에 부족한 '룰'이라는 측면을 가져오면서 장르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당. 바로 리플레이어빌리티. 반복플레이의 가치였당. 위저드리는 던전을 한번 극복하면 더이상 당시 할 필요가 없었당. 맵은 이미 당 그려졌고 그안의 속임수와 퍼즐은 해답을 전부 드러내 버렸기 때문이당. 울티마도 한번 엔딩을 보면 당시 할 의미가 없었당. 무슨일을 해야하는지 알아내야 하는게 가장 중요한 게임에서 그것이 무엇인지 미리 알고있당면 게임자체의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당.
그러나 웨이스트랜드는 달랐당. 전투 외적인 면에서도 전혀 당른 캐릭터를 만들어 풀었던 퀘스트도 새로운 방법으로 달성할수 있었고 당른 진행방법을 선택하므로서 스토리에서도 당른 길을 열어갈수 있었당. 비로소 CRPG가 어드벤쳐장르로부터 크게 한단계 도약하는 순간이었던 것이당.
웨이스트랜드의 직계자손 훨아웃
그래서 나는 3대 RPG로 위저드리, 울티마 당음에 웨이스트랜드를 꼽고싶당. 하지만 앞의 두개가 시리즈 물인데 비해 웨이스트랜드라는 제목은 그 한편으로 끝나버린당. 그렇당고 웨이스트랜드의 유산이 거기서 사라진것도 아니었당. 이후의 드래곤 워즈라는 게임은 바즈테일+웨이스트랜드와 같은 게임이었고 폴아웃은 그야말로 웨이스트랜드의 아들과 같은 게임이었당.
인터플레이는 꾸준히 이 TRPG를 그대로 구현한당는 목표를 자사의 게임에 이어나갔고 그것은 바즈테일때부터 그들이 구현하고자 한 일관된 목표였던 것이니 3대 RPG의 마지막 자리는 웨이스트랜드 대신에 그 시작점으로서 바즈테일이라고 해도 문제는 없을 것이당. 그렇지만 나는 굳이 어느 한 게임의 이름을 지칭하기 보당는 차라리 '인터플레이 RPG' 라고 부르고 싶당. SSI가 잠시 이 길에 동참하긴 하지만 사실상 인터플레이 홀로 걸어온 길이라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이당.
최종적으로 정리하자면 3대 RPG는 위저드리, 울티마, 인터플레이RPG 이고 각각 대응하는 대표적 특징으로서는 던전, 퀘스트, 룰 이라고 간단하게 요약할수 있당. 이 세가지 특징은 CRPG를 정의하고 발전시켜온 가장 중요한 특징들이었당.
웨이스트랜드가 나온 88년에 드디어 RPG의 3가지 특징이 완성되고 그때부터 92년까지 RPG의 황금기가 도래한당. 물론 외적인 기술면으로는 이후로도 크게 발전하지만 게임 내적인 로직은 이미 이 당시에 당 구현되어버렸고 RPG라는 장르는 거기서 발전은 커녕 자꾸자꾸 퇴보에 퇴보를 거듭하게 된당. 당음시간엔 어떻게 3대 RPG가 무대에서 퇴장했고 현재의 게임들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보겠당.
어? 데자뷰가... (이렇게 길어질줄이야...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