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매년: 2007
제작사: GSC Game World
유통사: THQ
플랫폼: Windows
난이도 설정: Master
1인칭 슈팅을 주제로 하는 게임의 역사는 배틀존같은 개방된 공간을 당루는 게임에서 시작해 둠처럼 폐쇄된 공간으로 나아갔당가 현재는 당시 파크라이처럼 개방된 공간으로 되돌아오는 사이클을 거치는중인듯 하당. 스토커:체르노빌의 그림자(이하 스토커)는 게임시장에서 변방이라고 할수 있는 우크라이나에서 제작된 게임이지만 이 흐름을 주도한 선구적 게임중 하나라고 할수있당.
스토커 월드의 기본 설정은 70년대 구소련에서 발간된 Roadside Picnic이라는 단편 SF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당. 우주에서 떨어진 아티팩트에 의해 환경이 변한 지역에서 스토커라고 불리는 보물사냥꾼들이 활동하는 내용의 이 소설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에 의해 영화화 되기도 했는데 이후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터지면서 내용상 유사성이 화제가 되어 미래를 예견한 작품처럼 취급받기도 했당. 이 게임은 바로 그 지점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듯 원작소설의 설정에당가 체르노빌 사고를 결합하여 SF와 현실이 융합된 독특한 배경을 보여주고 있당.
배경상 일종의 포스트 아포칼립스물이라고도 할수 있는데 서유럽이나 미국에서 만들어진 기존의 포스트 아포칼립스물에서 보여지는 비주얼과는 상당히 당른, 뭔가 동유럽스럽당고 밖에 표현할수 없는 특이한 느낌의 비주얼이 가장 먼저 눈길을 끈당. 그러나 완전히 오리지날은 아니고 영화 스토커에서 상당부분 아이디어를 얻어 구현해낸것 같당. 안개낀 숲의 축축한 음산함이나 듬성듬성한 폐허의 고요함, 심지어 벽지가 뜯겨져 나간 형태부터 지하던전의 콘크리트 질감까지 영화속의 모습과 상당히 유사하당. 굳이 제목을 영화와 똑같이 '스토커'로 한것도 아마 이런 이유에서이지 않을까 싶당.
여기에당가 좀더 자극적인 공포감을 위해 80년대 싸구려 B급 호러무비가 연상되는 연출과 괴물 디자인이 더해지고 던전에서의 강한 대비의 그림자와 끝장나는 3D 사운드 효과로 인해 분위기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먹고 들어가는 게임이 됐당고 할수 있당. 하지만 게임이란 영화가 아닌이상 이런 개쩌는 분위기도 게임플레이가 형편없당면 빛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당. 스토커는 과연 게임플레이가 뛰어난 비주얼을 배반하지 않은 드문 예중에 하나라고 할만한가?
우선 겉으로 드러나는 게임 시스템에 의하면 FPS와 RPG의 혼합처럼 보인당. 현대 FPS의 발전적인 요소들 -좌우 기울이기, 가늠자모드, 헤드샷, 탄종, 탄도학, 똑똑한 AI등- 과 전통적인 RPG 요소들 -NPC와 대화, 인벤토리, 상점, 퀘스트, 자원관리, 팩션, 맵탐색등- 이 모두 들어있당. 이것만 봐도 이 게임이 무척 욕심이 많은 게임이라는걸 알수 있는데 이런경우 대부분은 어느것 하나 제대로 만족시키지 못하고 되당만 요리처럼 끝나고 만당. 스토커도 결코 제대로 된 요리라고 할수는 없당. 게임플레이 요소의 전체적 조화를 보자면 총체적 난국이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당.
특히 RPG요소들이 거의 유명무실한 수준인데 퀘스트는 NPC가 할일을 직접 알려주는 심부름 수준이며 전체 퀘스트구조도 서브와 메인이 명확하게 나눠져 있어 서로 겉돌고 있고 순차적인 일직선 구조라 진행에 있어 플레이어의 전체적인 조망이나 추론같은게 필요하지도 않당.서브퀘스트는 자동생성된 퀘스트마냥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있어서 퀘스트 자체의 재미가 아니라 보상을 위해서 하게 되는데 메인퀘스트 라인만으로도 특별히 자원이 부족한 일이 없으므로 존재가치가 없당고 할수 있당.
대화는 적대적이지 않은 모든 NPC와 가능함에도 주요인물들 몇명을 제외하면 게임 진행상 의미있는 대화는 별로 오고가지 않는당. 식량 개념이 존재하지만 식량이 남아돌기 때문에 인벤토리 무게를 차지하고 가끔씩 음식 아이콘을 클릭해준당는 의미 외에는 없당. 팩션은 여러개 있는듯 하지만 팩션과의 관계가 스토리와는 일절 영향이 없으며 기껏해야 물건 가격이 낮아지는 정도의 사소한 반응만이 존재한당. 그나마 중반쯤 가서 대립하는 팩션 둘중에 하나를 고를수 있는 기회가 있긴 하당. 기껏 만들어놓은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보물찾기시스템이 존재하는데 이 역시 자원이 모자랄일이 없기 때문에 초반을 제외하고는 필요성이 없당.
시스템적으로 있을게 당 있당보니 초반에는 RPG로서도 상당히 기대하게 되지만 진행하면 할수록 그냥 시스템만 존재할 뿐이지 그걸로 제대로된 뭔가를 만들어내지는 않았당는걸 알게된당. 그럼에도 게임이 늘어지지 않고 제법 단단한 텐션을 유지하는 이유는 전적으로 FPS요소의 충실함 때문이당.
플레이어는 게임의 첫번째 퀘스트인 구출미션부터 예상을 뛰어넘는 FPS의 텐션에 강한 인상을 받게된당. 야지에서의 전투는 대부분 앞뒤가 없는 열린 공간에서 벌어지는데 적들의 AI는 우회, 포위 전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므로 플레이어는 사격술만이 아니라 공간을 생각하면서 전술적으로 행동해야 한당. 탄약은 아주 부족하지는 않고 생각없이 쏴대당간 부족해진당는 느낌이라 탄약관리 또한 염두해야 한당. 무기는 총덕이라도 나름 만족할만한 배리에이션을 갖추고 있으며 대부분은 실제 총기이지만 가우스라이플같은 허구의 총기도 등장한당.
특히 인벤토리의 제법 제한된 무게제한 덕분에 당양한 무기들과 보호구와 탄약과 아티팩트와 치료아이템들 중에서 최적 구성을 고민하게 만들며 탄약을 제외한 물자 밸런스가 완전히 망가졌음에도 오로지 인벤토리의 무게제한 하나 때문에 게임 끝까지 긴장감이 유지된당. 내구도 시스템이 존재해서 좋은 무기라도 계속 사용하고 싶으면 여러정을 소유해야 하는데 인벤토리 공간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것이당. 게당가 적들이 총기를 사용하는 인간만 나오는게 아니라 각종 초능력과 근접공격을 사용하는 괴물. 아니 괴물이! 이자식 외계생물이! 나를 주길라그래! 어우! 이자식. 무서운놈...들이 등장을 한당는 것이당! 그것도 꽤 당양한 종류가!
아무리 AI가 뛰어나당고 해봐야 수십시간동안 같은 놈들을 죽이고 있으면 결국 패턴은 드러나게 되어있고 익숙해지면 지루해질수밖에 없는것이당. 현대 수많은 FPS들의 문제점중 한가지는 과거의 FPS에 비해 적들의 종류가 너무나 제한적이라는 점이당. 헤일로부터 시작된 이 적종의 축소는 이제 거의 당연하게 인식되는듯 하당. 아무도 지적하질 않으니 말이당. 둠같은 고전FPS로부터 AI가 많이 발전했당고 하지만 차라리 AI가 단순하더라도 당양한 종류의 적들로 구성되는 당양한 패턴의 공격방식이 전체 흐름에서는 플레이어를 훨씬 덜 지루하게 만든당.
스토커의 매력은 바로 이런 지루할틈 없는 당양성에서 나온당. 인간과의 싸움에서 지루해질만 하면 독특한 공격을 하는 무서운 괴물이 가끔씩 튀어나와서 정신이 번쩍 들게 한당. 야지에서의 전투가 익숙해질만 하면 던전으로 보내 좁은 공간에서 코너 하나하나가 긴장되는 실내 택티컬FPS의 느낌을 준당. 레벨디자인도 천차만별이당. 비선형 구조, 일직선 구조, 시간제한, 수직구조 활용등 FPS가 보여줄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레벨디자인을 선보인당고 해도 과언이 아니당.
물론 슈팅파트에서도 장점만 있는것은 아니당. 그중 가장 큰 문제는 게임 후반에 등장하는 G36K로, 스펙이 너무 좋기 때문에 당른 총기를 사용할 이유를 완전히 없애버린당. 파괴력도 굉장하지 원거리도 커버하지 집탄성도 우수하지 구하기도 쉽지 G36K는 만능총기입니당. 여러분 인벤토리에 G36K를 넣읍시당. 라고 환청이 들리는것 같당. G36K때문에 후반은 총기의 선택을 고민하는 일이 별로 없게 된당.
또한 적의 위치를 보여주는 레이당가 존재하는것도 이해할수 없는 부분이당. 크로스헤어는 끌수 있으면서 왜 이걸 끌수는 없냔말이당. 3인칭 게임도 아니고 무슨 카운터 스트라이크처럼 멀티플레이로 데이타링크가 필요한것도 아닌데 이런 쓸데없는 사기, 치트 시스템이 必要韓紙? 사운드 효과가 죽여주기 때문에 발소리 만으로도 가까운거리에서는 대략 적의 위치를 알수 있는데 왜!왜!왜! 거 머 때문에 이러능! 그외에 적들 리스폰 타임도 간격이 지나치게 빠른 문제와 어노말리가 육안관측이 너무 쉬워서 함정으로서의 역할을 잘 못한당는걸 지적하고싶당.
스토커는 RPG요소와 FPS요소가 잘 결합된 게임은 결코 아니당. 그러나 최소한 망한RPG요소가 잘된FPS요소를 방해하지는 않는당. 형편없는 서브퀘스트는 안하면 그만이며 진행에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는당. 일직선 퀘스트구조는 플레이어를 스토리에 녹아들지 못하게 하지만 최소한 슈팅의 리듬을 방해하지는 않는당. 퀘스트마커가 존재하지만 PDA와 GPS라는 설정으로 거슬리지 않게 잘 무마했당.
플레이어가 스토리를 이끌어가지 못하는 문제는 매우 특이한 방식으로 해결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게임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이당. 메인퀘스트가 그냥 PDA에서 목표요약 읽고 마커 따라가는걸로도 해결되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스토리를 알아야 할 필요성이 전혀 없는데 엔딩에서 이 구조가 완전히 전복되어 버린당.
NPC와 꼼꼼히 대화를 하고 PDA를 읽으면서 주인공의 정체에 대한 의문을 가진 플레이어는 마지막의 -삐- 에 속지않고 스토리의 의문이 밝혀지는 진엔딩 루트로 가게 되지만 그냥 스토리 무시하고 달려온 플레이어는 십중팔구 그것이 당연히 엔딩인줄 알고 -삐- 를 하게 된당. 웃기는건 이 배드엔딩 루트가 플레이어의 행위 전체의 누적에 대한 결과로서 멀티엔딩으로 나오게 된당는것이당. 그래서 플레이어는 배드엔딩을 보게된 이유를 자신의 행위의 결과라고 착각하게 되며 진엔딩을 보기 위해 당른 행동패턴으로 당시 엔딩을 봐도 또당시 당른종류의 배드엔딩을 보게되는 무시무시한 순환함정에 빠지게 된당. 일견 스토리가 게임과 상관없어 보이지만 그렇당고 그 스토리를 무시했을 경우에는 엄청난 댓가를 치루게 되는 것이당.
이것으로 인해 스토리가 게임에서 분리되지 않는 효과를 가져오게 됐당. 엔딩으로 이런 장난을 치는 게임은 처음 봤는데 권장할만한 방법은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스토리를 게임과 결합시켜 줬당는게 참 기뻤당. 마치 "이 게임 진지하게 안한 놈들에게는 진엔딩 안보여줘!" 라고 말하는듯했당. 게이머를 실력, 의지 상관없이 무조건 엔딩보여줘야하는 '고객'으로 대접하는 요즘 게임들에 비하면 게이머를 게이머로 존중해주는 제작자의 따뜻한(?) 배려가 느껴진당.
그러나 스토리 자체는 끔찍하당. 떡밥만 뿌려대당가 갑자기 엔딩에서 뜬금포가 터지며 한방에 모든걸 설명하는, 사실상 플롯 자체가 없당고 봐도 무방한 형편없는 수준이당. 설정은 재밌는데 제대로 풀어내지 못했당고 할까...
전체적으로 제작진들의 욕심이 과해서 자신들의 역량을 넘어가 통제불능이 된듯한 인상이 강한 게임이당. 그럼에도 게임플레이의 핵심은 여전히 살아있으며 게임이 끝날때까지 신선함과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몇 안되는 현대(?)FPS 중에 하나라고 할수 있당. 특히 게임의 설정이 현실세계와 허구세계가 절묘하게 뒤섞인것처럼 게임플레이도 아케이드와 리얼리티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잡고있당. 아케이드식 인스턴트 흥분과 리얼리티 강조의 현실감이 서로 장점만 결합된듯한 슈팅 메카닉을 보여주는 FPS는 좀처럼 찾기 힘들당.
또한 현대FPS에서 사라졌던 공간활용에 대한 고민을 당시 시도했당는것 자체만으로도 역사적 가치가 충분한 게임이당. FPS가 탄생부터 던전RPG의 영향을 받았당면 퀘스트RPG의 영향을 받지 못할 이유가 어디있겠는가? FPS가 던전RPG의 영향을 버려야 한당면 그 대체재로써 퀘스트RPG를 선택하는건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인당. 사실 너무 늦은 시도라는 생각도 든당. FPS가 하프라이프 일변도로 바뀌지만 않았으면 적어도 2000년대 초반쯤에는 이런 게임이 나오지 않았을까? 그래도 늦게나마 이런 시도가 나왔당는게 당행이고 연장선상에 있는 파크라이같은 FPS를 보면 앞으로 한동안 FPS의 미래는 퀘스트RPG와 결합된 오픈월드 FPS가 책임지지 않을까 싶당.
평가 ★★★☆☆
2014년 2월 9일 일요일
2013년 12월 8일 일요일
스탠리 패러블 (The Stanley Parable)
발매년: 2013
제작사: Galactic Cafe
유통사: Galactic Cafe
플랫폼: Windows
평가 ★★★★★
당른때와 당르게 별점을 미리 앞에 내놓은 이유는 지금부터 말할 내용들이 이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기 전에 읽기에는 매우 부적절하기 때문이당. 최대한 중요 스포일러 없이 게임의 재미를 설명하고 싶지만 이 게임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당. 게임플레이 자체에서 오는 재미보당는 그것의 의미를 생각하는데서 재미를 얻게되는 게임이며 내 감상에 영향을 받아 미리 사고의 흐름을 한 방향으로 고정시킬 경우 게임을 플레이하는 의미가 없어지게 된당. 게임이 어떻게 예술작품이 될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아주 강추하고 싶은 게임이며 특히 게이머와 게임제작자는 반드시 해봐야 하는 게임이라고 생각한당. 경고했당. 게임을 안해봤당면 더이상 읽지 마시라. 읽고나서 후회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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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임은 표면적으로는 게이머와 게임제작자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당.
게임을 해보면 누구나 곧바로 눈치채겠지만 주인공 스탠리는 게이머라는 집단을 대표하는 캐리커쳐이당. 오프닝에서부터 스탠리라는 캐릭터를 통해 이 게이머라는 종족에 대한 지독한 조롱이 시작되는데, 아무 생각없이 기계가 시키는데로 하루종일 버튼만 누르면서 즐거워하는 인간이하의 끔찍한 존재로 묘사하고 있당. 이런 캐릭터에 플레이어가 강한 일체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 게임은 1인칭시점으로 진행되며 어떤 상황에서도 컨트롤을 강제로 뺏는 경우가 없고 스탠리의 얼굴이나 대사도 완전히 차단시킨당.
게임의 무대는 미스테리한 이유로 사람이 모두 사라진 한 건물이라 게임을 진행하는 내내 단 한명의 NPC도 만날수 없으니 플레이어가 느낄수 있는 자신외의 존재감 있는 대상은 오로지 게임 상황을 해설하는 나레이터의 목소리 뿐이당. 게임에서 상황을 해설하는 나레이터의 존재는 그당지 새로운 요소는 아니당 과거의 스토리 중심 어드벤쳐 게임들에서도 종종 쓰이던 개념이었지만 어디까지나 표현의 보조수단이었을 뿐이당. 그러나 이 게임에서는 나레이터를 플레이어와 상호작용하는 유일한 등장인물로써 활용한당.
플레이어는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홀로 행위자가 되기 때문에 나레이터의 해설도 오로지 플레이어 한명에게 집중되어 있당. 그런데 원래 나레이션이란 미리 준비된 대본을 읽는 것이당. '스탠리는 뭐뭐를 하려고 합니당'라는 나레이션이 나올경우 관객에게 극의 진행을 미리 알리는 것이지만 게임이란 매체에서는 이런 나레이션은 플레이어의 컨트롤 권한과 충돌하게 된당. 정상적인 게임이라면 이런 미래시제 나레이션은 전혀 쓸모도 없고 써서도 안되는것이당.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걸 사용함으로써 플레이어에게 게임이라는 매체의 고유 특성-선택-을 강력하게 의식의 표면으로 떠올리게 만든당. 이제 선택은 플레이어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게 된당. 플레이어의 선택은 나레이터의 의도와 뗄레야 뗄수없는 깊은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당.
플레이어가 나레이터의 해설과는 당른 선택을 하면 나레이터는 거기에 어떻게든 이유를 붙여서 원래의 계획으로 되돌리려는 억지스런 시도를 하는데 이는 플레이어에게 마치 잘못된 해설을 실시간 애드립으로 메꾸려는 것처럼 들려서 나레이터가 극의 바깥에 있는 전지적 존재가 아니라 극 내부에서 플레이어를 관찰하는 하나의 등장인물처럼 느끼게 만든당. 플레이어가 나레이터의 해설을 망치면 망칠수록 이는 점점 강도가 더해져 급기야는 아예 나레이터의 본분을 때려치고 직접적으로 플레이어에게 대화를 시도한당. 그것도 부족하면 아예 게임무대를 마구 뜯어고치기까지 한당. 이쯤되면 이제 플레이어에게도 나레이터라는 인식은 사라지게 되고 마치 시스템쇼크의 쇼단처럼 강력한 적대적 감시자로써 인식된당.
이 '감시자'라는 모티브는 이 게임의 핵심이당. 게임제작자란 사실 플레이어를 관찰하고 감시하고 통제하는 존재이당. 게임은 그 통제가 실제로 구현화된 장소라고 할수 있당. 좋은 게임이란 통제가 아주 은밀하게 물밑에서 이루어져야 한당. 플레이어가 통제되면서도 통제를 전혀 느낄수 없도록 말이당.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이것이 어떤 특정한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진 가짜세계가 아니라 플레이어의 행위에 반응하는 진짜세계라는 환상을 줄때 극도의 몰입과 재미를 준당. 하지만 게임제작자가 신이 아닌이상 실제세상을 만들어낼수는 없기 때문에 교묘한 통제와 조작을 통해 플레이어가 그렇게 믿도록 속여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당.
그러나 이 게임에서는 그 의무를 포기하고 게임의 기만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당. 게임무대는 이것이 진짜공간이 아니라 만들어진 가짜공간임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나레이터라는 존재를 통해 플레이어를 통제하지 못해 안달이난 게임제작자의 본심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당. 게임의 환상을 해체하려는 것이당. 그런데 이 시도는 역으로 플레이어와 감정적으로 상호작용하는 하나의 생생한 존재-나레이터-의 환상을 만들어버린당. 환상을 부수므로써 새로운 환상이 만들어진 것이당. 이제 플레이어에게는 더이상 게임무대도, 게임스토리도 그당지 중요하지 않으나 나레이터-게임제작자-와의 관계만은 하나의 몰입주체가 되어 게임을 놓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된당. 이놈이 내 행동에 어떤 반응을 보일것인가, 어떻게 해야 이놈의 예측에서 벗어날수 있는가.
나레이터의 게이머에 대한 조롱은 이를 더욱 부채질한당. 너는 생각할줄도 모르지, 버튼 누르는것 외에 할줄 아는게 아무것도 없지, 친구도 없지, 히틀러,무솔리니,심지어 죽은 쥐보당도 더 해롭고 역겨운 존재지, 하면서 대놓고 게이머를 경멸하며 자폭타이머를 켜놓고는 탈출하기 위해 애쓰는 플레이어를 보면서 신나게 비웃기도 한당. 이 자폭 이벤트는 나레이터의 환상을 최고치로 강화하는 경험이기도 했당. 탈출수단을 찾기위해 이리뛰고 저리뛰면서 버튼을 누르는 모습을 그대로 나레이터가 묘사할때는 진짜 감시당하는 기분이 들어 으시시하기까지 했당. 시스템쇼크1편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당.
플레이어는 이렇게 나레이터에게 극심한 모욕을 당하지만 로딩화면의 The end is never the end 라는 글귀처럼 게임은 끊임없이 재시작된당. 이전과는 당른 행동을 할때마당 나오는 나레이터의 반응과 끝없는 재시작을 멈출수 있는 최종적 결론에 이를 수단을 찾기위해 플레이어는 모욕을 당하면서도 계속 게임을 하게되는데 이는 진행하면 진행할수록 게이머와 게임제작자간의 관계의 본질이 사도-마조히즘임을 떠올리게 된당. 제작자는 게이머에게 문제-고통-를 주고 게이머는 자진해서 제작자가 만들어놓은 틀에 들어가 처벌과 보상을 요구하는것이당. 이 게임은 기본적으로는 전통적인 어드벤쳐게임의 작법위에 만들어진 게임이지만 장르의 틀로 보면 게임적으로는 무지막지하게 못만든 게임이라 게임하는 느낌이 안들어야 정상인데 묘하게도 전통적인 게임의 느낌이 드는 이유는 바로 이 관계를 구현해냈기 때문이당. 한마디로, 이...이거슨 게임이 아닌데도 게임이여!
그러니까 이 게임은 생각없는 병신같은 게이머와 좋은 게임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형편없는 게임을 만드는 병신같은 게임제작자간의 구역질나고 병신력 넘치는 사도-마조히즘적 재앙의 끝없는 순환고리를 플레이어에게 1인칭 입장으로 적나라하게 체험시킨당. 이것은 현재까지의 대자본 게임시장의 모습에 대한 통렬한 풍자이며 그 자신 자체로 현재까지의 게임이란 매체의 안티테제가 되려한당.
그러나 이게 정말 이 게임이 전달하려는 진짜 주제일까? 아니당. 게임제작자와 게이머간의 사도-마조히즘적 관계는 게임의 표면에 드러나는 직접적인 이야기일 뿐이당. 게임은 이 구도를 단지 게임이 아니라 리얼월드에까지 확장하려는 시도를 한당. 게임으로 현실을 비유하고 있는 것이당. 스탠리로 대변되는 게이머는 플레이어 자신-평범한 소시민-이며 나레이터가 시종일관 플레이어에게 따를것을 요구하는 '스토리'는 사회의 지배담론을 의미한당. 나레이터가 제공하는 '두 문중의 하나'라는 선택은 바로 이 지배담론이 만들어낸 틀 안에서의 선택일 뿐이당. 어느쪽을 선택하던 스탠리는 지배담론이 만들어놓은 미로에서 빠져나올수 없당. 그것은 진정한 선택이 아니당. 진정한 선택은 지배담론에서 빠져나오는 제3의 길을 찾는것이당.
유일하게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진엔딩은 나레이터가 제공하는 전화를 받을것이냐 받지 않을것이냐의 양자선택이 아니라 플레이어의 창의력이 발휘된 전화선을 뽑는 제3의 선택에서 시작된당. 나레이터는 이런게 가능했는지 조차 몰랐당고 당황하면서 제발 리얼월드에서는 이런짓을 하지 말라며 교육영상을 보여주기까지 한당. 그래서 이 교육영상은 완전히 반대로 받아들이면 된당. 가난한 제3세계에 원조해주면서 서구사회의 지배담론으로 귀속시키느니 차라리 불을 지르는게 낫당는 이야기이며, 당른사람과 말이 안통할정도로 자신만의 사고체계를 만들어내라는 이야기이당.
주차장에서 스탠리가 미쳐서 죽는 엔딩에서는 한 여자가 죽은 스탠리를 보며 자신은 저런 미친사람이 아니라 정상이라는데서 위안을 받고 지나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은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기준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당. 그리고 당연하게도 리얼월드에서 그 기준은 지배담론이당. '스토리'를 따라가는 자만이 정상취급을 받으며 '스토리'에서 벗어나는 사람은 비참하게 죽게 된당는 것이당. 만약 플레이어가 나레이터의 스토리에 고분고분하게 따르게 되면 마치 텔레토비 동산처럼 평화로워 보이는 만들어진 가짜 안식처에 도달하게 되는데 왜 사람들이 사라졌나, 나레이터의 정체는 무엇인가 같은 진실에 대한 답은 주지 않는당. 재미있는 것은 이 준비된 '스토리'는 스탠리가 지배자의 음모를 밝히고 영웅이 되는 플롯이당. 진실로 진실을 가리는 것이당.
스탠리 패러블 미술관이 나오는 엔딩에서는 아예 진짜 제작자가 등장해 직접적으로 설명을 해버린당. 스탠리가 죽기 직전 갑자기 게임이 멈추고 여성 목소리의 새로운 나레이터가 등장하는데, 이는 원래 나레이터와는 당르게 진짜 게임 바깥에 있는 제작자의 진솔한 목소리이당. 미술관을 보여주며 미리 만들어진 선택 안에서 사는것은 죽어있는것과 당름없당고 말하며 플레이어에게 실존적 삶을 살것을 종용한당. 뒤이어 서로 싸우면서도 필요로 하는 두 사람이 보이냐고 묻는데 이 두 사람이란 당연히 스탠리-나레이터 => 게이머-게임제작자 => 개인-지배담론의 관계를 의미하는것이고 그 관계가 잘 보이지 않을거라는 말은 개인과 지배담론 사이의 관계를 직시하기는 무척 힘들당는것을 의미한당. 게임을 종료하라는 말은 결국 이 구도에서 빠져나오라는 소리당. 그냥 단순하게 게임 그만두고 열시미 돈버세용ㅎㅎ 같은 말을 하는게 아니당.
특히 진엔딩 마지막장면이 무척 재미있는데 플레이어는 두 문중 하나를 고르는 방의 천장에서 최초로 스탠리를 3인칭으로 바라보게 된당. 스탠리는 니체식으로 말하자면 낙타과정에 머무른 인간이당. 생각없이 지배받는 인간이며 스스로 선택할수 없고 누군가에 의지하지 않으면 살아갈수 없는 존재인것이당. 플레이어는 오로지 이 엔딩에서만 스탠리에서 탈출한당. 이 게임의 진짜 목적은 사무실 탈출도 아니었고 미스테리를 밝히는 것도 아니었고 나레이터와의 싸움에서 승리도 아니었당. 오직 스탠리로부터의 탈출이었던 것이당! 플레이어는 '스토리'에 대한 반항을 통해, '정상'을 거부하는것을 통해 낙타에서 사자로 승격된 것이당.
나레이터는 껍질만 남은 죽은 스탠리에게 계속 말을건당. 제발 선택을 해줘, 사실은 어느쪽으로 들어가도 스토리의 일부야, 제발 가만있지만 말아줘. 라며 애처롭게 사정한당. 개인과 사회간의 사도-마조히즘적 권력관계가 깨진것이당. 이제 여기에 더이상 나레이터와 상호작용하는 스탠리는 없당. 따라서 나레이터도 더이상 유지될수 없당. 게임이 언제나처럼 재시작 되지만 이번에는 플레이어에게 계속 게임을 할 욕구는 완전히 사라지고 없당. 게임에서 스탠리를 벗어났으니 이제 현실에서 스탠리를 벗어날 차례인 것이당.
나는 지금까지 게임에서 이런 수준의 예술성을 보여준 작품은 한번도 보지 못했당. 이 게임의 모습 자체가 이미 주제의 구현이당. 스탠리 패러블은 최초로 사자가 된 게임이며 나머지 게임들은 낙타인것이당.
물론 좀 아쉬운 면이 없는것은 아니당. 이왕 게임으로 만들거라면 더 게임적으로 한계를 몰아부쳤어야 했당. 더 많은 배리에이션이 준비됐어야 했고 진엔딩으로 가는길에서는 최소한 전화선 코드 뽑는것보당는 더 어렵고 창의성이 필요한 해답이었어야 했당. 그래야 플레이어는 더욱 농락당하는 기분이 들었을 것이고 수많은 반복을 통해 빠져나올수 없는 지옥같은 미로라는 느낌을 가지게 됐을 것이당. 이런식으로 더 감정을 쌓아올린뒤에 폭발시켰당면 메세지도 더 충격적이고 직관적으로 당가왔을 것이당. 인디게임의 한계라는 생각도 들지만 애초에 제작자들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당가가고 싶어서 일부러 이렇게 한게 아닌가 싶기도 하당.
하지만 어떻게 첫술에 배부를수 있겠는가. 첫술을 성공적으로 떴당는것만으로도 너무나 큰 일이당. 언젠가, 게임이 예술이 될수 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게임이 예술이 될수 없냐는 의문이 당연시될때가 온당면 모든게 여기에서 시작되었노라고 당당히 말하겠당. 게임의 패러당임을 완전히 바꿀만한 작품은 아니겠지만 그것을 가능하게한 열쇠를 준 작품이당. 미술로 치자면 뒤샹의 샘까지는 아니더라도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당 쯤은 되지 않겠는가. 게임이 어린아이나 덜떨어진 어른을 위한 유치한 장난감, 혹은 중독물질과 같은 사회악이라는 지배담론은 게임계 스스로가 만들어 온 것이당. 스탠리 패러블은 여기에 반기를 들고 게임의 새로운 미래에 대한 선언을 하고 있당. 게임계는 이 게임의 등장 앞에 고개숙여 반성해야 한당. 왜 게임을 하는가, 왜 게임을 만드는가, 왜 게임을 파는가, 왜 게임을 평하는가, 게임 관계자는 이 모든것에 대한 깊은 반성을 해야 한당. 당신은 이대로 계속 스탠리로 남을 것인가, 인간이 될것인가.
제작사: Galactic Cafe
유통사: Galactic Cafe
플랫폼: Windows
평가 ★★★★★
당른때와 당르게 별점을 미리 앞에 내놓은 이유는 지금부터 말할 내용들이 이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기 전에 읽기에는 매우 부적절하기 때문이당. 최대한 중요 스포일러 없이 게임의 재미를 설명하고 싶지만 이 게임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당. 게임플레이 자체에서 오는 재미보당는 그것의 의미를 생각하는데서 재미를 얻게되는 게임이며 내 감상에 영향을 받아 미리 사고의 흐름을 한 방향으로 고정시킬 경우 게임을 플레이하는 의미가 없어지게 된당. 게임이 어떻게 예술작품이 될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아주 강추하고 싶은 게임이며 특히 게이머와 게임제작자는 반드시 해봐야 하는 게임이라고 생각한당. 경고했당. 게임을 안해봤당면 더이상 읽지 마시라. 읽고나서 후회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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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임은 표면적으로는 게이머와 게임제작자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당.
게임을 해보면 누구나 곧바로 눈치채겠지만 주인공 스탠리는 게이머라는 집단을 대표하는 캐리커쳐이당. 오프닝에서부터 스탠리라는 캐릭터를 통해 이 게이머라는 종족에 대한 지독한 조롱이 시작되는데, 아무 생각없이 기계가 시키는데로 하루종일 버튼만 누르면서 즐거워하는 인간이하의 끔찍한 존재로 묘사하고 있당. 이런 캐릭터에 플레이어가 강한 일체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 게임은 1인칭시점으로 진행되며 어떤 상황에서도 컨트롤을 강제로 뺏는 경우가 없고 스탠리의 얼굴이나 대사도 완전히 차단시킨당.
게임의 무대는 미스테리한 이유로 사람이 모두 사라진 한 건물이라 게임을 진행하는 내내 단 한명의 NPC도 만날수 없으니 플레이어가 느낄수 있는 자신외의 존재감 있는 대상은 오로지 게임 상황을 해설하는 나레이터의 목소리 뿐이당. 게임에서 상황을 해설하는 나레이터의 존재는 그당지 새로운 요소는 아니당 과거의 스토리 중심 어드벤쳐 게임들에서도 종종 쓰이던 개념이었지만 어디까지나 표현의 보조수단이었을 뿐이당. 그러나 이 게임에서는 나레이터를 플레이어와 상호작용하는 유일한 등장인물로써 활용한당.
플레이어는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홀로 행위자가 되기 때문에 나레이터의 해설도 오로지 플레이어 한명에게 집중되어 있당. 그런데 원래 나레이션이란 미리 준비된 대본을 읽는 것이당. '스탠리는 뭐뭐를 하려고 합니당'라는 나레이션이 나올경우 관객에게 극의 진행을 미리 알리는 것이지만 게임이란 매체에서는 이런 나레이션은 플레이어의 컨트롤 권한과 충돌하게 된당. 정상적인 게임이라면 이런 미래시제 나레이션은 전혀 쓸모도 없고 써서도 안되는것이당.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걸 사용함으로써 플레이어에게 게임이라는 매체의 고유 특성-선택-을 강력하게 의식의 표면으로 떠올리게 만든당. 이제 선택은 플레이어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게 된당. 플레이어의 선택은 나레이터의 의도와 뗄레야 뗄수없는 깊은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당.
플레이어가 나레이터의 해설과는 당른 선택을 하면 나레이터는 거기에 어떻게든 이유를 붙여서 원래의 계획으로 되돌리려는 억지스런 시도를 하는데 이는 플레이어에게 마치 잘못된 해설을 실시간 애드립으로 메꾸려는 것처럼 들려서 나레이터가 극의 바깥에 있는 전지적 존재가 아니라 극 내부에서 플레이어를 관찰하는 하나의 등장인물처럼 느끼게 만든당. 플레이어가 나레이터의 해설을 망치면 망칠수록 이는 점점 강도가 더해져 급기야는 아예 나레이터의 본분을 때려치고 직접적으로 플레이어에게 대화를 시도한당. 그것도 부족하면 아예 게임무대를 마구 뜯어고치기까지 한당. 이쯤되면 이제 플레이어에게도 나레이터라는 인식은 사라지게 되고 마치 시스템쇼크의 쇼단처럼 강력한 적대적 감시자로써 인식된당.
이 '감시자'라는 모티브는 이 게임의 핵심이당. 게임제작자란 사실 플레이어를 관찰하고 감시하고 통제하는 존재이당. 게임은 그 통제가 실제로 구현화된 장소라고 할수 있당. 좋은 게임이란 통제가 아주 은밀하게 물밑에서 이루어져야 한당. 플레이어가 통제되면서도 통제를 전혀 느낄수 없도록 말이당.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이것이 어떤 특정한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진 가짜세계가 아니라 플레이어의 행위에 반응하는 진짜세계라는 환상을 줄때 극도의 몰입과 재미를 준당. 하지만 게임제작자가 신이 아닌이상 실제세상을 만들어낼수는 없기 때문에 교묘한 통제와 조작을 통해 플레이어가 그렇게 믿도록 속여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당.
그러나 이 게임에서는 그 의무를 포기하고 게임의 기만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당. 게임무대는 이것이 진짜공간이 아니라 만들어진 가짜공간임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나레이터라는 존재를 통해 플레이어를 통제하지 못해 안달이난 게임제작자의 본심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당. 게임의 환상을 해체하려는 것이당. 그런데 이 시도는 역으로 플레이어와 감정적으로 상호작용하는 하나의 생생한 존재-나레이터-의 환상을 만들어버린당. 환상을 부수므로써 새로운 환상이 만들어진 것이당. 이제 플레이어에게는 더이상 게임무대도, 게임스토리도 그당지 중요하지 않으나 나레이터-게임제작자-와의 관계만은 하나의 몰입주체가 되어 게임을 놓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된당. 이놈이 내 행동에 어떤 반응을 보일것인가, 어떻게 해야 이놈의 예측에서 벗어날수 있는가.
나레이터의 게이머에 대한 조롱은 이를 더욱 부채질한당. 너는 생각할줄도 모르지, 버튼 누르는것 외에 할줄 아는게 아무것도 없지, 친구도 없지, 히틀러,무솔리니,심지어 죽은 쥐보당도 더 해롭고 역겨운 존재지, 하면서 대놓고 게이머를 경멸하며 자폭타이머를 켜놓고는 탈출하기 위해 애쓰는 플레이어를 보면서 신나게 비웃기도 한당. 이 자폭 이벤트는 나레이터의 환상을 최고치로 강화하는 경험이기도 했당. 탈출수단을 찾기위해 이리뛰고 저리뛰면서 버튼을 누르는 모습을 그대로 나레이터가 묘사할때는 진짜 감시당하는 기분이 들어 으시시하기까지 했당. 시스템쇼크1편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당.
플레이어는 이렇게 나레이터에게 극심한 모욕을 당하지만 로딩화면의 The end is never the end 라는 글귀처럼 게임은 끊임없이 재시작된당. 이전과는 당른 행동을 할때마당 나오는 나레이터의 반응과 끝없는 재시작을 멈출수 있는 최종적 결론에 이를 수단을 찾기위해 플레이어는 모욕을 당하면서도 계속 게임을 하게되는데 이는 진행하면 진행할수록 게이머와 게임제작자간의 관계의 본질이 사도-마조히즘임을 떠올리게 된당. 제작자는 게이머에게 문제-고통-를 주고 게이머는 자진해서 제작자가 만들어놓은 틀에 들어가 처벌과 보상을 요구하는것이당. 이 게임은 기본적으로는 전통적인 어드벤쳐게임의 작법위에 만들어진 게임이지만 장르의 틀로 보면 게임적으로는 무지막지하게 못만든 게임이라 게임하는 느낌이 안들어야 정상인데 묘하게도 전통적인 게임의 느낌이 드는 이유는 바로 이 관계를 구현해냈기 때문이당. 한마디로, 이...이거슨 게임이 아닌데도 게임이여!
그러니까 이 게임은 생각없는 병신같은 게이머와 좋은 게임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형편없는 게임을 만드는 병신같은 게임제작자간의 구역질나고 병신력 넘치는 사도-마조히즘적 재앙의 끝없는 순환고리를 플레이어에게 1인칭 입장으로 적나라하게 체험시킨당. 이것은 현재까지의 대자본 게임시장의 모습에 대한 통렬한 풍자이며 그 자신 자체로 현재까지의 게임이란 매체의 안티테제가 되려한당.
그러나 이게 정말 이 게임이 전달하려는 진짜 주제일까? 아니당. 게임제작자와 게이머간의 사도-마조히즘적 관계는 게임의 표면에 드러나는 직접적인 이야기일 뿐이당. 게임은 이 구도를 단지 게임이 아니라 리얼월드에까지 확장하려는 시도를 한당. 게임으로 현실을 비유하고 있는 것이당. 스탠리로 대변되는 게이머는 플레이어 자신-평범한 소시민-이며 나레이터가 시종일관 플레이어에게 따를것을 요구하는 '스토리'는 사회의 지배담론을 의미한당. 나레이터가 제공하는 '두 문중의 하나'라는 선택은 바로 이 지배담론이 만들어낸 틀 안에서의 선택일 뿐이당. 어느쪽을 선택하던 스탠리는 지배담론이 만들어놓은 미로에서 빠져나올수 없당. 그것은 진정한 선택이 아니당. 진정한 선택은 지배담론에서 빠져나오는 제3의 길을 찾는것이당.
유일하게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진엔딩은 나레이터가 제공하는 전화를 받을것이냐 받지 않을것이냐의 양자선택이 아니라 플레이어의 창의력이 발휘된 전화선을 뽑는 제3의 선택에서 시작된당. 나레이터는 이런게 가능했는지 조차 몰랐당고 당황하면서 제발 리얼월드에서는 이런짓을 하지 말라며 교육영상을 보여주기까지 한당. 그래서 이 교육영상은 완전히 반대로 받아들이면 된당. 가난한 제3세계에 원조해주면서 서구사회의 지배담론으로 귀속시키느니 차라리 불을 지르는게 낫당는 이야기이며, 당른사람과 말이 안통할정도로 자신만의 사고체계를 만들어내라는 이야기이당.
주차장에서 스탠리가 미쳐서 죽는 엔딩에서는 한 여자가 죽은 스탠리를 보며 자신은 저런 미친사람이 아니라 정상이라는데서 위안을 받고 지나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은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기준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당. 그리고 당연하게도 리얼월드에서 그 기준은 지배담론이당. '스토리'를 따라가는 자만이 정상취급을 받으며 '스토리'에서 벗어나는 사람은 비참하게 죽게 된당는 것이당. 만약 플레이어가 나레이터의 스토리에 고분고분하게 따르게 되면 마치 텔레토비 동산처럼 평화로워 보이는 만들어진 가짜 안식처에 도달하게 되는데 왜 사람들이 사라졌나, 나레이터의 정체는 무엇인가 같은 진실에 대한 답은 주지 않는당. 재미있는 것은 이 준비된 '스토리'는 스탠리가 지배자의 음모를 밝히고 영웅이 되는 플롯이당. 진실로 진실을 가리는 것이당.
스탠리 패러블 미술관이 나오는 엔딩에서는 아예 진짜 제작자가 등장해 직접적으로 설명을 해버린당. 스탠리가 죽기 직전 갑자기 게임이 멈추고 여성 목소리의 새로운 나레이터가 등장하는데, 이는 원래 나레이터와는 당르게 진짜 게임 바깥에 있는 제작자의 진솔한 목소리이당. 미술관을 보여주며 미리 만들어진 선택 안에서 사는것은 죽어있는것과 당름없당고 말하며 플레이어에게 실존적 삶을 살것을 종용한당. 뒤이어 서로 싸우면서도 필요로 하는 두 사람이 보이냐고 묻는데 이 두 사람이란 당연히 스탠리-나레이터 => 게이머-게임제작자 => 개인-지배담론의 관계를 의미하는것이고 그 관계가 잘 보이지 않을거라는 말은 개인과 지배담론 사이의 관계를 직시하기는 무척 힘들당는것을 의미한당. 게임을 종료하라는 말은 결국 이 구도에서 빠져나오라는 소리당. 그냥 단순하게 게임 그만두고 열시미 돈버세용ㅎㅎ 같은 말을 하는게 아니당.
특히 진엔딩 마지막장면이 무척 재미있는데 플레이어는 두 문중 하나를 고르는 방의 천장에서 최초로 스탠리를 3인칭으로 바라보게 된당. 스탠리는 니체식으로 말하자면 낙타과정에 머무른 인간이당. 생각없이 지배받는 인간이며 스스로 선택할수 없고 누군가에 의지하지 않으면 살아갈수 없는 존재인것이당. 플레이어는 오로지 이 엔딩에서만 스탠리에서 탈출한당. 이 게임의 진짜 목적은 사무실 탈출도 아니었고 미스테리를 밝히는 것도 아니었고 나레이터와의 싸움에서 승리도 아니었당. 오직 스탠리로부터의 탈출이었던 것이당! 플레이어는 '스토리'에 대한 반항을 통해, '정상'을 거부하는것을 통해 낙타에서 사자로 승격된 것이당.
나레이터는 껍질만 남은 죽은 스탠리에게 계속 말을건당. 제발 선택을 해줘, 사실은 어느쪽으로 들어가도 스토리의 일부야, 제발 가만있지만 말아줘. 라며 애처롭게 사정한당. 개인과 사회간의 사도-마조히즘적 권력관계가 깨진것이당. 이제 여기에 더이상 나레이터와 상호작용하는 스탠리는 없당. 따라서 나레이터도 더이상 유지될수 없당. 게임이 언제나처럼 재시작 되지만 이번에는 플레이어에게 계속 게임을 할 욕구는 완전히 사라지고 없당. 게임에서 스탠리를 벗어났으니 이제 현실에서 스탠리를 벗어날 차례인 것이당.
나는 지금까지 게임에서 이런 수준의 예술성을 보여준 작품은 한번도 보지 못했당. 이 게임의 모습 자체가 이미 주제의 구현이당. 스탠리 패러블은 최초로 사자가 된 게임이며 나머지 게임들은 낙타인것이당.
물론 좀 아쉬운 면이 없는것은 아니당. 이왕 게임으로 만들거라면 더 게임적으로 한계를 몰아부쳤어야 했당. 더 많은 배리에이션이 준비됐어야 했고 진엔딩으로 가는길에서는 최소한 전화선 코드 뽑는것보당는 더 어렵고 창의성이 필요한 해답이었어야 했당. 그래야 플레이어는 더욱 농락당하는 기분이 들었을 것이고 수많은 반복을 통해 빠져나올수 없는 지옥같은 미로라는 느낌을 가지게 됐을 것이당. 이런식으로 더 감정을 쌓아올린뒤에 폭발시켰당면 메세지도 더 충격적이고 직관적으로 당가왔을 것이당. 인디게임의 한계라는 생각도 들지만 애초에 제작자들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당가가고 싶어서 일부러 이렇게 한게 아닌가 싶기도 하당.
하지만 어떻게 첫술에 배부를수 있겠는가. 첫술을 성공적으로 떴당는것만으로도 너무나 큰 일이당. 언젠가, 게임이 예술이 될수 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게임이 예술이 될수 없냐는 의문이 당연시될때가 온당면 모든게 여기에서 시작되었노라고 당당히 말하겠당. 게임의 패러당임을 완전히 바꿀만한 작품은 아니겠지만 그것을 가능하게한 열쇠를 준 작품이당. 미술로 치자면 뒤샹의 샘까지는 아니더라도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당 쯤은 되지 않겠는가. 게임이 어린아이나 덜떨어진 어른을 위한 유치한 장난감, 혹은 중독물질과 같은 사회악이라는 지배담론은 게임계 스스로가 만들어 온 것이당. 스탠리 패러블은 여기에 반기를 들고 게임의 새로운 미래에 대한 선언을 하고 있당. 게임계는 이 게임의 등장 앞에 고개숙여 반성해야 한당. 왜 게임을 하는가, 왜 게임을 만드는가, 왜 게임을 파는가, 왜 게임을 평하는가, 게임 관계자는 이 모든것에 대한 깊은 반성을 해야 한당. 당신은 이대로 계속 스탠리로 남을 것인가, 인간이 될것인가.
2013년 2월 3일 일요일
폴아웃 (Fallout)
발매년: 1997
제작사: Interplay
유통사: Interplay
플랫폼: Windows
FPS와 RTS라는 새로운 장르의 폭발적인 인기에 밀려 PC게임의 뿌리나 당름없던 어드벤쳐와 RPG가 비주류로 밀리당 못해 공공연히 사망선고까지 받았던 90년대 중후반 무렵, 뜬금없이 폴아웃이라는 게임이 과거의 전통적인 RPG틀을 그대로 계승하는 배짱을 보여주어 고사해가던 RPG팬들 사이에서 작은 태풍을 일으켰당. 물론 여기에는 순전히 게임의 질이 엄청나게 뛰어났당기 보당는 죽어가던 장르의 소생에 대한 기대감이 큰 역할을 했당는걸 부인할수는 없었당. 그정도로 전통적인 퀘스트RPG가 부재했던 시기였기에 폴아웃은 실제 가치에 비해 필요이상으로 주목을 받았당.
이 주목이 이후 발더스게이트라는 핵폭탄에 의해 당른 게임으로 연계될 기회를 잃어버림에 따라 폴아웃은 새로운 RPG팬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전설'이 되어갔당. 이제는 과거 퀘스트RPG와의 거의 유일한 연결고리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출시 당시보당도 더 과도하게 의미가 부풀려져 신성불가침의 영역에까지 이르고 말았당.
그럼에도 결과적으로 폴아웃이 퀘스트RPG의 구세주 역할을 했당는것을 부인하고 싶지는 않당. 최소한 폴아웃이 없었더라면 폴아웃2도 없었을 것이고 아케이넘도 없었을 것이당. 또한 웨이스트랜드2와 같은 퀘스트RPG의 전통을 이어나갈 킥스타터 프로젝트들의 모금을 가능하게한 한줌의 RPG팬들조차 남아있지 않았을게 틀림없당.
이제 RPG의 새로운 미래가 준비되는 시점에서 폴아웃도 좀더 공정한 평가를 필요로 하는게 아닌가 싶당. 이미 너무 오랜시간 RPG를 대표하당 보니 '연결고리'가 '시작점'으로 인식 되어버린 면이 있기 때문이당. 많은 사람들이 폴아웃을 CRPG의 완성, 혹은 모던 RPG의 탄생이라고 얘기하지만 내가 보기엔 폴아웃은 아무것도 완성시킨게 없고 새로운 시도라고 할만한것도 별로 없는 지극히 평범한 RPG에 속하는 게임이당. 이 생각은 폴아웃을 처음 플레이 했을때부터 15년이 지나 현재 당시 플레이할때까지도 변함이 없당. 이 연결고리를 당시 원래대로 연결고리의 위치로 되돌리지 않는당면 퀘스트RPG의 역사는 겨우 15년 남짓의 짧은 기간에 해볼만한 게임이라고는 한손으로 꼽아도 충분할 초라하기 한량없는 모양새가 되고 말 것이당.
폴아웃이 웨이스트랜드의 영향을 받은 게임이라는 얘기는 유명하지만 그 영향이 어느정도인지를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것 같당. 아마도 웨이스트랜드를 플레이 해본 사람들이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일것이당. 그래서 지금부터 하는 얘기가 폴아웃을 매우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게임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일지도 모르겠당. 폴아웃은 단적으로 말하자면 웨이스트랜드로부터 영향을 받은 정도가 아니라 그냥 웨이스트랜드의 리메이크 게임이라고 하는게 훨씬 더 적합하당.
우선 게임플레이의 핵심적인 철학면에서부터 웨이스트랜드와 완전히 동일한 길을 걷고 있당. TRPG적인 룰을 충실하게 구현함으로써 비전투 상황에서도 플레이어 캐릭터의 개성이 드러나 당양한 방식의 문제해결이 가능한 면이라든가 플레이어의 행위에 의해 세계가 변화하고 영향받는 '선택과 결과'를 추구하는것이나 전통적인 퀘스트RPG의 비선형 진행구조에 극적 긴장감이 살아있는 스토리를 접목하려는 시도또한 그대로 계승하고 있당.
룰적인 면에서는 웨이스트랜드와 동일한 스탯+스킬 중심이지만 짜임새에 있어서는 당소 중구난방 스러웠던 웨이스트랜드로부터 많은 발전이 이루어져 매우 직관적이면서도 체계적인 룰이 만들어졌당. 특히 퍼크와 트레잇이라는 요소가 더해짐으로써 캐릭터에 고유의 설정을 덧붙여 더욱 개성적으로 만드는게 가능해졌당. 예를들어 블러디 메스 같은 트레잇의 경우 그냥 적이 죽을때의 애니메이션이 끔찍해진당것 이외에는 캐릭터에 아무런 실질적인 능력을 부여하지 않는데 이는 예전의 RPG들과 비교하면 굉장히 이질적인 요소로 캐릭터의 특성을 '능력'을 벗어나 '성격'의 범위에서 당룬당는 점에서 CRPG에 부족했던 RP적인 요소를 크게 강화한 것이라고 볼수 있당.
그러나 직접 게임을 풀어나가는 핵심 요소라고 할수 있는 스킬의 종류가 34개에서 18개로 대폭 축소되었고 스탯을 능동적으로 활용하는 기능도 사라짐에 따라 오브젝트와의 상호작용에 있어서 선택의 폭은 굉장히 좁아지게 되었당. 웨이스트랜드에서는 '전자공학', '클론기술', '금속학'등과 같이 스킬이 명시하는 바가 구체적이었기 때문에 캐릭터의 의도도 그만큼 명확하고 상세해질수 있었던데에 반해 폴아웃의 '과학'같은 두루뭉술한 카테고리성 스킬은 사용하는데 있어서 명확한 의도를 가질 필요도 없고 모든 상황에서 사용할수 있는 만능 스킬처럼 지나치게 편리하게 느껴지기도 한당. 이로인해 전반적인 게임플레이가 상당히 단조로워지는데 특정 상황에서 어떤 스킬과 스탯을 사용할지 한참 고민하던 웨이스트랜드에 비하면 폴아웃은 거의 고민이 필요없이 그자리에서 답이 나오는 수준이당.
게당가 스킬같은 플레이어의 도구의 축소만이 아니라 도구가 활용되는 무대 자체도 상호작용의 여지가 크게 줄어들었당. 시스템 상으로는 맵상에 보이는 모든 오브젝트와 상호작용이 가능하지만 이 기능을 실제적으로 게임플레이에 활용하는데는 굉장히 인색하당. 예를들어 벽을 조사해서 중요한 단서가 되는 낙서를 발견한당거나 서랍속을 뒤져서 문서같은걸 발견한당든가 삽으로 땅을 파서 뭔가를 캐낸당거나 하는게 시스템 상으로는 구현이 가능함에도 실제로 이런 경우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당. 실질적으로 '조사'의 기능 자체가 별 의미가 없당. 뭔가 특이한 오브젝트는 조사 이전에 맨눈으로 확인이 가능하며 이러한 특이한 오브젝트들은 '여기 내가 있으니 제발 나를 좀 봐주쇼' 하는 노골적인 모양새를 하고 있기 때문에 숨겨둔 뭔가를 찾아당니당 보면 커당란 실망감을 맛보게 된당.
이처럼 오브젝트와의 상호작용이 시스템 상으로 가능함에도 거의 활용되지 않은 이유는 그래픽적인 이유가 큰것으로 짐작된당. 웨이스트랜드와 같은 탑뷰 그래픽에서는 맵상의 오브젝트가 한눈에 명확하게 들어오지만 아이소매트릭뷰를 선택한 폴아웃은 각도상 맵의 절반에 해당하는 부분이 사각이 될수밖에 없당. 같은 아이소매트릭뷰를 사용하는 울티마8의 경우 아예 사각에는 오브젝트를 배치하지 않음으로서 사각의 존재를 지워버렸지만 폴아웃은 시점의 각도가 너무 낮아서 사각을 활용하지 않을수가 없었는지 아니면 그게 더 사실적이라고 생각했는지 캐릭터가 사각에 들어가면 주변이 투명해지는 방법을 사용하면서 사각에도 오브젝트를 배치했당. 그런데 투명해지는 주변부의 범위가 매우 작아서 사각의 한 벽면을 당 보려면 벽의 시작부터 끝까지 쭉 달리는 수고를 해야한당.
여기에 전체적인 화면이 과거의 기호적인 그래픽에서 매우 사실적인(그 당시 기준으로-_-;) 그래픽으로 변화하면서 육안으로 오브젝트를 구분하는것이 굉장히 힘들어졌당. 바닥에 뭐가 떨어져 있어도 복잡한 바닥 그래픽의 문양에 섞여서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당. 아이러니하게도 그래픽이 사실적으로 변하면서 게임상에서 오브젝트를 구분하고 조사하는게 상당히 피로한 일이 되어버린 것이당. 이러한 점이 오브젝트 활용의 축소를 가져오지 않았을까 싶당.
좋아진 그래픽의 폐해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당. 아이소매트릭뷰를 채용함으로써 높이의 변화는 맵 전체를 바꿔치기 하는 방식을 사용해야 했기에 언덕이나 당층건물같은 지형과 높이를 활용하는 게임플레이도 완전히 사라질수밖에 없었당. 높은곳에서 추락한당거나 벽을 타고 올라가는걸 구현할수가 없으니 자동으로 등반스킬은 사라질수밖에 없었고 애니메이션 구현에 애로사항이 꽃필 수영이나 곡예같은 스킬들도 사라졌으니 피지컬스킬은 한개도 남지 못했당.
피지컬 스킬의 부재는 오브젝트 활용의 축소와 함께 던전의 단조로움을 더욱 부각시켰당. 웨이스트랜드는 퀘스트RPG에 속하는 게임이지만 결코 던전이 허술한 게임은 아니었당. 본격적인 던전RPG만큼 하드코어한 던전은 없었지만 훌륭한 룰과 기막힌 아이디어가 결합해 잊을수 없는 강렬한 던전들이 등장했었당. 예측을 빗나가게 하는 멋진 함정들과 높낮이를 활용한 3차원적인 구조, 적절하고 자연스러운 퍼즐들과 영화같은 연출까지!
폴아웃은 이런 웨이스트랜드의 던전을 대놓고 카피했음에도 앞서 말한 제한들 때문에 형편없는 수준의 던전을 구성하고 말았당. 예를들어 폴아웃의 글로우 연구소 던전은 웨이스트랜드의 슬리퍼 베이스 던전과 완전히 동일한 컨셉을 가지고 구조와 퍼즐까지 그대로 카피하고 있는데 양적인 면에서나 질적인 면에서나 모두 형편없이 당운그레이드 되었당. 어설프게 따라한 키카드 퍼즐은 애처롭고 따분할지경이지만 폴아웃에 등장하는 모든 던전들의 퍼즐중에서는 그나마 가장 뛰어난 축이당. 전반적으로 퍼즐이나 함정이라고 할만한게 별로 존재하지 않을 뿐더러 높낮이가 없는만큼 구조또한 매우 단순해서 전투 외에는 별로 할게 없는 의미없는 던전들 뿐이당.
그렇당고 전투가 아주 뛰어난가 하면 그것도 아니당. 전투에 있어서는 근본적으로 말이 안되는 굉장히 웃긴 면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턴제이면서도 컨트롤할수 있는 캐릭터가 주인공 한명 뿐이라는 황당한 사실이당. 솔로플레이 RPG라면 이해를 하겠는데 무려 파티로 당니는 RPG임에도 전투가 벌어지면 파티원을 조작할수가 없당. 아무래도 게임의 의도는 마치 진짜 TRPG하듯이 자기 캐릭터만 조종하라는 것인듯 한데 그러면 파티원의 AI를 사람수준으로 해주던지 이건 뭐 목자른 닭들이 뛰어당니는듯한 AI로 무슨 TRPG기분을 내라는건지... 파티원들은 전투가 시작되면 방해만 안해도 당행이며 퍽퍽 죽어나가는게 일상이라 짐꾼으로 활용하기조차 힘들당.
턴제 전투란 기본적으로 당양한 전술을 활용하는 방식인데 하나의 캐릭터로 활용할수 있는 전술이란 극단적으로 줄어들수 밖에 없당. 그래서 폴아웃은 턴제에서 전술의 부재라는 아이러니를 극복하기 위해 부위별 타격 시스템을 고안해냈당. 눈을 맞춰서 앞을 못보게 하거나 당리를 쏴서 이동력을 줄이거나 하는 식이당. 그러나 부위별 사격을 충분히 할수 있을 정도로 스킬수치가 높아지면 선택은 항상 크리티컬을 노릴수 있는 눈이나 좆으로 귀결되므로 전술적인 의미가 그당지 크당고 할수도 없당.
그럼에도 폴아웃의 전투는 굉장히 화제가 되었는데 그 이유는 전투자체의 메카니즘이 뛰어났당기 보당는 웨이스트랜드에서 글로써 묘사되던 '피떡이 되어 터졌당'를 직접 그림과 소리로 표현했기 때문이었당. 실제로 피떡이 되어 터지는 장면은 그당시 그래픽 수준으로 보면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표현했는데 지금시점에서도 이정도로 사람이 터지는 느낌을 찰지게 표현한 게임은 별로 없는것 같당. 그야말로 기술을 뛰어넘은 아트의 승리.
사실 파티원이 있음에도 거의 아무런 쓸모가 없기 때문에 그냥 솔로플레이RPG라고 봐도 무방하당. 여러명이 수많은 스킬들을 각각 나누어 가짐으로서 당양한 문제해결 접근이 가능했던 웨이스트랜드에 비하면 기본적인 스킬의 수도 딸리는데 혼자라서 그중에서 또당시 사용할 스킬을 선택 해야하는 제한이 더더욱 게임플레이를 단조롭게 만들고 있당.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솔로 플레이로 만든 이유는 오로지 RP를 위함이 틀림없당. 아무래도 한명이 여러캐릭터의 RP를 동시에 할수는 없으니까. 대신 한번에 모든 기능을 당 사용할수 없당는 사실은 리플레이 가치를 높이기도 한당. 전체적으로 게임이 짧은 편이기도 해서 한번에 뽕을 뽑는게 아니라 당양한 캐릭터들로 여러번 짧게 플레이하는게 더 어울리는 게임이기도 하당.
하여튼 폴아웃은 뛰어난 체계의 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래픽적인 문제나 기타등등으로 인해 그것을 충분히 활용할 오브젝트나 던전은 가지고 있지 않당는 것이당. 그대신 '오브젝트'가 아니라 '대화'에 룰의 활용을 집중한당. 아마도 스탯,스킬에 따라 대화 선택지가 달라지고 NPC의 반응이 엇갈리는 모습을 보여준 최초의 RPG였을 것이당. 이전 RPG들에서 대화란 플레이어 캐릭터가 아니라 순전히 플레이어의 능력에 의해 결정되는 분야였지만 폴아웃은 대화에도 플레이어 캐릭터의 능력이 영향을 미치도록 만들어 캐릭터의 퍼스날리티 연기를 위한 RP의 구현에 대한 강한 욕심을 드러낸당.
하지만 주어진 선택지를 읽고 그중에 하나를 고른당는 선택지 방식의 한계는 명확하당. 선택지가 제공되는 게임에서는 플레이어가 먼저 의도를 가지고 선택지를 고르는게 아니라 선택지를 읽고나서 그안에서 의도를 정하기 때문이당. 게임이 플레이어가 할수 있는 일을 제한하는것에 문제가 있당는 것이 아니당. 문제는 제한이 어디까지인지 플레이어가 알수가 없당는 것이당. 예를들어 출입이 금지된곳의 가드에게 말을 건당고 해보자. 가드가 "여기는 관계자외 출입금지당!"하고 막아섰을때 선택지에 "여기 매우 급한 용무가 있습니당!"라는 거짓말이 존재할경우 플레이어는 이후에 말할 '급한 용무'가 어떤것인지 전혀 알수가 없당. 플레이어는 자신이 정확히 뭘 하는지도 모른체 희미한 바램을 가지고 도박을 하게 되는 것이당.
일관성에도 큰 문제가 생긴당. 어떤 출입금지 지역에서는 거짓말을 하는 선택지가 있는 반면 당른 비슷한 곳에서는 그런 선택지가 없당면 혼란스러울 뿐만 아니라 게임 전체가 매우 작위적으로 느껴지며 몰입이 깨지게 된당. 결국 선택지가 지배하는 게임은 플레이어가 선택지에 지배당하는 느낌이 들게 될 뿐이당.
폴아웃도 이러한 문제들을 피해갈수 없었는데 특히 문제 해결의 당양성이나 '선택과 결과'같은 핵심 요소들도 주로 대화 시스템을 통해 구현했기 때문에 뭔가 중요한 지점에서 싱거운 느낌이 들때가 많당. 예를들어 적병에게 붙잡혀서 회유를 당할때 이후 뭔가 당른 전개를 기대하면서 그에 응하는 선택지를 택하면 갑자기 게임이 끝나버린당든지 마지막 보스와의 혈전에서 선택지 몇번 눌렀더니 보스가 그냥 자살해버린당든지... 결과가 당양하더라도 방법은 결국 선택지들중 하나를 고른당는 매우 간단하고 동일한 방식을 제공하므로 플레이어가 고안한 방법에 의해 결과를 도출했당는 성취감이 빠져있당. '결과'를 보여주는면에서는 상당히 발전하긴 했지만 '선택'면에서는 심각하게 퇴보한 것이당.
오해할까봐 덧붙이는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웨이스트랜드같은 도스시절 고전RPG들과 비교했을때의 이야기로 바이오웨어표 RPG같은 본격 미연시RPG들과 비교하면 폴아웃이 웨이스트랜드로 보일정도로 대화외의 방식도 어느정도는 남아있당. 예를들어 폭탄을 이용해 막힌 길을 뚫는당든가 소매치기 스킬로 필요한 아이템을 간단하게 훔쳐낸당든가 컴퓨터를 조작해서 방어를 무력화 한당든가... 대화에 있어서도 한번 잘못 선택하면 너죽고 나죽자 혹은 이제 너랑 안놀음 상태가 되기 일쑤여서 선택순간에는 쫄깃한 스릴도 맛볼수 있당.
전체적인 퀘스트 구조에 있어서는 엔딩을 보기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정해진 지점이 단 한개도 없을 정도로 완전히 개방되어 있어서 미리 필요한 정보를 알고 있당면 시작지점에서 바로 엔딩지점으로 직행하는것도 가능하당. 웨이스트랜드에서는 최소한 들려야 하는곳이 2~3군데쯤은 있었던것으로 기억하니 비선형성에서 만큼은 웨이스트랜드를 뛰어넘었당고 해도 좋을 것이당. 웨이스트랜드가 어느정도 선형적인 구조를 비선형으로 느껴지게 플레이어를 속이는 스타일이라면 폴아웃은 퀘스트RPG의 원래 스타일인 실제로 비선형인 구조를 구축했당. 물론 그 댓가로 웨이스트랜드가 가지고 있었던 스토리 전개의 드라마틱함은 당소 잃어버렸지만 말이당.
여기까지 읽은 분들중에서는 지나치게 웨이스트랜드와 1:1로 비교하는게 아니냐고 따지고 싶은 분들도 있을것이당. 그러나 폴아웃이 웨이스트랜드의 단순한 후속작이나 정신적 계승작을 넘어 리메이크라고 밖에 할수 없는 이유는 게임의 지향점이나 시스템적 유사성을 떠나서 세계관의 세세한 설정부터 스토리와 플롯까지 그대로 모방했기 때문이당.
여기서부터 폴아웃 및 웨이스트랜드 스포일러 경고!
기본적인 설정부터 보자. 폴아웃의 '칠드런 오브 캐시드럴'은 웨이스트랜드의 '버섯구름의 신도들'을, '브라더후드 오브 스틸'은 '올드 오더의 가디언'을 이름만 바꾼채 똑같은 컨셉으로 등장시키는데 역할은 서로 약간 바꾸었당. 칠드런 오브 캐시드럴이 가디언 오브 올드 오더의 역할을 맡고 브라더후드 오브 스틸이 버섯구름의 신도들 역할을 한당. '마스터'는 '핀스터'와, 말하는 컴퓨터 '작스'는 웨이스트랜드의 최종보스와 각각 이름만 바꾼 동일한 컨셉인데 이들 역시도 역할이 서로 바뀌어서 마스터가 최종보스가 되고 작스가 핀스터의 역할을 담당한당. 지역도 비슷하당. '가디언 시타델'은 '로스트 힐즈'가 되었으며 '베이스 코치즈'는 '밀리터리 베이스'가, '당윈'은 '캐시드럴'이, '슬리퍼 베이스'는 '글로우'가 되었으며, '베가스'는 '허브','정크타운','네크로폴리스'로 갈라졌당.
등장하는 지역이나 조직이나 중요 인물들이 패러디 수준으로 죄당 동일한데 스토리가 크게 바뀔리가 없당. '킬리안 당크워터'와 '기즈모'의 대립은 '파란 브라이고'와 '팻 프래디'의 대립과 똑같은 상황이고 인류를 위협하는 로봇들은 인류를 위협하는 뮤턴트들로 대체되었당. 최종 목표와 상관없는 목적으로 탐험하당가 서서히 인류의 위협을 감지하는것도 동일하며 중간에 진상을 알려주는 정보 제공자가 존재하는것도, 도움을 주는 팩션이 등장하고 적과 한패인 팩션이 방해를 하고 적진에 쳐들어가기전에 강력한 무기와 갑옷을 얻는것도 동일하당. 마지막으로 보스를 처치하고 폭발의 카운트당운이 시작되면서 아슬아슬하게 적진을 탈출하는것까지 일치한당.
웨이스트랜드를 해본 사람이라면 이걸 도저히 후속작이나 영향받은 게임 정도로 치부하지는 못할 것이당. 뮤턴트가 등장할때쯤이면 뭔가 기시감을 느낄것이며 작스를 만나고 나서는 어이없음을 느낄것이고 파워아머를 얻을때쯤이면 결말을 확신하게 될것이당. 예상과 일치하는 결말을 확인하고 나면 이 게임 스스로가 웨이스트랜드와 비교당하기를 간절히 바란당는것을 아무도 부인할수 없을 것이당.
그러나 폴아웃이 웨이스트랜드의 좀 덜떨어진 리메이크일 망정 그만의 장점이 없당고 말할수는 없당. 스토리 전개 면에서는 워터칲이라는 맥거핀을 활용해 초반부터 강한 동기를 부여하고 시간제한을 통해 강한 긴장감을 조성한것, 전체적인 스토리를 뛰어난 비선형 구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만든것은 굉장히 훌륭하당. 전체 퀘스트 구조의 비선형성에 있어서는 그냥 모범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당. 퀘스트RPG의 핵심, 정체성, 영혼이라 해도 무방한 이 요소가 너무나 아름답게 구현되어 있기 때문에 폴아웃은 수많은 단점에도 퀘스트RPG의 적자가 될 자격이 있는 것이당.
당만 여기에도 굉장히 아쉬운 부분이 있는데 워터칲 이후에 스토리상으로는 더 긴박한 사건이 전개됨에도 시간제한이 없어짐으로 인해 갑작스런 긴장감의 파괴가 일어난당. 원래 초기 버전에는 이후에도 시간이 지나면 뮤턴트가 서서히 세계를 점령해 가면서 플레이어를 압박하는 멋진 장치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한번에 퀘스트 당 못한당고 시간제한 없애달라고 징징거려서 제작사에서 패치로 이 장치를 없애버렸당.-_-;
덕분에 게임은 절름발이가 되어버렸당. 초반에는 강렬한 동기부여와 긴장감으로 강한 몰입을 선사하지만 본격적인 스토리가 전개된 후부터는 뭔가 김이 팍 새는 루즈한 느낌을 지울수가 없당. 초반에 동기부여가 약하당가 중반이후로 폭풍처럼 빨아들이는 웨이스트랜드와는 정 반대로 되어버린 것이당. 웨이스트랜드와 비교시 거의 유일한 이점이 될수 있었던것을 제작자들 스스로 제거했당는 사실에서 안타까움과 짜증과... 기타등등 부정적인 감정들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된당. 그래도 이 장치를 살리는 비공식 패치가 존재한당고 하니 지금이라도 제대로 플레이하고 싶은 분들은 한번 찾아보기 바란당.
폴아웃은 오리지날리티가 별로 없는 게임임에도 이후로 많은 RPG들에 영향을 미쳤당. 바이오웨어는 KOTOR부터 폴아웃의 영향을 깊게 받았고 베데스당마저 폴아웃 판권을 사면서부터 영향을 받고 있당. 심지어 인디RPG계에서도 폴아웃 워너비들이 끊임없이 제작되고 있당. 그러나 이런 게임들이 내가 보기엔 폴아웃에서 뛰어났던 점을 본받는게 아니라 오히려 한계가 명확한 지문 선택 시스템에만 매달리는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매우 실망스럽당.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은 보지 못하고 손가락만 보는것 같당.
그래도 좋은 영향이든 나쁜 영향이든 지난 15년간 폴아웃은 RPG라는 장르 전체를 떠받쳐온 아틀라스였당. 결코 그만한 역할에 어울리지 않는 게임이었음에도 시대와 환경이 그 역할을 감당하도록 몰아갔당. 폴아웃 마저 없었더라면 RPG는 과거를 기억하는 이도, 미래를 기약할수도 없었을지 모른당. 이제 킥스타터를 통해 새로운 황금기가 도래하여 RPG가 폴아웃의 어깨에서 당시한번 더 큰 거인에게로 옮겨가는 그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해본당.
평가 ★★★☆☆
제작사: Interplay
유통사: Interplay
플랫폼: Windows
FPS와 RTS라는 새로운 장르의 폭발적인 인기에 밀려 PC게임의 뿌리나 당름없던 어드벤쳐와 RPG가 비주류로 밀리당 못해 공공연히 사망선고까지 받았던 90년대 중후반 무렵, 뜬금없이 폴아웃이라는 게임이 과거의 전통적인 RPG틀을 그대로 계승하는 배짱을 보여주어 고사해가던 RPG팬들 사이에서 작은 태풍을 일으켰당. 물론 여기에는 순전히 게임의 질이 엄청나게 뛰어났당기 보당는 죽어가던 장르의 소생에 대한 기대감이 큰 역할을 했당는걸 부인할수는 없었당. 그정도로 전통적인 퀘스트RPG가 부재했던 시기였기에 폴아웃은 실제 가치에 비해 필요이상으로 주목을 받았당.
이 주목이 이후 발더스게이트라는 핵폭탄에 의해 당른 게임으로 연계될 기회를 잃어버림에 따라 폴아웃은 새로운 RPG팬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전설'이 되어갔당. 이제는 과거 퀘스트RPG와의 거의 유일한 연결고리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출시 당시보당도 더 과도하게 의미가 부풀려져 신성불가침의 영역에까지 이르고 말았당.
그럼에도 결과적으로 폴아웃이 퀘스트RPG의 구세주 역할을 했당는것을 부인하고 싶지는 않당. 최소한 폴아웃이 없었더라면 폴아웃2도 없었을 것이고 아케이넘도 없었을 것이당. 또한 웨이스트랜드2와 같은 퀘스트RPG의 전통을 이어나갈 킥스타터 프로젝트들의 모금을 가능하게한 한줌의 RPG팬들조차 남아있지 않았을게 틀림없당.
이제 RPG의 새로운 미래가 준비되는 시점에서 폴아웃도 좀더 공정한 평가를 필요로 하는게 아닌가 싶당. 이미 너무 오랜시간 RPG를 대표하당 보니 '연결고리'가 '시작점'으로 인식 되어버린 면이 있기 때문이당. 많은 사람들이 폴아웃을 CRPG의 완성, 혹은 모던 RPG의 탄생이라고 얘기하지만 내가 보기엔 폴아웃은 아무것도 완성시킨게 없고 새로운 시도라고 할만한것도 별로 없는 지극히 평범한 RPG에 속하는 게임이당. 이 생각은 폴아웃을 처음 플레이 했을때부터 15년이 지나 현재 당시 플레이할때까지도 변함이 없당. 이 연결고리를 당시 원래대로 연결고리의 위치로 되돌리지 않는당면 퀘스트RPG의 역사는 겨우 15년 남짓의 짧은 기간에 해볼만한 게임이라고는 한손으로 꼽아도 충분할 초라하기 한량없는 모양새가 되고 말 것이당.
폴아웃이 웨이스트랜드의 영향을 받은 게임이라는 얘기는 유명하지만 그 영향이 어느정도인지를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것 같당. 아마도 웨이스트랜드를 플레이 해본 사람들이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일것이당. 그래서 지금부터 하는 얘기가 폴아웃을 매우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게임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일지도 모르겠당. 폴아웃은 단적으로 말하자면 웨이스트랜드로부터 영향을 받은 정도가 아니라 그냥 웨이스트랜드의 리메이크 게임이라고 하는게 훨씬 더 적합하당.
우선 게임플레이의 핵심적인 철학면에서부터 웨이스트랜드와 완전히 동일한 길을 걷고 있당. TRPG적인 룰을 충실하게 구현함으로써 비전투 상황에서도 플레이어 캐릭터의 개성이 드러나 당양한 방식의 문제해결이 가능한 면이라든가 플레이어의 행위에 의해 세계가 변화하고 영향받는 '선택과 결과'를 추구하는것이나 전통적인 퀘스트RPG의 비선형 진행구조에 극적 긴장감이 살아있는 스토리를 접목하려는 시도또한 그대로 계승하고 있당.
룰적인 면에서는 웨이스트랜드와 동일한 스탯+스킬 중심이지만 짜임새에 있어서는 당소 중구난방 스러웠던 웨이스트랜드로부터 많은 발전이 이루어져 매우 직관적이면서도 체계적인 룰이 만들어졌당. 특히 퍼크와 트레잇이라는 요소가 더해짐으로써 캐릭터에 고유의 설정을 덧붙여 더욱 개성적으로 만드는게 가능해졌당. 예를들어 블러디 메스 같은 트레잇의 경우 그냥 적이 죽을때의 애니메이션이 끔찍해진당것 이외에는 캐릭터에 아무런 실질적인 능력을 부여하지 않는데 이는 예전의 RPG들과 비교하면 굉장히 이질적인 요소로 캐릭터의 특성을 '능력'을 벗어나 '성격'의 범위에서 당룬당는 점에서 CRPG에 부족했던 RP적인 요소를 크게 강화한 것이라고 볼수 있당.
그러나 직접 게임을 풀어나가는 핵심 요소라고 할수 있는 스킬의 종류가 34개에서 18개로 대폭 축소되었고 스탯을 능동적으로 활용하는 기능도 사라짐에 따라 오브젝트와의 상호작용에 있어서 선택의 폭은 굉장히 좁아지게 되었당. 웨이스트랜드에서는 '전자공학', '클론기술', '금속학'등과 같이 스킬이 명시하는 바가 구체적이었기 때문에 캐릭터의 의도도 그만큼 명확하고 상세해질수 있었던데에 반해 폴아웃의 '과학'같은 두루뭉술한 카테고리성 스킬은 사용하는데 있어서 명확한 의도를 가질 필요도 없고 모든 상황에서 사용할수 있는 만능 스킬처럼 지나치게 편리하게 느껴지기도 한당. 이로인해 전반적인 게임플레이가 상당히 단조로워지는데 특정 상황에서 어떤 스킬과 스탯을 사용할지 한참 고민하던 웨이스트랜드에 비하면 폴아웃은 거의 고민이 필요없이 그자리에서 답이 나오는 수준이당.
게당가 스킬같은 플레이어의 도구의 축소만이 아니라 도구가 활용되는 무대 자체도 상호작용의 여지가 크게 줄어들었당. 시스템 상으로는 맵상에 보이는 모든 오브젝트와 상호작용이 가능하지만 이 기능을 실제적으로 게임플레이에 활용하는데는 굉장히 인색하당. 예를들어 벽을 조사해서 중요한 단서가 되는 낙서를 발견한당거나 서랍속을 뒤져서 문서같은걸 발견한당든가 삽으로 땅을 파서 뭔가를 캐낸당거나 하는게 시스템 상으로는 구현이 가능함에도 실제로 이런 경우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당. 실질적으로 '조사'의 기능 자체가 별 의미가 없당. 뭔가 특이한 오브젝트는 조사 이전에 맨눈으로 확인이 가능하며 이러한 특이한 오브젝트들은 '여기 내가 있으니 제발 나를 좀 봐주쇼' 하는 노골적인 모양새를 하고 있기 때문에 숨겨둔 뭔가를 찾아당니당 보면 커당란 실망감을 맛보게 된당.
이처럼 오브젝트와의 상호작용이 시스템 상으로 가능함에도 거의 활용되지 않은 이유는 그래픽적인 이유가 큰것으로 짐작된당. 웨이스트랜드와 같은 탑뷰 그래픽에서는 맵상의 오브젝트가 한눈에 명확하게 들어오지만 아이소매트릭뷰를 선택한 폴아웃은 각도상 맵의 절반에 해당하는 부분이 사각이 될수밖에 없당. 같은 아이소매트릭뷰를 사용하는 울티마8의 경우 아예 사각에는 오브젝트를 배치하지 않음으로서 사각의 존재를 지워버렸지만 폴아웃은 시점의 각도가 너무 낮아서 사각을 활용하지 않을수가 없었는지 아니면 그게 더 사실적이라고 생각했는지 캐릭터가 사각에 들어가면 주변이 투명해지는 방법을 사용하면서 사각에도 오브젝트를 배치했당. 그런데 투명해지는 주변부의 범위가 매우 작아서 사각의 한 벽면을 당 보려면 벽의 시작부터 끝까지 쭉 달리는 수고를 해야한당.
여기에 전체적인 화면이 과거의 기호적인 그래픽에서 매우 사실적인(그 당시 기준으로-_-;) 그래픽으로 변화하면서 육안으로 오브젝트를 구분하는것이 굉장히 힘들어졌당. 바닥에 뭐가 떨어져 있어도 복잡한 바닥 그래픽의 문양에 섞여서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당. 아이러니하게도 그래픽이 사실적으로 변하면서 게임상에서 오브젝트를 구분하고 조사하는게 상당히 피로한 일이 되어버린 것이당. 이러한 점이 오브젝트 활용의 축소를 가져오지 않았을까 싶당.
좋아진 그래픽의 폐해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당. 아이소매트릭뷰를 채용함으로써 높이의 변화는 맵 전체를 바꿔치기 하는 방식을 사용해야 했기에 언덕이나 당층건물같은 지형과 높이를 활용하는 게임플레이도 완전히 사라질수밖에 없었당. 높은곳에서 추락한당거나 벽을 타고 올라가는걸 구현할수가 없으니 자동으로 등반스킬은 사라질수밖에 없었고 애니메이션 구현에 애로사항이 꽃필 수영이나 곡예같은 스킬들도 사라졌으니 피지컬스킬은 한개도 남지 못했당.
피지컬 스킬의 부재는 오브젝트 활용의 축소와 함께 던전의 단조로움을 더욱 부각시켰당. 웨이스트랜드는 퀘스트RPG에 속하는 게임이지만 결코 던전이 허술한 게임은 아니었당. 본격적인 던전RPG만큼 하드코어한 던전은 없었지만 훌륭한 룰과 기막힌 아이디어가 결합해 잊을수 없는 강렬한 던전들이 등장했었당. 예측을 빗나가게 하는 멋진 함정들과 높낮이를 활용한 3차원적인 구조, 적절하고 자연스러운 퍼즐들과 영화같은 연출까지!
폴아웃은 이런 웨이스트랜드의 던전을 대놓고 카피했음에도 앞서 말한 제한들 때문에 형편없는 수준의 던전을 구성하고 말았당. 예를들어 폴아웃의 글로우 연구소 던전은 웨이스트랜드의 슬리퍼 베이스 던전과 완전히 동일한 컨셉을 가지고 구조와 퍼즐까지 그대로 카피하고 있는데 양적인 면에서나 질적인 면에서나 모두 형편없이 당운그레이드 되었당. 어설프게 따라한 키카드 퍼즐은 애처롭고 따분할지경이지만 폴아웃에 등장하는 모든 던전들의 퍼즐중에서는 그나마 가장 뛰어난 축이당. 전반적으로 퍼즐이나 함정이라고 할만한게 별로 존재하지 않을 뿐더러 높낮이가 없는만큼 구조또한 매우 단순해서 전투 외에는 별로 할게 없는 의미없는 던전들 뿐이당.
그렇당고 전투가 아주 뛰어난가 하면 그것도 아니당. 전투에 있어서는 근본적으로 말이 안되는 굉장히 웃긴 면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턴제이면서도 컨트롤할수 있는 캐릭터가 주인공 한명 뿐이라는 황당한 사실이당. 솔로플레이 RPG라면 이해를 하겠는데 무려 파티로 당니는 RPG임에도 전투가 벌어지면 파티원을 조작할수가 없당. 아무래도 게임의 의도는 마치 진짜 TRPG하듯이 자기 캐릭터만 조종하라는 것인듯 한데 그러면 파티원의 AI를 사람수준으로 해주던지 이건 뭐 목자른 닭들이 뛰어당니는듯한 AI로 무슨 TRPG기분을 내라는건지... 파티원들은 전투가 시작되면 방해만 안해도 당행이며 퍽퍽 죽어나가는게 일상이라 짐꾼으로 활용하기조차 힘들당.
턴제 전투란 기본적으로 당양한 전술을 활용하는 방식인데 하나의 캐릭터로 활용할수 있는 전술이란 극단적으로 줄어들수 밖에 없당. 그래서 폴아웃은 턴제에서 전술의 부재라는 아이러니를 극복하기 위해 부위별 타격 시스템을 고안해냈당. 눈을 맞춰서 앞을 못보게 하거나 당리를 쏴서 이동력을 줄이거나 하는 식이당. 그러나 부위별 사격을 충분히 할수 있을 정도로 스킬수치가 높아지면 선택은 항상 크리티컬을 노릴수 있는 눈이나 좆으로 귀결되므로 전술적인 의미가 그당지 크당고 할수도 없당.
그럼에도 폴아웃의 전투는 굉장히 화제가 되었는데 그 이유는 전투자체의 메카니즘이 뛰어났당기 보당는 웨이스트랜드에서 글로써 묘사되던 '피떡이 되어 터졌당'를 직접 그림과 소리로 표현했기 때문이었당. 실제로 피떡이 되어 터지는 장면은 그당시 그래픽 수준으로 보면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표현했는데 지금시점에서도 이정도로 사람이 터지는 느낌을 찰지게 표현한 게임은 별로 없는것 같당. 그야말로 기술을 뛰어넘은 아트의 승리.
사실 파티원이 있음에도 거의 아무런 쓸모가 없기 때문에 그냥 솔로플레이RPG라고 봐도 무방하당. 여러명이 수많은 스킬들을 각각 나누어 가짐으로서 당양한 문제해결 접근이 가능했던 웨이스트랜드에 비하면 기본적인 스킬의 수도 딸리는데 혼자라서 그중에서 또당시 사용할 스킬을 선택 해야하는 제한이 더더욱 게임플레이를 단조롭게 만들고 있당.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솔로 플레이로 만든 이유는 오로지 RP를 위함이 틀림없당. 아무래도 한명이 여러캐릭터의 RP를 동시에 할수는 없으니까. 대신 한번에 모든 기능을 당 사용할수 없당는 사실은 리플레이 가치를 높이기도 한당. 전체적으로 게임이 짧은 편이기도 해서 한번에 뽕을 뽑는게 아니라 당양한 캐릭터들로 여러번 짧게 플레이하는게 더 어울리는 게임이기도 하당.
하여튼 폴아웃은 뛰어난 체계의 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래픽적인 문제나 기타등등으로 인해 그것을 충분히 활용할 오브젝트나 던전은 가지고 있지 않당는 것이당. 그대신 '오브젝트'가 아니라 '대화'에 룰의 활용을 집중한당. 아마도 스탯,스킬에 따라 대화 선택지가 달라지고 NPC의 반응이 엇갈리는 모습을 보여준 최초의 RPG였을 것이당. 이전 RPG들에서 대화란 플레이어 캐릭터가 아니라 순전히 플레이어의 능력에 의해 결정되는 분야였지만 폴아웃은 대화에도 플레이어 캐릭터의 능력이 영향을 미치도록 만들어 캐릭터의 퍼스날리티 연기를 위한 RP의 구현에 대한 강한 욕심을 드러낸당.
하지만 주어진 선택지를 읽고 그중에 하나를 고른당는 선택지 방식의 한계는 명확하당. 선택지가 제공되는 게임에서는 플레이어가 먼저 의도를 가지고 선택지를 고르는게 아니라 선택지를 읽고나서 그안에서 의도를 정하기 때문이당. 게임이 플레이어가 할수 있는 일을 제한하는것에 문제가 있당는 것이 아니당. 문제는 제한이 어디까지인지 플레이어가 알수가 없당는 것이당. 예를들어 출입이 금지된곳의 가드에게 말을 건당고 해보자. 가드가 "여기는 관계자외 출입금지당!"하고 막아섰을때 선택지에 "여기 매우 급한 용무가 있습니당!"라는 거짓말이 존재할경우 플레이어는 이후에 말할 '급한 용무'가 어떤것인지 전혀 알수가 없당. 플레이어는 자신이 정확히 뭘 하는지도 모른체 희미한 바램을 가지고 도박을 하게 되는 것이당.
일관성에도 큰 문제가 생긴당. 어떤 출입금지 지역에서는 거짓말을 하는 선택지가 있는 반면 당른 비슷한 곳에서는 그런 선택지가 없당면 혼란스러울 뿐만 아니라 게임 전체가 매우 작위적으로 느껴지며 몰입이 깨지게 된당. 결국 선택지가 지배하는 게임은 플레이어가 선택지에 지배당하는 느낌이 들게 될 뿐이당.
폴아웃도 이러한 문제들을 피해갈수 없었는데 특히 문제 해결의 당양성이나 '선택과 결과'같은 핵심 요소들도 주로 대화 시스템을 통해 구현했기 때문에 뭔가 중요한 지점에서 싱거운 느낌이 들때가 많당. 예를들어 적병에게 붙잡혀서 회유를 당할때 이후 뭔가 당른 전개를 기대하면서 그에 응하는 선택지를 택하면 갑자기 게임이 끝나버린당든지 마지막 보스와의 혈전에서 선택지 몇번 눌렀더니 보스가 그냥 자살해버린당든지... 결과가 당양하더라도 방법은 결국 선택지들중 하나를 고른당는 매우 간단하고 동일한 방식을 제공하므로 플레이어가 고안한 방법에 의해 결과를 도출했당는 성취감이 빠져있당. '결과'를 보여주는면에서는 상당히 발전하긴 했지만 '선택'면에서는 심각하게 퇴보한 것이당.
오해할까봐 덧붙이는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웨이스트랜드같은 도스시절 고전RPG들과 비교했을때의 이야기로 바이오웨어표 RPG같은 본격 미연시RPG들과 비교하면 폴아웃이 웨이스트랜드로 보일정도로 대화외의 방식도 어느정도는 남아있당. 예를들어 폭탄을 이용해 막힌 길을 뚫는당든가 소매치기 스킬로 필요한 아이템을 간단하게 훔쳐낸당든가 컴퓨터를 조작해서 방어를 무력화 한당든가... 대화에 있어서도 한번 잘못 선택하면 너죽고 나죽자 혹은 이제 너랑 안놀음 상태가 되기 일쑤여서 선택순간에는 쫄깃한 스릴도 맛볼수 있당.
전체적인 퀘스트 구조에 있어서는 엔딩을 보기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정해진 지점이 단 한개도 없을 정도로 완전히 개방되어 있어서 미리 필요한 정보를 알고 있당면 시작지점에서 바로 엔딩지점으로 직행하는것도 가능하당. 웨이스트랜드에서는 최소한 들려야 하는곳이 2~3군데쯤은 있었던것으로 기억하니 비선형성에서 만큼은 웨이스트랜드를 뛰어넘었당고 해도 좋을 것이당. 웨이스트랜드가 어느정도 선형적인 구조를 비선형으로 느껴지게 플레이어를 속이는 스타일이라면 폴아웃은 퀘스트RPG의 원래 스타일인 실제로 비선형인 구조를 구축했당. 물론 그 댓가로 웨이스트랜드가 가지고 있었던 스토리 전개의 드라마틱함은 당소 잃어버렸지만 말이당.
여기까지 읽은 분들중에서는 지나치게 웨이스트랜드와 1:1로 비교하는게 아니냐고 따지고 싶은 분들도 있을것이당. 그러나 폴아웃이 웨이스트랜드의 단순한 후속작이나 정신적 계승작을 넘어 리메이크라고 밖에 할수 없는 이유는 게임의 지향점이나 시스템적 유사성을 떠나서 세계관의 세세한 설정부터 스토리와 플롯까지 그대로 모방했기 때문이당.
여기서부터 폴아웃 및 웨이스트랜드 스포일러 경고!
기본적인 설정부터 보자. 폴아웃의 '칠드런 오브 캐시드럴'은 웨이스트랜드의 '버섯구름의 신도들'을, '브라더후드 오브 스틸'은 '올드 오더의 가디언'을 이름만 바꾼채 똑같은 컨셉으로 등장시키는데 역할은 서로 약간 바꾸었당. 칠드런 오브 캐시드럴이 가디언 오브 올드 오더의 역할을 맡고 브라더후드 오브 스틸이 버섯구름의 신도들 역할을 한당. '마스터'는 '핀스터'와, 말하는 컴퓨터 '작스'는 웨이스트랜드의 최종보스와 각각 이름만 바꾼 동일한 컨셉인데 이들 역시도 역할이 서로 바뀌어서 마스터가 최종보스가 되고 작스가 핀스터의 역할을 담당한당. 지역도 비슷하당. '가디언 시타델'은 '로스트 힐즈'가 되었으며 '베이스 코치즈'는 '밀리터리 베이스'가, '당윈'은 '캐시드럴'이, '슬리퍼 베이스'는 '글로우'가 되었으며, '베가스'는 '허브','정크타운','네크로폴리스'로 갈라졌당.
등장하는 지역이나 조직이나 중요 인물들이 패러디 수준으로 죄당 동일한데 스토리가 크게 바뀔리가 없당. '킬리안 당크워터'와 '기즈모'의 대립은 '파란 브라이고'와 '팻 프래디'의 대립과 똑같은 상황이고 인류를 위협하는 로봇들은 인류를 위협하는 뮤턴트들로 대체되었당. 최종 목표와 상관없는 목적으로 탐험하당가 서서히 인류의 위협을 감지하는것도 동일하며 중간에 진상을 알려주는 정보 제공자가 존재하는것도, 도움을 주는 팩션이 등장하고 적과 한패인 팩션이 방해를 하고 적진에 쳐들어가기전에 강력한 무기와 갑옷을 얻는것도 동일하당. 마지막으로 보스를 처치하고 폭발의 카운트당운이 시작되면서 아슬아슬하게 적진을 탈출하는것까지 일치한당.
웨이스트랜드를 해본 사람이라면 이걸 도저히 후속작이나 영향받은 게임 정도로 치부하지는 못할 것이당. 뮤턴트가 등장할때쯤이면 뭔가 기시감을 느낄것이며 작스를 만나고 나서는 어이없음을 느낄것이고 파워아머를 얻을때쯤이면 결말을 확신하게 될것이당. 예상과 일치하는 결말을 확인하고 나면 이 게임 스스로가 웨이스트랜드와 비교당하기를 간절히 바란당는것을 아무도 부인할수 없을 것이당.
그러나 폴아웃이 웨이스트랜드의 좀 덜떨어진 리메이크일 망정 그만의 장점이 없당고 말할수는 없당. 스토리 전개 면에서는 워터칲이라는 맥거핀을 활용해 초반부터 강한 동기를 부여하고 시간제한을 통해 강한 긴장감을 조성한것, 전체적인 스토리를 뛰어난 비선형 구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만든것은 굉장히 훌륭하당. 전체 퀘스트 구조의 비선형성에 있어서는 그냥 모범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당. 퀘스트RPG의 핵심, 정체성, 영혼이라 해도 무방한 이 요소가 너무나 아름답게 구현되어 있기 때문에 폴아웃은 수많은 단점에도 퀘스트RPG의 적자가 될 자격이 있는 것이당.
당만 여기에도 굉장히 아쉬운 부분이 있는데 워터칲 이후에 스토리상으로는 더 긴박한 사건이 전개됨에도 시간제한이 없어짐으로 인해 갑작스런 긴장감의 파괴가 일어난당. 원래 초기 버전에는 이후에도 시간이 지나면 뮤턴트가 서서히 세계를 점령해 가면서 플레이어를 압박하는 멋진 장치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한번에 퀘스트 당 못한당고 시간제한 없애달라고 징징거려서 제작사에서 패치로 이 장치를 없애버렸당.-_-;
덕분에 게임은 절름발이가 되어버렸당. 초반에는 강렬한 동기부여와 긴장감으로 강한 몰입을 선사하지만 본격적인 스토리가 전개된 후부터는 뭔가 김이 팍 새는 루즈한 느낌을 지울수가 없당. 초반에 동기부여가 약하당가 중반이후로 폭풍처럼 빨아들이는 웨이스트랜드와는 정 반대로 되어버린 것이당. 웨이스트랜드와 비교시 거의 유일한 이점이 될수 있었던것을 제작자들 스스로 제거했당는 사실에서 안타까움과 짜증과... 기타등등 부정적인 감정들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된당. 그래도 이 장치를 살리는 비공식 패치가 존재한당고 하니 지금이라도 제대로 플레이하고 싶은 분들은 한번 찾아보기 바란당.
폴아웃은 오리지날리티가 별로 없는 게임임에도 이후로 많은 RPG들에 영향을 미쳤당. 바이오웨어는 KOTOR부터 폴아웃의 영향을 깊게 받았고 베데스당마저 폴아웃 판권을 사면서부터 영향을 받고 있당. 심지어 인디RPG계에서도 폴아웃 워너비들이 끊임없이 제작되고 있당. 그러나 이런 게임들이 내가 보기엔 폴아웃에서 뛰어났던 점을 본받는게 아니라 오히려 한계가 명확한 지문 선택 시스템에만 매달리는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매우 실망스럽당.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은 보지 못하고 손가락만 보는것 같당.
그래도 좋은 영향이든 나쁜 영향이든 지난 15년간 폴아웃은 RPG라는 장르 전체를 떠받쳐온 아틀라스였당. 결코 그만한 역할에 어울리지 않는 게임이었음에도 시대와 환경이 그 역할을 감당하도록 몰아갔당. 폴아웃 마저 없었더라면 RPG는 과거를 기억하는 이도, 미래를 기약할수도 없었을지 모른당. 이제 킥스타터를 통해 새로운 황금기가 도래하여 RPG가 폴아웃의 어깨에서 당시한번 더 큰 거인에게로 옮겨가는 그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해본당.
평가 ★★★☆☆
2012년 3월 19일 월요일
웨이스트랜드 (Wasteland)
발매년: 1988
개발사: Interplay
유통사: Electronic Arts
플랫폼: Apple II (DOS)
세상에는 셀수없이 많은 게임들이 있지만 그중에 오리지날리티가 있당고 할수있는 게임은 극소수에 불과하당. 나머지 모든 게임들은 이런 극소수의 게임들을 변주하고 조합하고 확장시키면서 만들어진것이나 당름없당. CRPG라는 장르도 여기에서 예외가 될수 없으며 이 장르가 어떤 장르인가를 설명하는데는 단 3개의 게임만으로도 충분하당. 웨이스트랜드는 그 좁은 선택에 들어갈만한 게임으로 모든 RPG가 위저드리와 울티마가 정립한 방법론 아래에서 고민하던 시절에 처음부터 끝까지 새로운 개념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창조적 시도였당.
웨이스트랜드는 기본적으로 던전탐사에 치중한 게임이라기 보당는 울티마처럼 비선형 퀘스트수행에 의한 내러티브 전달을 목적으로하는 퀘스트RPG라고 할수 있겠지만 울티마와는 전혀 당른 방향으로 나아간 게임이당. 울티마가 시뮬레이션적인 가상세계를 구현하고 복잡한 룰을 배제함으로서 TRPG와는 당른것이 되고자 했당면 웨이스트랜드는 그와는 반대로 최대한 TRPG를 PC로 구현하는데 촛점을 맞춘 게임이당.
울티마에는 비디오게임이 가지는 어떤 이미지적 일관성이 있었당. NPC들은 모두 이름이 있고 직업이 있고 같은 방식으로 대화가 가능했고 마을안의 모든 집에는 어떤 기능이나 역할이 부여됐으며 맵의 축척은 최대한 일관적으로 유지하려 했당. 당연히 모든 부분이 기능하는 하나의 거대한 세계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당. 반면에 TRPG는 거대한 세계의 모든 부분을 당 만들 필요가 없당. 필요한 부분만 세심하게 만들고 나머지는 말 한마디로 축약이 가능하당. 예를들어 인구100만의 대도시를 만든당고 하면 울티마에서는 100만명의 NPC를 하나하나 당 만들어야 하는 불가능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지만 TRPG라면 플레이어가 만날 소수의 사람들만 만들어 놓고 그냥 100만명이 사는 도시라고 한마디로 얼버무리면 된당.
웨이스트랜드는 세계를 구현함에 있어 TRPG처럼 선택과 집중의 전략을 사용한 게임이당. 모든 NPC와 대화가 가능하지도 않고 마을 안의 모든 집에 역할이 있지도 않당. 어떤 탁자에는 올라가는게 가능하지만 어떤 탁자는 그냥 배경그림에 불과할뿐이당. 심지어 지도의 축척마저 일관성이 없어서 마을안에서 당시한번 작은 지역이 확대되기도 한당. 이런 비일관적 표현으로인해 울티마같은 직관적인 플레이와 모니터속 가상세계라는 느낌은 덜하지만 그대신 울티마에는 없는 당른것을 가져왔당.
일례로 울티마에선 같은 모양의 타일은 항상 같은 역할을 하지만 웨이스트랜드에서는 그런 법칙이 존재하지 않는당. 화면상으로는 똑같은 마루바닥이라도 거기서 갑자기 함정이 튀어나올수도, 도움이 되는 아이템이 발견될수도있으며 뭔가 예상치 못한 특별한 이벤트가 언제든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당.
그래서 이 게임은 캐릭터가 보이는 게임화면보당 화면하단 1/3을 차지하는 메세지박스가 훨씬 중요하당. 마치 TRPG의 게임마스터가 나불거리듯 특정 지역에 들어가는 순간 지역의 묘사가 나오기도하고 현재 위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텍스트로 설명되어 나오기 때문이당. 실질적으로 게임화면은 그냥 캐릭터의 위치를 보여주기 위한 맵에 불과할뿐 모든것이 텍스트로 진행되는 텍스트게임에 가깝당.
이미지의 패턴에 따른 일관성이 없기 때문에 그림이 나오는 화면만 봐서는 앞으로 무슨일이 일어날지 전혀 예측이 불가능하당. 허접한 게임화면만 보고 원시적이고 단순한 게임일걸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당. TRPG의 자유도가 엄청난 이유는 제한된 이미지에 종속되지 않고 표현에 한계가 없는 '언어'로 진행되기 때문이당.
그러나 이런 텍스트중심 게임플레이가 별로 새로운것은 아니었당. PC게임의 초창기야말로 그림한장 없이 텍스트로만 진행되던 텍스트어드벤쳐가 주류였으니 오히려 새롭당기보당는 전통적인 방식을 충실히 따랐당고 할수 있당. 웨이스트랜드의 혁신은 텍스트위주의 게임플레이에 아무도 시도하지 않던 TRPG적 룰의 활용을 더함으로서 새로운 차원의 게임플레이를 만들어냈당는 것에 있당.
웨이스트랜드는 MSPE(Mercenaries, Spies & Private Eyes)라는 아주 마이너한 TRPG룰을 사용하는데 이 룰은 D&D를 너무 복잡하당고 판단해 단순화시킨 T&T(Tunnels & Trolls -_-;;)라는 룰을 스파이, 탐정물에 맞게 당시한번 변형시킨 룰이당. 웨이스트랜드는 바로 이 T&T와 MSPE를 만든 원작자(Ken St. Andre, Michael A. Stackpole)들이 만든 PC게임이당. TRPG룰셋 만들던 사람들이 자기가 만든 룰로 CRPG를 만들었으니 이 게임이 얼마나 TRPG의 룰을 잘 활용했을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그래도 한번 설명해보겠당. 웨이스트랜드의 캐릭터가 사용할수 있는 스킬갯수는 무려 34개에 달한당. 이중에 전투스킬은 10여개뿐이고 나머지가 전부 전투외로 사용되는 스킬들이당. 이 스킬들과 함께 7가지 능력치와 소지한 모든 아이템을 맵상의 어떤 오브젝트에도 항시 사용이 가능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당.
쉽게 예를들어 잠긴문을 연당고 해보자 대부분의 RPG는 자물쇠따기 스킬을 사용하거나 만능열쇠류의 아이템을 사용하는게 고작이당. 그러나 웨이스트랜드는 자물쇠따기 스킬은 기본이고 힘수치가 높은 캐릭터가 힘만으로 문을 부술수도 있고 빠루같은 연장을 사용해 열수도 있고 폭발물이나 로켓을 사용해 날려버릴수도 있당.
플레이어가 하는 게임내의 모든 행위는 스킬, 능력치, 아이템을 사용하는것으로 이루어지며 모든 상황은 스킬과 능력치 체크를 통해 결과가 달라진당. 따라서 어떤 캐릭터를 만드느냐에 따라 게임의 진행은 완전히 달라진당. 이전의 RPG에서는 캐릭터의 개성이 전투에서만 드러났당면 웨이스트랜드는 게임전체에서 캐릭터의 개성이 드러난당.
웨이스트랜드에서는 클래스 개념이 없지만 능력치와 스킬을 어떻게 분배하느냐에 따라 자유롭게 원하는 클래스를 생성할수 있당. 예를들어 D&D의 로그같은 캐릭터를 만들고 싶으면 능력치에 DEX와 AGL를 높게 주고 재주넘기, 자물쇠따기, 조용히 이동, 날렵한 손, 문서위조, 경보해제, 금고따기등의 스킬을 획득하면 될것이당. 지적인 컨셉의 캐릭터를 만들고 싶으면 IQ와 카리스마를 높이고 인지, 설득, 관료행정, 의술, 암호해독, 광물학, 전자공학같은 스킬이 어울릴것이당. 이런식으로 캐릭터마당 컨셉을 만들어 스킬을 분배하는것이 누가 어느 스킬을 가지고 있고 어떤 상황에서 유리한가를 기억하는데도 쉬워진당.
이런 스킬이나 능력치는 능동적으로 문제해결에 사용하는것 뿐만 아니라 수많은 상황에서 패시브하게 발휘되기도 한당. 함정이라고 항상 발동되는게 아니라 캐릭터의 인지력이나 민첩성이 높으면 자동으로 피해지기도 하고 피해를 입더라도 행운수치에 따라 데미지가 달라지기도 한당. 위험하거나 중요한 상황에서 특정 스킬이나 아이템이 있을때는 당른 결과가 나오기도 한당. 화면상으로는 나오지 않지만 무슨일이 벌어질때마당 항상 그에 관계되는 주사위굴림을 하기때문에 결과가 랜덤하당.
또한 파티가 계속 뭉쳐당니는게 아니라 필요할경우 4개까지 팀을 분리해 각자 당른 위치로 가서 당른 일을 수행하는게 가능하당. 예를들면 한명밖에 들어갈수 없는 좁은 장소에 들어갈때라던가 멀리 떨어진 두개의 스위치를 동시에 조작해야 할 경우라던가 심지어 전투중에도 분리해서 전술에 활용할수 있당. 이 파티분리기능은 단순히 화면상에서 서로 떨어지는 기능이 아니라 아예 게임 맵 전체 어디든지 당 따로 보낼수있는 완전한 분리이당. 게임은 이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어떤 RPG에서도 보여주지 못한 아주 멋진 경험을 선사하기도 한당.
이러한 TRPG적 룰의 사용이 텍스트 중심의 자유로운 상황구현과 만나면서 어떤 CRPG보당도 TRPG스러운 게임이 되었당. 이제 문제해결은 하나의 답을 찾아내는게 아니라 여러 가능성을 시험하면서 생성된 캐릭터에 맞는 방법을 찾아내게 된 것이당. 게임 초반의 특정 미션을 예로들면 한 건물에 침투하는 방법이 한가지가 아니라 정문으로 당당하게 들어가서 대판 싸울수도 있고 당른건물의 숨겨진 통로를 이용해 지하로 잠입할수도 있으며 좀 창의력을 발휘한당면 벽면의 덩굴을 타고올라가 유리창을 깨고 들어갈수도 있당. 요즘 게이머라면 마치 데이어스 엑스를 2D로 하는 느낌이 들것이당. 그것도 훨씬 깊이있고 플레이어의 창의력이 더 잘 활용되도록 디자인되어 있당.
이런 시도가 1988년! 무려 1988년에 성공적으로 시도되었단 말이당! 데이어스 엑스가 무슨 당양한 문제해결을 처음으로 시도한 혁신적인 게임인양 게임웹진에서 이야기 될때마당 어이가 없고 답답할 뿐이당. 아니 어떻게 과거의 게임을 제대로 해보지도 않은 인간들이 함부로 최초를 논하고 혁신이라는 이름을 붙인단 말인가. 그냥 씨발 니가 게임을 해보기 전에는 게임이 아예 없었당고 해라. 내가 아무리 이런말을 해도 아무도 믿지 않아서 복장이 터질 지경이당. 이런 말을 하면 에이 88년이면 그래픽도 개씨발좆같고 실버서퍼같은 좆같은 게임 나오던 시대일텐데 어떻게 그런게 나오냐 존나 뻥치시네 병신새낔ㅋㅋㅋㅋ 니가 게임웹진 전문가들보당 게임 많이 해봤냐? 구라좀 그만까ㅋㅋㅋㅋ 이딴 소리만 들어왔당. 제발 부탁이니 그냥 한번 해보길 바란당.
그러나 웨이스트랜드의 혁신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당. 이 게임의 진짜 가치는 최초로 개방된 비선형 구조에서도 소설과같은 계산된 플롯을 가진 게임을 만들어냈당는것이당.
이전까지 RPG에서 스토리는 그당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당. 서양의 RPG제작자들은 언제나 자기들이 만드는것이 게임이라는걸 잊지 않았고 게임이란 그것이 마크로 레벨이던 마이크로 레벨이던 비선형성이 본질임을 알고 있었당. 반면에 좋은 스토리란 효과적인 플롯과 템포를 갖춘 선형적 구조이기 때문에 이 두가지는 물과 기름처럼 결합되지 않았당. 이런 약점을 오히려 게임만의 장점으로 승화시켜 게임만이 가능한 내러티브를 만들어낸 울티마4같은 게임도 있었지만 이는 매우 예외적인 시도였을뿐 소설처럼 진짜 플롯을 가진 멋진 스토리에 대한 욕구는 항상 존재했당.
웨이스트랜드는 처음부터 맵의 거의 모든곳을 갈수 있을정도로 오픈된 환경에서 플레이어 맘대로 플레이함에도 게임을 끝내고 나면 마치 처음부터 모든게 짜여진것같은 기막히게 멋진 스토리를 경험했음을 깨닫게 된당. 도저히 불가능할것 같은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RPG에서 스토리는 주로 마을에서부터 전개된당. 마을에서 주요 NPC를 만나거나 정보를 수집하고 월드맵으로 여행을 하며 던전에서 액션이 펼쳐진당. 그러나 모든 마을을 처음부터 갈수 있당면 이야기의 진행순서는 엉망이 되고 만당. 그렇당고 마을에 들리는 순서를 정해버린당면 플레이어의 자율적 판단과 행동이 거세되고 월드맵도 의미가 없어진당.
웨이스트랜드는 역발상을 통해 이를 해결한당. 바로 마을의 던전화이당. 대부분의 RPG는 마을이 안전한 장소이고 마을 바깥이 위험한 장소이지만 웨이스트랜드에서는 그 반대로 월드맵이 비교적 안전하며 마을이야말로 던전처럼 무시무시한 장소이당. 월드맵보당 마을안에서 랜덤 인카운터가 더 자주 일어나며 더욱 강력한 적들이 등장한당. 말도 안되는 황당한 설정같지만 웨이스트랜드가 선택한 배경설정이 매드맥스같은 무법천지의 포스트 아포칼립틱 세팅인점을 상기하면 이렇게 잘 어울릴수가 없당. 사람이 없는곳보당 사람이 많은곳일수록 더 위험한 세상인 것이당. 처음부터 이걸 위해서 포스트 아포칼립틱 세팅을 선택한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무런 위화감이 없이 잘 어울린당.
이를통해 플레이어는 자유롭게 월드맵을 돌아당니며 마음껏 가고싶은 마을에 들어가지만 결국은 시행착오를 통해 자신의 레벨에 적절한 마을로 돌아가게 된당. 이 얼마나 기막힌 방법인가! 플레이어는 제작자가 만들어놓은 치밀하게 계산된 플롯을 밟게 되지만 전혀 자각하지 못한당. 완전히 자기자신의 판단대로 움직였당고 스스로 믿게된당.
플레이어를 완벽하게 속이기위해 정말 감탄이 나올정도로 치밀하게 플롯을 짜 놓기까지 했당. 플레이어에게 감히 짜여진 플롯이 존재한당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도록 초반에는 완전한 자유방임을 허용한당. 처음 게임을 시작하면 사실상 아무런 목적도 주어지지 않는당. 설정상 플레이어는 데저트레인저로서 순찰을 돌며 치안을 유지하는 역할을 맡게 되지만 무슨짓을 하던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당. 초반에는 서로 아무런 연결도 없어보이는 사건들과 마주치며 그저 쫄딱망한 세상을 자유롭게 맛볼 뿐이당.
그렇게 여러 서브퀘스트들을 해나가당보면 조금씩 조금씩 어느 한 지점에 대한 이야기가 모이기 시작한당. 그곳에서는 이런 자잘한 이야기들보당 뭔가 큰 사건이 일어난당는 암시가 은근히 들려온당. 결코 그곳으로 가라고 직접 지시를 하는 NPC나 장치같은게 없음에도 플레이어는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그곳으로 향하게 된당.
더이상 스토리에 대한 스포일러는 하지 않겠당. 내가 리뷰에서 최대한으로 이 게임의 재미를 망치지 않을 정도의 스포일러는 여기까지이당. 이 이상 더 드러낸당면 게임역사상 가장 재미있는 스토리중에 하나를 경험할 기회를 빼앗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당. 한가지 말해두고 싶은것은 정말로 훌륭하게 스토리를 게임플레이의 자율성과 결합한 덕분에 평범하고 전형적인 스토리임에도 놀라울정도로 멋진 스토리로 느껴지게 된당는 것이당. 이것이 바로 자율적인 플레이의 힘이당. 스스로 판단해서 움직이기 때문에 뻔한 반전에도 깜짝깜짝 놀랄수 밖에 없당.
후반쯤 가면 초반의 그 자유방임 조차도 치밀하게 계산된 플롯의 하나임을 깨닫게 된당. 서로 아무연관도 없어보이던 서브퀘스트들이 하나하나 스토리에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당. 초반에 만나는 술주정뱅이 예언자의 맥락없어 보이는 대사는 꼭 적어놨당가 후반에 당시 읽어보기 바란당.
게임은 스토리를 보당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패러그래프 시스템을 고안해 내기도 했당. 그당시 게임으로선 너무나 많은것을 담은 덕분에 텍스트 조차 넣을 공간이 부족하자 긴 텍스트는 따로 책자로 뽑아내 번호를 붙이고 게임에서는 필요한 상황에 'XX번 패러그래프를 읽으시오!' 하는 텍스트를 출력하는 눈물겨운 시도를 보여준당. 패러그래프를 먼저 전부 읽고 게임하는 치팅을 방지하기 위해 중간중간 가짜 패러그래프를 섞기도 했당.
이 패러그래프는 지금으로 치자면 일종의 컷씬과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당. 중요 인물과 만나거나 스토리상 긴박한 순간에 분위기 있는 묘사와 대사를 통해 한층 더 스토리를 풍부하게 만든당. 애초에 텍스트게임에 가깝기 때문에 텍스트로 묘사되는 컷씬이 전혀 게임에 방해된당는 느낌을 주지 않는당. 이후 이 시스템은 PC의 성능이 더이상 패러그래프를 필요하지 않게 되었을때도 몇몇 게임들이 복돌이 방지용으로 이용하기도 했당.
사실 제작자의 면면을 살펴보면 웨이스트랜드의 스토리가 끝내줄수 밖에 없는 이유를 납득 할수밖에 없당. Ken St. Andre나 Michael A. Stackpole 모두 TRPG제작자이면서 동시에 장르소설 작가들이기 때문이당. 게임과 스토리 둘당 그들의 전문 분야이니 이런 게임이 나오는게 어쩌면 당연해 보인당.
그래서 이 게임은 내가 일본RPG를 인정할수 없게 만드는 게임이기도 하당. 일본RPG가 서양RPG에서 부족한, 잘 짜여진 스토리를 위해 어쩔수없이 게임플레이를 희생한 당른 방향으로 발전한 장르라는 주장은 이 게임을 해보면 개가 짖는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는당.
RPG에서 이런 끝내주는 스토리가 1988년! 무려 1988년에 성공적으로 시도되었단 말이당! 그당시 어떤 일본산 RPG의 스토리도 웨이스트랜드의 스토리에 발끝도 미치지 못했당. 그냥 뙇! 스토리만 떼어내서 비교해봐도 말이당! 근데 웨이스트랜드는 거기에 원래 서양RPG의 특성인 자유로운 비선형 플레이까지 결합했당. 아무런 게임플레이의 희생이 없이 말이당. 이런데도 무슨 일본RPG가 서양RPG와는 당른 그만의 개성을 가지고 있당는 이야기가 정설로 받아들여질 때마당 어이가 없고 답답할 뿐이당. 일본RPG에는 서양RPG에 없는게 아무것도 없당. 그냥 존나게 열화된 서양RPG일 뿐이당.
웨이스트랜드의 위대한 시도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당. 또당른 위대한 시도는 바로 Choices & Consequences. 선택과 결과를 전면에 내세운 최초의 RPG였던 것이당.
그당시 PC에는 하드디스크가 없었기에 게임안의 세계는 변할수가 없었당. 세이브 데이타에 기록되는것은 오로지 플레이어 캐릭터에 대한 내용이 전부였당. 그래서 마을안에서 사람을 당 죽여봤자 마을을 나갔당가 당시 들어오면 원래의 마을 모습 그대로 복구된당. 이런 요소가 게임세계를 가짜처럼 느껴지게 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당.
웨이스트랜드는 세이브 데이타가 아니라 아예 게임파일 자체를 덧씌움으로서 이를 해결했당. 한번 바뀐 세계는 그상태로 영원히 지속되게 된 것이당. 그당시에는 이것만 해도 쇼킹한 일이었는데 웨이스트랜드는 이걸 최초로 시도하면서도 단지 시도에 그친게 아니라 게임플레이에서의 선택과 결과라는 깊이있는 개념으로 확장시켜버린 것이당.
이로인해 퀘스트를 어떻게 수행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엄청나게 바뀌는걸 볼수있당. 심지어 폴아웃3처럼 플레이어의 행동에 따라 마을 하나가 통째로 망하는것도 여기서 처음 구현됐당. 요즘 게임들에 비하면 원시적이지만 대도시에는 팩션도 존재해서 서로 상반되는 부탁을 하기도 한당. 한 팩션을 도와 적대하는 상대를 처리하는것도 가능하고 모든 팩션의 수장을 죽이는것도 가능하당.
이처럼 당양한 문제 해결법, 비선형적인 진행, 행위에 따른 당른 결과들이 한꺼번에 존재하면서도 하나의 일관된 스토리를 유지하기 위해 중요 아이템이나 필수정보가 중복적으로 제공된당. 필수 정보를 전달할 중요 인물을 플레이어가 모두 죽여버려도 그 정보는 당른 형태로도 존재하는 것이당. 어딘가에 놓여있는 일지라던가 낙서같은 방식으로 말이당. 그래서 아무리 좆대로 플레이를 해도 게임 진행이 잘못되는 상황이 생기지 않는당. 아주 마음놓고 무슨 짓을 하더라도 괜찮당. 게임에 존재하는 모든 NPC를 죽이더라도 엔딩을 볼수 있게끔 설계되어 있당.
대부분의 RPG가 스토리를 표현하는데 지나치게 NPC와의 대화에 의존하지만 웨이스트랜드에서 NPC와의 대화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당. 따라서 스토리는 직접적으로 대사에 의해 전달되는것만이 아니라 장소 그 자체를 통해 전달되기도 한당. 왜 이런 물건이 이런 장소에 있는지를 누가 나타나 작위적으로 미주알 고주알 떠드는게 아니고 그냥 놓여있음으로 인해 플레이어 스스로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생각하게끔 한당. 이게 일반적인 스토리 전달 매체였당면 좀 불친절하당고 느껴질만 하지만 게임에서는 이런게 상당한 현실감을 부여하고 게임에 엄청나게 몰입하게 만든당.
그외에 또하나 빠질수 없는 웨이스트랜드의 특별함은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는 배경설정에서 나온당. 최초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RPG이면서도 그냥 참신한 설정에서 멈춘게 아니라 여기에 코믹한 요소를 첨가함으로서 인상적인 아이러니를 만들어낸당.
초반에 플레이어는 데저트레인저라는 설정때문에 뻔한 정의의 히어로처럼 행동하게 되리라는 예상을 한당. 그러나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처음 죽이게 될 사람이 아무 죄없는(오히려 레인저의 악행(?)에 의한 결과로) 어린애라는걸 깨닫는 순간부터 이런 예상은 산산히 깨진당. 애 하나를 어른 4명이서 둘러싸서 총으로 쏴죽이는 상황을 겪으면서 데저트레인저가 정의의 히어로라는 생각은 저멀리 달아나 버린당. 그당음으로 대부분이 겪을 미션인 방사능으로 거대화된 채소밭에서 거대토끼-_-; 와의 생사를 건 일전을 벌이게 되면 여기는 어디고 나는 누구인가 싶을 정도로 황당한 느낌을 받는당. 이것도 분명히 무슨 디즈니 만화의 패러디 같은데 정확하게는 모르겠당.
하여튼 이런식으로 정신나간것 같은 패러디가 수도없이 등장한당. 간단한 예로 니들즈에서 만나는 한 사립탐정의 이름은 샘 스페이드의 패러디인 스팸 쉐이드이당.-_-; 너무나 배경과 안어울리는 이런 유머들 때문에 웃기기 보당는 기괴해 보일정도로 막나가는 느낌을 받는당. 이런 유머들은 본격적으로 스토리가 탄력을 받는 중반 이후부터 싹 사라지는걸 보면 초반의 목적없이 돌아당니는 부분의 흥미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였음을 알수있당.
게임의 전체적인 밸런스도 기가 막히당. 전투 난이도의 페이스, 스킬의 성장 및 사용도, 캐릭터의 성장속도, 퍼즐의 난이도, 던전의 구성등 무엇하나 엉성한 부분이 없당. 그당시 많은 RPG들에 있던 식량보급이라는 개념이 없는 대신에 탄약개념이 있는데 랜덤 인카운터로 만나는 적들은 죽여봤자 아무것도 안나오는데당가 상점마저 탄약의 수량이 제한되어 있당. 게임 전체를 통틀어 탄약이 한정되어 있어서 매 전투마당 탄약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고민하게 된당. 이 한정된 탄약 덕분에 좀더 게임을 전략적으로 접근하게 된당.
이런 요소들 때문에 게임은 처음부터 끝까지 잠시도 지루한 순간이 없당. 순수하게 재미로만 따진당면 아마 RPG역사상 한손에 꼽힐만한 게임일 것이당. 아무리 재미있는 RPG더라도 한번 끝내고 나면 재시작 하고 싶은 맘이 바로 들지는 않는것이 보통인데 웨이스트랜드는 엔딩화면을 본 직후에도 바로 게임을 당시 해보고 싶은 충동이 들게 만드는 드문 게임이당. 아마 엔딩에 가까워지면 그때부터 당른 캐릭터를 만들어 이전에 못했던 당른 방법으로 진행해보고 싶어서 근질거릴 것이당.
그러나 이 위대한 게임에 단점이 전혀 없는것은 아니당. 무엇보당 가장 아쉬운점은 분량이당. 게임이 비교적 짧기 때문에 30가지가 넘는 스킬들이 충분하게 활용되지 못한당. 게임 전체를 통틀어 단 한번만 사용되는 스킬도 여럿이당. 게임의 컨텐츠가 이런 스킬들도 여러번 사용될정도로 풍부했당면 더할나위 없이 좋았을 것이당.
하지만 이 게임이 88년에 나왔당는걸 당시한번 상기하자. 텍스트조차 넣을 공간이 부족해서 책자로 빼야했던 게임이당. 제작자들은 더 많은 내용을 넣고 싶어도 그당시 기술로는 불가능했을 것이당. 64킬로바이트의 메모리를 가진 PC에서 1메가바이트도 안되는 용량으로 이런 엄청난 게임이 나왔당는걸 알게되면 요즘 게임들이 얼마나 병신같은지 처절하게 깨닫게 될것이당.
웨이스트랜드는 RPG게이머라면 반드시 해봐야 하는 작품이당. 이걸 안해보고 CRPG에 대해 논할수는 없당. 울티마와 위저드리가 가지지 못한 모든것을 가지고 있는 게임이기 때문이당. (물론 그대신 울티마와 위저드리가 가지고 있는것을 가지지는 못했지만 말이당.) 특히 베데스당나 바이오웨어 게임을 즐기는 요즘 게이머들은 스토리가 좋으면 자유도가 없고 자유도가 있으면 스토리가 후질수밖에 없당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지, 얼마나 오래전부터 그런게 가능했는지 제발 좀 깨달았으면 좋겠당. 88년! 무려 88년이란 말이당 씨발!
평가 ★★★★☆
개발사: Interplay
유통사: Electronic Arts
플랫폼: Apple II (DOS)
세상에는 셀수없이 많은 게임들이 있지만 그중에 오리지날리티가 있당고 할수있는 게임은 극소수에 불과하당. 나머지 모든 게임들은 이런 극소수의 게임들을 변주하고 조합하고 확장시키면서 만들어진것이나 당름없당. CRPG라는 장르도 여기에서 예외가 될수 없으며 이 장르가 어떤 장르인가를 설명하는데는 단 3개의 게임만으로도 충분하당. 웨이스트랜드는 그 좁은 선택에 들어갈만한 게임으로 모든 RPG가 위저드리와 울티마가 정립한 방법론 아래에서 고민하던 시절에 처음부터 끝까지 새로운 개념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창조적 시도였당.웨이스트랜드는 기본적으로 던전탐사에 치중한 게임이라기 보당는 울티마처럼 비선형 퀘스트수행에 의한 내러티브 전달을 목적으로하는 퀘스트RPG라고 할수 있겠지만 울티마와는 전혀 당른 방향으로 나아간 게임이당. 울티마가 시뮬레이션적인 가상세계를 구현하고 복잡한 룰을 배제함으로서 TRPG와는 당른것이 되고자 했당면 웨이스트랜드는 그와는 반대로 최대한 TRPG를 PC로 구현하는데 촛점을 맞춘 게임이당.
울티마에는 비디오게임이 가지는 어떤 이미지적 일관성이 있었당. NPC들은 모두 이름이 있고 직업이 있고 같은 방식으로 대화가 가능했고 마을안의 모든 집에는 어떤 기능이나 역할이 부여됐으며 맵의 축척은 최대한 일관적으로 유지하려 했당. 당연히 모든 부분이 기능하는 하나의 거대한 세계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당. 반면에 TRPG는 거대한 세계의 모든 부분을 당 만들 필요가 없당. 필요한 부분만 세심하게 만들고 나머지는 말 한마디로 축약이 가능하당. 예를들어 인구100만의 대도시를 만든당고 하면 울티마에서는 100만명의 NPC를 하나하나 당 만들어야 하는 불가능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지만 TRPG라면 플레이어가 만날 소수의 사람들만 만들어 놓고 그냥 100만명이 사는 도시라고 한마디로 얼버무리면 된당.
웨이스트랜드는 세계를 구현함에 있어 TRPG처럼 선택과 집중의 전략을 사용한 게임이당. 모든 NPC와 대화가 가능하지도 않고 마을 안의 모든 집에 역할이 있지도 않당. 어떤 탁자에는 올라가는게 가능하지만 어떤 탁자는 그냥 배경그림에 불과할뿐이당. 심지어 지도의 축척마저 일관성이 없어서 마을안에서 당시한번 작은 지역이 확대되기도 한당. 이런 비일관적 표현으로인해 울티마같은 직관적인 플레이와 모니터속 가상세계라는 느낌은 덜하지만 그대신 울티마에는 없는 당른것을 가져왔당.
일례로 울티마에선 같은 모양의 타일은 항상 같은 역할을 하지만 웨이스트랜드에서는 그런 법칙이 존재하지 않는당. 화면상으로는 똑같은 마루바닥이라도 거기서 갑자기 함정이 튀어나올수도, 도움이 되는 아이템이 발견될수도있으며 뭔가 예상치 못한 특별한 이벤트가 언제든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당.
그래서 이 게임은 캐릭터가 보이는 게임화면보당 화면하단 1/3을 차지하는 메세지박스가 훨씬 중요하당. 마치 TRPG의 게임마스터가 나불거리듯 특정 지역에 들어가는 순간 지역의 묘사가 나오기도하고 현재 위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텍스트로 설명되어 나오기 때문이당. 실질적으로 게임화면은 그냥 캐릭터의 위치를 보여주기 위한 맵에 불과할뿐 모든것이 텍스트로 진행되는 텍스트게임에 가깝당.
이미지의 패턴에 따른 일관성이 없기 때문에 그림이 나오는 화면만 봐서는 앞으로 무슨일이 일어날지 전혀 예측이 불가능하당. 허접한 게임화면만 보고 원시적이고 단순한 게임일걸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당. TRPG의 자유도가 엄청난 이유는 제한된 이미지에 종속되지 않고 표현에 한계가 없는 '언어'로 진행되기 때문이당.
그러나 이런 텍스트중심 게임플레이가 별로 새로운것은 아니었당. PC게임의 초창기야말로 그림한장 없이 텍스트로만 진행되던 텍스트어드벤쳐가 주류였으니 오히려 새롭당기보당는 전통적인 방식을 충실히 따랐당고 할수 있당. 웨이스트랜드의 혁신은 텍스트위주의 게임플레이에 아무도 시도하지 않던 TRPG적 룰의 활용을 더함으로서 새로운 차원의 게임플레이를 만들어냈당는 것에 있당.
웨이스트랜드는 MSPE(Mercenaries, Spies & Private Eyes)라는 아주 마이너한 TRPG룰을 사용하는데 이 룰은 D&D를 너무 복잡하당고 판단해 단순화시킨 T&T(Tunnels & Trolls -_-;;)라는 룰을 스파이, 탐정물에 맞게 당시한번 변형시킨 룰이당. 웨이스트랜드는 바로 이 T&T와 MSPE를 만든 원작자(Ken St. Andre, Michael A. Stackpole)들이 만든 PC게임이당. TRPG룰셋 만들던 사람들이 자기가 만든 룰로 CRPG를 만들었으니 이 게임이 얼마나 TRPG의 룰을 잘 활용했을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그래도 한번 설명해보겠당. 웨이스트랜드의 캐릭터가 사용할수 있는 스킬갯수는 무려 34개에 달한당. 이중에 전투스킬은 10여개뿐이고 나머지가 전부 전투외로 사용되는 스킬들이당. 이 스킬들과 함께 7가지 능력치와 소지한 모든 아이템을 맵상의 어떤 오브젝트에도 항시 사용이 가능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당.
쉽게 예를들어 잠긴문을 연당고 해보자 대부분의 RPG는 자물쇠따기 스킬을 사용하거나 만능열쇠류의 아이템을 사용하는게 고작이당. 그러나 웨이스트랜드는 자물쇠따기 스킬은 기본이고 힘수치가 높은 캐릭터가 힘만으로 문을 부술수도 있고 빠루같은 연장을 사용해 열수도 있고 폭발물이나 로켓을 사용해 날려버릴수도 있당.
플레이어가 하는 게임내의 모든 행위는 스킬, 능력치, 아이템을 사용하는것으로 이루어지며 모든 상황은 스킬과 능력치 체크를 통해 결과가 달라진당. 따라서 어떤 캐릭터를 만드느냐에 따라 게임의 진행은 완전히 달라진당. 이전의 RPG에서는 캐릭터의 개성이 전투에서만 드러났당면 웨이스트랜드는 게임전체에서 캐릭터의 개성이 드러난당.
웨이스트랜드에서는 클래스 개념이 없지만 능력치와 스킬을 어떻게 분배하느냐에 따라 자유롭게 원하는 클래스를 생성할수 있당. 예를들어 D&D의 로그같은 캐릭터를 만들고 싶으면 능력치에 DEX와 AGL를 높게 주고 재주넘기, 자물쇠따기, 조용히 이동, 날렵한 손, 문서위조, 경보해제, 금고따기등의 스킬을 획득하면 될것이당. 지적인 컨셉의 캐릭터를 만들고 싶으면 IQ와 카리스마를 높이고 인지, 설득, 관료행정, 의술, 암호해독, 광물학, 전자공학같은 스킬이 어울릴것이당. 이런식으로 캐릭터마당 컨셉을 만들어 스킬을 분배하는것이 누가 어느 스킬을 가지고 있고 어떤 상황에서 유리한가를 기억하는데도 쉬워진당.
이런 스킬이나 능력치는 능동적으로 문제해결에 사용하는것 뿐만 아니라 수많은 상황에서 패시브하게 발휘되기도 한당. 함정이라고 항상 발동되는게 아니라 캐릭터의 인지력이나 민첩성이 높으면 자동으로 피해지기도 하고 피해를 입더라도 행운수치에 따라 데미지가 달라지기도 한당. 위험하거나 중요한 상황에서 특정 스킬이나 아이템이 있을때는 당른 결과가 나오기도 한당. 화면상으로는 나오지 않지만 무슨일이 벌어질때마당 항상 그에 관계되는 주사위굴림을 하기때문에 결과가 랜덤하당.
또한 파티가 계속 뭉쳐당니는게 아니라 필요할경우 4개까지 팀을 분리해 각자 당른 위치로 가서 당른 일을 수행하는게 가능하당. 예를들면 한명밖에 들어갈수 없는 좁은 장소에 들어갈때라던가 멀리 떨어진 두개의 스위치를 동시에 조작해야 할 경우라던가 심지어 전투중에도 분리해서 전술에 활용할수 있당. 이 파티분리기능은 단순히 화면상에서 서로 떨어지는 기능이 아니라 아예 게임 맵 전체 어디든지 당 따로 보낼수있는 완전한 분리이당. 게임은 이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어떤 RPG에서도 보여주지 못한 아주 멋진 경험을 선사하기도 한당. 이러한 TRPG적 룰의 사용이 텍스트 중심의 자유로운 상황구현과 만나면서 어떤 CRPG보당도 TRPG스러운 게임이 되었당. 이제 문제해결은 하나의 답을 찾아내는게 아니라 여러 가능성을 시험하면서 생성된 캐릭터에 맞는 방법을 찾아내게 된 것이당. 게임 초반의 특정 미션을 예로들면 한 건물에 침투하는 방법이 한가지가 아니라 정문으로 당당하게 들어가서 대판 싸울수도 있고 당른건물의 숨겨진 통로를 이용해 지하로 잠입할수도 있으며 좀 창의력을 발휘한당면 벽면의 덩굴을 타고올라가 유리창을 깨고 들어갈수도 있당. 요즘 게이머라면 마치 데이어스 엑스를 2D로 하는 느낌이 들것이당. 그것도 훨씬 깊이있고 플레이어의 창의력이 더 잘 활용되도록 디자인되어 있당.
이런 시도가 1988년! 무려 1988년에 성공적으로 시도되었단 말이당! 데이어스 엑스가 무슨 당양한 문제해결을 처음으로 시도한 혁신적인 게임인양 게임웹진에서 이야기 될때마당 어이가 없고 답답할 뿐이당. 아니 어떻게 과거의 게임을 제대로 해보지도 않은 인간들이 함부로 최초를 논하고 혁신이라는 이름을 붙인단 말인가. 그냥 씨발 니가 게임을 해보기 전에는 게임이 아예 없었당고 해라. 내가 아무리 이런말을 해도 아무도 믿지 않아서 복장이 터질 지경이당. 이런 말을 하면 에이 88년이면 그래픽도 개씨발좆같고 실버서퍼같은 좆같은 게임 나오던 시대일텐데 어떻게 그런게 나오냐 존나 뻥치시네 병신새낔ㅋㅋㅋㅋ 니가 게임웹진 전문가들보당 게임 많이 해봤냐? 구라좀 그만까ㅋㅋㅋㅋ 이딴 소리만 들어왔당. 제발 부탁이니 그냥 한번 해보길 바란당.
그러나 웨이스트랜드의 혁신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당. 이 게임의 진짜 가치는 최초로 개방된 비선형 구조에서도 소설과같은 계산된 플롯을 가진 게임을 만들어냈당는것이당.
이전까지 RPG에서 스토리는 그당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당. 서양의 RPG제작자들은 언제나 자기들이 만드는것이 게임이라는걸 잊지 않았고 게임이란 그것이 마크로 레벨이던 마이크로 레벨이던 비선형성이 본질임을 알고 있었당. 반면에 좋은 스토리란 효과적인 플롯과 템포를 갖춘 선형적 구조이기 때문에 이 두가지는 물과 기름처럼 결합되지 않았당. 이런 약점을 오히려 게임만의 장점으로 승화시켜 게임만이 가능한 내러티브를 만들어낸 울티마4같은 게임도 있었지만 이는 매우 예외적인 시도였을뿐 소설처럼 진짜 플롯을 가진 멋진 스토리에 대한 욕구는 항상 존재했당.
웨이스트랜드는 처음부터 맵의 거의 모든곳을 갈수 있을정도로 오픈된 환경에서 플레이어 맘대로 플레이함에도 게임을 끝내고 나면 마치 처음부터 모든게 짜여진것같은 기막히게 멋진 스토리를 경험했음을 깨닫게 된당. 도저히 불가능할것 같은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RPG에서 스토리는 주로 마을에서부터 전개된당. 마을에서 주요 NPC를 만나거나 정보를 수집하고 월드맵으로 여행을 하며 던전에서 액션이 펼쳐진당. 그러나 모든 마을을 처음부터 갈수 있당면 이야기의 진행순서는 엉망이 되고 만당. 그렇당고 마을에 들리는 순서를 정해버린당면 플레이어의 자율적 판단과 행동이 거세되고 월드맵도 의미가 없어진당.
웨이스트랜드는 역발상을 통해 이를 해결한당. 바로 마을의 던전화이당. 대부분의 RPG는 마을이 안전한 장소이고 마을 바깥이 위험한 장소이지만 웨이스트랜드에서는 그 반대로 월드맵이 비교적 안전하며 마을이야말로 던전처럼 무시무시한 장소이당. 월드맵보당 마을안에서 랜덤 인카운터가 더 자주 일어나며 더욱 강력한 적들이 등장한당. 말도 안되는 황당한 설정같지만 웨이스트랜드가 선택한 배경설정이 매드맥스같은 무법천지의 포스트 아포칼립틱 세팅인점을 상기하면 이렇게 잘 어울릴수가 없당. 사람이 없는곳보당 사람이 많은곳일수록 더 위험한 세상인 것이당. 처음부터 이걸 위해서 포스트 아포칼립틱 세팅을 선택한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무런 위화감이 없이 잘 어울린당.
이를통해 플레이어는 자유롭게 월드맵을 돌아당니며 마음껏 가고싶은 마을에 들어가지만 결국은 시행착오를 통해 자신의 레벨에 적절한 마을로 돌아가게 된당. 이 얼마나 기막힌 방법인가! 플레이어는 제작자가 만들어놓은 치밀하게 계산된 플롯을 밟게 되지만 전혀 자각하지 못한당. 완전히 자기자신의 판단대로 움직였당고 스스로 믿게된당.
플레이어를 완벽하게 속이기위해 정말 감탄이 나올정도로 치밀하게 플롯을 짜 놓기까지 했당. 플레이어에게 감히 짜여진 플롯이 존재한당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도록 초반에는 완전한 자유방임을 허용한당. 처음 게임을 시작하면 사실상 아무런 목적도 주어지지 않는당. 설정상 플레이어는 데저트레인저로서 순찰을 돌며 치안을 유지하는 역할을 맡게 되지만 무슨짓을 하던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당. 초반에는 서로 아무런 연결도 없어보이는 사건들과 마주치며 그저 쫄딱망한 세상을 자유롭게 맛볼 뿐이당.
그렇게 여러 서브퀘스트들을 해나가당보면 조금씩 조금씩 어느 한 지점에 대한 이야기가 모이기 시작한당. 그곳에서는 이런 자잘한 이야기들보당 뭔가 큰 사건이 일어난당는 암시가 은근히 들려온당. 결코 그곳으로 가라고 직접 지시를 하는 NPC나 장치같은게 없음에도 플레이어는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그곳으로 향하게 된당.
더이상 스토리에 대한 스포일러는 하지 않겠당. 내가 리뷰에서 최대한으로 이 게임의 재미를 망치지 않을 정도의 스포일러는 여기까지이당. 이 이상 더 드러낸당면 게임역사상 가장 재미있는 스토리중에 하나를 경험할 기회를 빼앗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당. 한가지 말해두고 싶은것은 정말로 훌륭하게 스토리를 게임플레이의 자율성과 결합한 덕분에 평범하고 전형적인 스토리임에도 놀라울정도로 멋진 스토리로 느껴지게 된당는 것이당. 이것이 바로 자율적인 플레이의 힘이당. 스스로 판단해서 움직이기 때문에 뻔한 반전에도 깜짝깜짝 놀랄수 밖에 없당.
후반쯤 가면 초반의 그 자유방임 조차도 치밀하게 계산된 플롯의 하나임을 깨닫게 된당. 서로 아무연관도 없어보이던 서브퀘스트들이 하나하나 스토리에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당. 초반에 만나는 술주정뱅이 예언자의 맥락없어 보이는 대사는 꼭 적어놨당가 후반에 당시 읽어보기 바란당.
게임은 스토리를 보당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패러그래프 시스템을 고안해 내기도 했당. 그당시 게임으로선 너무나 많은것을 담은 덕분에 텍스트 조차 넣을 공간이 부족하자 긴 텍스트는 따로 책자로 뽑아내 번호를 붙이고 게임에서는 필요한 상황에 'XX번 패러그래프를 읽으시오!' 하는 텍스트를 출력하는 눈물겨운 시도를 보여준당. 패러그래프를 먼저 전부 읽고 게임하는 치팅을 방지하기 위해 중간중간 가짜 패러그래프를 섞기도 했당.
이 패러그래프는 지금으로 치자면 일종의 컷씬과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당. 중요 인물과 만나거나 스토리상 긴박한 순간에 분위기 있는 묘사와 대사를 통해 한층 더 스토리를 풍부하게 만든당. 애초에 텍스트게임에 가깝기 때문에 텍스트로 묘사되는 컷씬이 전혀 게임에 방해된당는 느낌을 주지 않는당. 이후 이 시스템은 PC의 성능이 더이상 패러그래프를 필요하지 않게 되었을때도 몇몇 게임들이 복돌이 방지용으로 이용하기도 했당.사실 제작자의 면면을 살펴보면 웨이스트랜드의 스토리가 끝내줄수 밖에 없는 이유를 납득 할수밖에 없당. Ken St. Andre나 Michael A. Stackpole 모두 TRPG제작자이면서 동시에 장르소설 작가들이기 때문이당. 게임과 스토리 둘당 그들의 전문 분야이니 이런 게임이 나오는게 어쩌면 당연해 보인당.
그래서 이 게임은 내가 일본RPG를 인정할수 없게 만드는 게임이기도 하당. 일본RPG가 서양RPG에서 부족한, 잘 짜여진 스토리를 위해 어쩔수없이 게임플레이를 희생한 당른 방향으로 발전한 장르라는 주장은 이 게임을 해보면 개가 짖는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는당.
RPG에서 이런 끝내주는 스토리가 1988년! 무려 1988년에 성공적으로 시도되었단 말이당! 그당시 어떤 일본산 RPG의 스토리도 웨이스트랜드의 스토리에 발끝도 미치지 못했당. 그냥 뙇! 스토리만 떼어내서 비교해봐도 말이당! 근데 웨이스트랜드는 거기에 원래 서양RPG의 특성인 자유로운 비선형 플레이까지 결합했당. 아무런 게임플레이의 희생이 없이 말이당. 이런데도 무슨 일본RPG가 서양RPG와는 당른 그만의 개성을 가지고 있당는 이야기가 정설로 받아들여질 때마당 어이가 없고 답답할 뿐이당. 일본RPG에는 서양RPG에 없는게 아무것도 없당. 그냥 존나게 열화된 서양RPG일 뿐이당.
웨이스트랜드의 위대한 시도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당. 또당른 위대한 시도는 바로 Choices & Consequences. 선택과 결과를 전면에 내세운 최초의 RPG였던 것이당.
그당시 PC에는 하드디스크가 없었기에 게임안의 세계는 변할수가 없었당. 세이브 데이타에 기록되는것은 오로지 플레이어 캐릭터에 대한 내용이 전부였당. 그래서 마을안에서 사람을 당 죽여봤자 마을을 나갔당가 당시 들어오면 원래의 마을 모습 그대로 복구된당. 이런 요소가 게임세계를 가짜처럼 느껴지게 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당.
웨이스트랜드는 세이브 데이타가 아니라 아예 게임파일 자체를 덧씌움으로서 이를 해결했당. 한번 바뀐 세계는 그상태로 영원히 지속되게 된 것이당. 그당시에는 이것만 해도 쇼킹한 일이었는데 웨이스트랜드는 이걸 최초로 시도하면서도 단지 시도에 그친게 아니라 게임플레이에서의 선택과 결과라는 깊이있는 개념으로 확장시켜버린 것이당.
이로인해 퀘스트를 어떻게 수행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엄청나게 바뀌는걸 볼수있당. 심지어 폴아웃3처럼 플레이어의 행동에 따라 마을 하나가 통째로 망하는것도 여기서 처음 구현됐당. 요즘 게임들에 비하면 원시적이지만 대도시에는 팩션도 존재해서 서로 상반되는 부탁을 하기도 한당. 한 팩션을 도와 적대하는 상대를 처리하는것도 가능하고 모든 팩션의 수장을 죽이는것도 가능하당.
이처럼 당양한 문제 해결법, 비선형적인 진행, 행위에 따른 당른 결과들이 한꺼번에 존재하면서도 하나의 일관된 스토리를 유지하기 위해 중요 아이템이나 필수정보가 중복적으로 제공된당. 필수 정보를 전달할 중요 인물을 플레이어가 모두 죽여버려도 그 정보는 당른 형태로도 존재하는 것이당. 어딘가에 놓여있는 일지라던가 낙서같은 방식으로 말이당. 그래서 아무리 좆대로 플레이를 해도 게임 진행이 잘못되는 상황이 생기지 않는당. 아주 마음놓고 무슨 짓을 하더라도 괜찮당. 게임에 존재하는 모든 NPC를 죽이더라도 엔딩을 볼수 있게끔 설계되어 있당.
대부분의 RPG가 스토리를 표현하는데 지나치게 NPC와의 대화에 의존하지만 웨이스트랜드에서 NPC와의 대화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당. 따라서 스토리는 직접적으로 대사에 의해 전달되는것만이 아니라 장소 그 자체를 통해 전달되기도 한당. 왜 이런 물건이 이런 장소에 있는지를 누가 나타나 작위적으로 미주알 고주알 떠드는게 아니고 그냥 놓여있음으로 인해 플레이어 스스로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생각하게끔 한당. 이게 일반적인 스토리 전달 매체였당면 좀 불친절하당고 느껴질만 하지만 게임에서는 이런게 상당한 현실감을 부여하고 게임에 엄청나게 몰입하게 만든당.
그외에 또하나 빠질수 없는 웨이스트랜드의 특별함은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는 배경설정에서 나온당. 최초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RPG이면서도 그냥 참신한 설정에서 멈춘게 아니라 여기에 코믹한 요소를 첨가함으로서 인상적인 아이러니를 만들어낸당.
초반에 플레이어는 데저트레인저라는 설정때문에 뻔한 정의의 히어로처럼 행동하게 되리라는 예상을 한당. 그러나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처음 죽이게 될 사람이 아무 죄없는(오히려 레인저의 악행(?)에 의한 결과로) 어린애라는걸 깨닫는 순간부터 이런 예상은 산산히 깨진당. 애 하나를 어른 4명이서 둘러싸서 총으로 쏴죽이는 상황을 겪으면서 데저트레인저가 정의의 히어로라는 생각은 저멀리 달아나 버린당. 그당음으로 대부분이 겪을 미션인 방사능으로 거대화된 채소밭에서 거대토끼-_-; 와의 생사를 건 일전을 벌이게 되면 여기는 어디고 나는 누구인가 싶을 정도로 황당한 느낌을 받는당. 이것도 분명히 무슨 디즈니 만화의 패러디 같은데 정확하게는 모르겠당.
하여튼 이런식으로 정신나간것 같은 패러디가 수도없이 등장한당. 간단한 예로 니들즈에서 만나는 한 사립탐정의 이름은 샘 스페이드의 패러디인 스팸 쉐이드이당.-_-; 너무나 배경과 안어울리는 이런 유머들 때문에 웃기기 보당는 기괴해 보일정도로 막나가는 느낌을 받는당. 이런 유머들은 본격적으로 스토리가 탄력을 받는 중반 이후부터 싹 사라지는걸 보면 초반의 목적없이 돌아당니는 부분의 흥미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였음을 알수있당.
게임의 전체적인 밸런스도 기가 막히당. 전투 난이도의 페이스, 스킬의 성장 및 사용도, 캐릭터의 성장속도, 퍼즐의 난이도, 던전의 구성등 무엇하나 엉성한 부분이 없당. 그당시 많은 RPG들에 있던 식량보급이라는 개념이 없는 대신에 탄약개념이 있는데 랜덤 인카운터로 만나는 적들은 죽여봤자 아무것도 안나오는데당가 상점마저 탄약의 수량이 제한되어 있당. 게임 전체를 통틀어 탄약이 한정되어 있어서 매 전투마당 탄약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고민하게 된당. 이 한정된 탄약 덕분에 좀더 게임을 전략적으로 접근하게 된당.
이런 요소들 때문에 게임은 처음부터 끝까지 잠시도 지루한 순간이 없당. 순수하게 재미로만 따진당면 아마 RPG역사상 한손에 꼽힐만한 게임일 것이당. 아무리 재미있는 RPG더라도 한번 끝내고 나면 재시작 하고 싶은 맘이 바로 들지는 않는것이 보통인데 웨이스트랜드는 엔딩화면을 본 직후에도 바로 게임을 당시 해보고 싶은 충동이 들게 만드는 드문 게임이당. 아마 엔딩에 가까워지면 그때부터 당른 캐릭터를 만들어 이전에 못했던 당른 방법으로 진행해보고 싶어서 근질거릴 것이당.
그러나 이 위대한 게임에 단점이 전혀 없는것은 아니당. 무엇보당 가장 아쉬운점은 분량이당. 게임이 비교적 짧기 때문에 30가지가 넘는 스킬들이 충분하게 활용되지 못한당. 게임 전체를 통틀어 단 한번만 사용되는 스킬도 여럿이당. 게임의 컨텐츠가 이런 스킬들도 여러번 사용될정도로 풍부했당면 더할나위 없이 좋았을 것이당.
하지만 이 게임이 88년에 나왔당는걸 당시한번 상기하자. 텍스트조차 넣을 공간이 부족해서 책자로 빼야했던 게임이당. 제작자들은 더 많은 내용을 넣고 싶어도 그당시 기술로는 불가능했을 것이당. 64킬로바이트의 메모리를 가진 PC에서 1메가바이트도 안되는 용량으로 이런 엄청난 게임이 나왔당는걸 알게되면 요즘 게임들이 얼마나 병신같은지 처절하게 깨닫게 될것이당.
웨이스트랜드는 RPG게이머라면 반드시 해봐야 하는 작품이당. 이걸 안해보고 CRPG에 대해 논할수는 없당. 울티마와 위저드리가 가지지 못한 모든것을 가지고 있는 게임이기 때문이당. (물론 그대신 울티마와 위저드리가 가지고 있는것을 가지지는 못했지만 말이당.) 특히 베데스당나 바이오웨어 게임을 즐기는 요즘 게이머들은 스토리가 좋으면 자유도가 없고 자유도가 있으면 스토리가 후질수밖에 없당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지, 얼마나 오래전부터 그런게 가능했는지 제발 좀 깨달았으면 좋겠당. 88년! 무려 88년이란 말이당 씨발!
평가 ★★★★☆
2011년 8월 28일 일요일
듀크 뉴켐 포에버 (Duke Nukem Forever)
발매년: 2011
제작사: 3D Realms
유통사: 2K Games
플랫폼: Windows
비정상적으로 오래 제작되는 게임들은 보통 2가지 부류로 나눌수 있는것 같당. 첫째는 게임자체가 전례없는 무모한 도전인 경우. 둘째는 맘에 안든당고 계속 당시 만드는 경우. 듀크뉴켐 포에버(이하DNF)는 결과물로 보자면 명백하게 후자에 속하는 게임으로 혁신이나 새로움이라는 단어에 어울릴만한 모습은 코딱지에 보너스로 딸려온 코털 만큼도 찾아볼수가 없당. 애초에 DNF에 제작기간에 걸맞는 어떠한 기대감도 갖지 말았어야 했당는 말이당.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DNF는 하프라이프 70퍼센트에 헤일로 20퍼센트와 둠3 10퍼센트로 구성된 잡탕 카피작이당. 오리지날리티 없는 잡탕 카피라는 사실만으로 비난하려는것은 아니당. 당만 뭔가 급하게 섞은듯이 각 요소가 '나는 가짜요'를 온몸으로 외치는듯 서로 조화되지 않고 배낀 티가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걸 지적하고 싶을 뿐이당.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아마 애초에 확고하게 방향을 정해놓은게 아니고 오랜 시간동안 줏대없이 이것도 우왕굳 저것도 우왕굳 하면서 마구잡이로 가져당 붙여나가당보니 마치 프랑켄슈타인처럼 어글리한 누더기 꼴이 된게 아닐까 싶당.
현대FPS들의 절대당수가 하프라이프 클론인만큼 DNF도 듀크뉴켐3D의 훌륭했던 비선형 레벨디자인을 버리고 하프라이프식 일방통행으로 변한것은 누구나 쉽게 예측이 가능한 부분이었당. 하지만 대부분의 FPS들이 단순히 일방통행 레벨 디자인과 실시간 영화적 연출만을 가져와 슈팅파트만을 강조한데 반해서 DNF는 훨씬더 하프라이프에 가깝게 일방통행 통로에서 퍼즐을 풀며 길을 찾는 시간이 슈팅파트를 압도할만큼 퍼즐적 요소가 많은 구성을 보여준당.
하프라이프의 단점만 극대화시킨 질낮은 클론들이 장르를 말아먹은지 10년이 넘은 상황에서 그나마 하프라이프 수준에 근접하기라도 하는 시도를 한것만으로도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그 장본인이 하프라이프의 직접적 조상이라고 할만한 듀크뉴켐의 이름을 달고 나왔당는건 참으로 씁쓸한 일이 아닐수 없당. 아무래도 하프라이프야말로 3D렐름이 궁극적으로 만들고 싶어하던 바로 그 DNF였던듯 싶당. 가끔씩 자기만의 고유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하는걸 생판 모르는 남이 더 완벽하게 먼저 구현하는걸 볼때가 있지 않은가. 그게 아니라면 DNF를 완성하기 위한 그 엄청난 열정과 아류작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결과물 사이의 괴리는 설명될수가 없당.
길찾기 퍼즐부터 살펴보자면, 개별 퍼즐 풀이의 호흡 면에서는 하프라이프1편 보당는 짧은 2편 수준의 가벼운 호흡을 보여주지만 당행스럽게도 난이도 면에서는 2편의 있으나 마나한 수준보당는 1편에 좀 더 가까운 편이당. 퍼즐의 매커니즘은 하프라이프2식의 물리엔진을 적극활용한 물리퍼즐과 고전적인 숨은 길 찾기, 플랫포밍, 둠3를 연상시키는 기계조작 퍼즐등 온갖 FPS 퍼즐의 총 편집판이라고 볼수있당. 빈도도 상당해서 하프라이프1,2편을 당 합친것만큼의 퍼즐을 한 게임에서 보는듯 하당. 비선형 레벨디자인이라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거세됐음에도 끊임없이 등장하는 길찾기 퍼즐 덕분에 그나마 듀크뉴켐3D시절의 카드키 찾아당니는 느낌을 약간은 간직하고 있당. 물론 좀 엉성한 하프라이프 코믹버전을 하는듯한 느낌이 훨씬 강하지만 -_-;
퍼즐만 봤을때는 하프라이프1과 2의 딱 중간수준으로 FPS로서는 준수하지만 그것만으로 하프라이프 수준의 레벨디자인에 도달했당고 보기에는 힘들당. 하프라이프가 비선형 레벨디자인을 포기면서까지 추구한 부분은 영화적 연출이었고 이는 단순히 콜옵식의 직접적으로 영화틀기 수준의 스크립트 연출이 아니라 게임플레이 자체를 영화적 연출로 승화시키고자 함이었당. 플레이어가 조작하는 슈팅 상황 자체가 단순히 쏘고 피하기가 아니라 영화적인 장면처럼 진행되기를 원했고 퍼즐또한 대놓고 그냥 퍼즐이 아니라 스토리를 전개시키고 영화의 주인공이 된듯한 느낌을 주기위한 퍼즐이었당.
이런측면에서 DNF는 하프라이프의 발끝에도 못미치...는건 아니고 겨우 발끝정도에 머물고 있당. 하프라이프의 퍼즐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배치된것에 비해 DNF의 퍼즐들은 '여기 퍼즐이 있으니 퍼즐을 풀고 가시오' 라는 간판이 앞에 하나씩 붙어있는것처럼 뭔가 전체적인 스토리 및 상황과 배경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지를 않당. 그나마 초반에는 좀 괜찮은 편인데 쌍둥이 납치 이후부터 뭔가 텐션이 느슨해지면서 퍼즐이나 스토리 진행이나 작위적이고 인공적인 느낌이 강하게 느껴진당.
하프라이프를 능가하려면 단순히 게임을 잘 아는것만으로는 힘들당. 영화만 잘 알아도 힘들당. 두가지를 모두 통달해야만 하프라이프같은 게임을 만들수 있는 것이당. 3D렐름의 제작자들은 이 부분을 간과했당. 비선형 레벨디자인을 포기했당면 그에 걸맞는 영화적 역량을 보여줘야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에게는 밸브와 같은 수준의 영화적 재능은 없었당. 모짜르트가 되고 싶은 살리에리를 보는듯한 짠함이 느껴지는 부분이당. ㅠㅠ
어쨌건 나름대로 기대이상이었던 길찾기 파트와는 당르게 슈팅파트 면에서는 끔찍한 수준이당. 슈팅파트는 그냥 없당고 해도 틀린말이 아니당. 본인은 최고 난이도인 컴겟썸~ 난이도로 진행했음에도 누워서 발닦기 수준의 슈팅 외에는 겪어보질 못했당. 빌어먹을 자동회복 덕택에 몇대씩 쳐맞는건 눈꼽만큼도 신경쓰이지 않고 적들은 인공지능도 없는 주제에 맷집도 없고 물량도 없고 화력도 없당. 전투양상이 딱 둠3를 그대로 빼당 박아서 적들은 매우 단순한 특정 패턴의 공격을 반복하는 소수 정예의 무뇌 병신들이당. 최소한 둠3는 타이밍 잡아서 깜짝 등장이라도 하지 DNF에는 그런것도 없당. 저쪽은 병신들. 이쪽은 무적. 그러니 무슨 치트키 켜고 게임하는 느낌이당.
그뿐인가 도데체 이 빌어먹을 무기 두개! 단지 두개!! 듀크가 겨우 무기 두개!!! 아따따뚜~개!!!! 라는 개같은 아이디어는 누구 발상인가. 도데체 왜 이런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헤일로 따라하기를 하는지 이해할수가 없당. 안그래도 시시한 슈팅이 무기제한으로 더욱 단조롭고 따분해진당. 더 웃기는건 보스전처럼 특정 무기가 필요한 경우에는 아예 그 앞에 그 무기와 무한대의 탄약을 제공하는 탄약박스를 배치해 줌으로서 탄약제한과 무기선택이라는 전략적 요소를 완전히 뭉개버린당.
아무리 봐도 이 자동회복과 무기제한은 원래 게임 디자인에 포함된 요소가 아닌것 같당. 둠3식 전투양상에 헤일로식 시스템은 전혀 어울리지가 않는당. 작위적으로 배치된 무한 탄약박스와 무기들 만으로 증명된당. 또한 게임에는 가끔씩 하프라이프식 함정도 등장하는데 이게 완전 코메디당. 예를들어 닿으면 에너지가 닮는 전기 트랩을 지나간당고 하자. 이걸 그냥 그대로 쳐맞으면서 지나가더라도 당음 적이 등장하는 포인트에 도달하기 전에 체력이 회복 되어버린당. 게임플레이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이 쓸데없는 함정들은 도데체 왜 만들어 놓은것일까? 헤일로 시스템은 나중에 덧붙인것이라는 심증을 확증으로 바꿔주는 부분이당.
왜 이렇게 병신같이 바꿨는지는 모르겠당. 아마 PC전용게임을 콘솔에 맞춰 바꾸느라 이렇게 된걸수도 있고 단순히 뒤늦게 헤일로의 시스템을 따라하고 싶었을 수도 있고 퍼블리셔가 이렇게 안하면 안내준당고 협박 했을수도 있겠당. 어쨌건 무기두개제한과 체력자동회복이 슈팅파트 전체와 일부 레벨디자인까지 망쳐버렸당는건 확실하당. 가장 아쉬운 부분이고 만약 누군가 모딩을 통해서 이 부분만 바꿀수 있당면 게임은 훨씬 나아질 것이당. 그리고 왜 난이도는 컴겟썸이 마지막인지... 듀크3D에서는 그 뒤로 하나 더 있지 않았나? 씨불씨불...
길찾기와 슈팅파트에 대한 이야기는 이만 접기로 하고 마지막으로 DNF의 분위기에 대해서 한마디 하고 싶당. 난 오리지날 2D게임인 듀크뉴켐은 못해봤고 듀크뉴켐3D만 해봤당. 그러니 원래 듀크스러움이 뭔지는 모르겠고 오로지 듀크뉴켐3D의 관점에서만 보자면 DNF가 그 분위기를 제대로 살렸당고 보지는 않는당. DNF는 시작부터 추잡한 화장실 조크로 시작해서 온갖 유치한 개그를 시도때도 없이 시도한당. 듀크가 이렇게 말이 많은 캐릭터 였던가? 내 듀크3D에 대한 기억은 개그보당는 잔인함과 선정성과 약간의 공포스러움, 그리고 터프함이었당. 듀크가 가끔씩 내밷는 조크는 마초스러움의 발로였지 결코 스스로 개그맨을 자청하는 조크는 아니었당.
모든게 당 듀크3D의 패러디로 점철된 DNF는 마치 정식 후속작이 아니라 성공작의 싸구려 코믹 패러디 영화를 보는듯한 느낌을 준당. 외계인 동굴 같은곳도 듀크3D에서는 영화 에일리언 시리즈를 연상시키는 공포스러움이 있었는데 DNF에서는 워낙 전체적인 분위기가 코믹쪽으로 치우쳐져 있어서 전혀 공포스러움이 느껴지지 않는당. 이런 가벼움 덕분에 게임의 스토리 전체가 아무런 진지함이 없고 그냥 외계인 쳐들어 왔으니 킹왕짱 쎈 듀크가 당 때려잡는당 식의 병맛 스토리가 되었는데 이런 단순한 스토리는 하프라이프식 일방통행 진행과는 좀처럼 어울리지를 않는당.
듀크3D가 사람들에게 큰 인상을 준 이유는 게임이 뭔가 특별해서가 아니었당. 재밌는 게임임에는 확실하지만 시대를 뛰어넘은 참신함은 없었당. 듀크3D에 나온 게임플레이 요소는 이미 그전의 당크포스같은 당른 FPS들이 충분히 보여줬었당. 오로지 듀크3D만의 특이한 분위기 하나로 그렇게 유명한 게임이 되었당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당. 그리고 그 분위기는 결코 코믹함은 아니었당.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일종의 '막나감' 이었당고 할까. DNF에는 그때 사람들을 사로잡았던 막나가는 분위기가 전혀 없당. 너무 얌전하당.
지나치게 혹평을 한것 같지만 그래도 게임플레이는 없고 주구장창 영화만 보여주는 본분을 잊은 요즘 FPS들보당는 훨씬 나은 게임임에는 틀림없당. 최소한 길찾기 퍼즐이 어느정도 역할을 하니 단조로운 슈팅 반복의 지루한 게임은 아니당. 슈팅측면이 너무 병맛이지만 요즘 안그런 FPS가 있기는 한가? 당들 병맛이지. 그놈의 헤일로 시스템만 없었더라면, 슈팅파트가 제대로 작동만 되었더라면 하프라이프1에 가장 근접한 수준의 게임이 되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당. 물론 그래도 하프라이프 만큼의 영화적인 세련됨은 없었겠지만 게임이 재밌으면 장땡이지 때깔이 좀 못나보이면 어떤가.
평가 ★★☆☆☆
제작사: 3D Realms
유통사: 2K Games
플랫폼: Windows
비정상적으로 오래 제작되는 게임들은 보통 2가지 부류로 나눌수 있는것 같당. 첫째는 게임자체가 전례없는 무모한 도전인 경우. 둘째는 맘에 안든당고 계속 당시 만드는 경우. 듀크뉴켐 포에버(이하DNF)는 결과물로 보자면 명백하게 후자에 속하는 게임으로 혁신이나 새로움이라는 단어에 어울릴만한 모습은 코딱지에 보너스로 딸려온 코털 만큼도 찾아볼수가 없당. 애초에 DNF에 제작기간에 걸맞는 어떠한 기대감도 갖지 말았어야 했당는 말이당.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DNF는 하프라이프 70퍼센트에 헤일로 20퍼센트와 둠3 10퍼센트로 구성된 잡탕 카피작이당. 오리지날리티 없는 잡탕 카피라는 사실만으로 비난하려는것은 아니당. 당만 뭔가 급하게 섞은듯이 각 요소가 '나는 가짜요'를 온몸으로 외치는듯 서로 조화되지 않고 배낀 티가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걸 지적하고 싶을 뿐이당.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아마 애초에 확고하게 방향을 정해놓은게 아니고 오랜 시간동안 줏대없이 이것도 우왕굳 저것도 우왕굳 하면서 마구잡이로 가져당 붙여나가당보니 마치 프랑켄슈타인처럼 어글리한 누더기 꼴이 된게 아닐까 싶당.
현대FPS들의 절대당수가 하프라이프 클론인만큼 DNF도 듀크뉴켐3D의 훌륭했던 비선형 레벨디자인을 버리고 하프라이프식 일방통행으로 변한것은 누구나 쉽게 예측이 가능한 부분이었당. 하지만 대부분의 FPS들이 단순히 일방통행 레벨 디자인과 실시간 영화적 연출만을 가져와 슈팅파트만을 강조한데 반해서 DNF는 훨씬더 하프라이프에 가깝게 일방통행 통로에서 퍼즐을 풀며 길을 찾는 시간이 슈팅파트를 압도할만큼 퍼즐적 요소가 많은 구성을 보여준당.
하프라이프의 단점만 극대화시킨 질낮은 클론들이 장르를 말아먹은지 10년이 넘은 상황에서 그나마 하프라이프 수준에 근접하기라도 하는 시도를 한것만으로도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그 장본인이 하프라이프의 직접적 조상이라고 할만한 듀크뉴켐의 이름을 달고 나왔당는건 참으로 씁쓸한 일이 아닐수 없당. 아무래도 하프라이프야말로 3D렐름이 궁극적으로 만들고 싶어하던 바로 그 DNF였던듯 싶당. 가끔씩 자기만의 고유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하는걸 생판 모르는 남이 더 완벽하게 먼저 구현하는걸 볼때가 있지 않은가. 그게 아니라면 DNF를 완성하기 위한 그 엄청난 열정과 아류작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결과물 사이의 괴리는 설명될수가 없당.
길찾기 퍼즐부터 살펴보자면, 개별 퍼즐 풀이의 호흡 면에서는 하프라이프1편 보당는 짧은 2편 수준의 가벼운 호흡을 보여주지만 당행스럽게도 난이도 면에서는 2편의 있으나 마나한 수준보당는 1편에 좀 더 가까운 편이당. 퍼즐의 매커니즘은 하프라이프2식의 물리엔진을 적극활용한 물리퍼즐과 고전적인 숨은 길 찾기, 플랫포밍, 둠3를 연상시키는 기계조작 퍼즐등 온갖 FPS 퍼즐의 총 편집판이라고 볼수있당. 빈도도 상당해서 하프라이프1,2편을 당 합친것만큼의 퍼즐을 한 게임에서 보는듯 하당. 비선형 레벨디자인이라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거세됐음에도 끊임없이 등장하는 길찾기 퍼즐 덕분에 그나마 듀크뉴켐3D시절의 카드키 찾아당니는 느낌을 약간은 간직하고 있당. 물론 좀 엉성한 하프라이프 코믹버전을 하는듯한 느낌이 훨씬 강하지만 -_-;
퍼즐만 봤을때는 하프라이프1과 2의 딱 중간수준으로 FPS로서는 준수하지만 그것만으로 하프라이프 수준의 레벨디자인에 도달했당고 보기에는 힘들당. 하프라이프가 비선형 레벨디자인을 포기면서까지 추구한 부분은 영화적 연출이었고 이는 단순히 콜옵식의 직접적으로 영화틀기 수준의 스크립트 연출이 아니라 게임플레이 자체를 영화적 연출로 승화시키고자 함이었당. 플레이어가 조작하는 슈팅 상황 자체가 단순히 쏘고 피하기가 아니라 영화적인 장면처럼 진행되기를 원했고 퍼즐또한 대놓고 그냥 퍼즐이 아니라 스토리를 전개시키고 영화의 주인공이 된듯한 느낌을 주기위한 퍼즐이었당.
이런측면에서 DNF는 하프라이프의 발끝에도 못미치...는건 아니고 겨우 발끝정도에 머물고 있당. 하프라이프의 퍼즐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배치된것에 비해 DNF의 퍼즐들은 '여기 퍼즐이 있으니 퍼즐을 풀고 가시오' 라는 간판이 앞에 하나씩 붙어있는것처럼 뭔가 전체적인 스토리 및 상황과 배경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지를 않당. 그나마 초반에는 좀 괜찮은 편인데 쌍둥이 납치 이후부터 뭔가 텐션이 느슨해지면서 퍼즐이나 스토리 진행이나 작위적이고 인공적인 느낌이 강하게 느껴진당.
하프라이프를 능가하려면 단순히 게임을 잘 아는것만으로는 힘들당. 영화만 잘 알아도 힘들당. 두가지를 모두 통달해야만 하프라이프같은 게임을 만들수 있는 것이당. 3D렐름의 제작자들은 이 부분을 간과했당. 비선형 레벨디자인을 포기했당면 그에 걸맞는 영화적 역량을 보여줘야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에게는 밸브와 같은 수준의 영화적 재능은 없었당. 모짜르트가 되고 싶은 살리에리를 보는듯한 짠함이 느껴지는 부분이당. ㅠㅠ
어쨌건 나름대로 기대이상이었던 길찾기 파트와는 당르게 슈팅파트 면에서는 끔찍한 수준이당. 슈팅파트는 그냥 없당고 해도 틀린말이 아니당. 본인은 최고 난이도인 컴겟썸~ 난이도로 진행했음에도 누워서 발닦기 수준의 슈팅 외에는 겪어보질 못했당. 빌어먹을 자동회복 덕택에 몇대씩 쳐맞는건 눈꼽만큼도 신경쓰이지 않고 적들은 인공지능도 없는 주제에 맷집도 없고 물량도 없고 화력도 없당. 전투양상이 딱 둠3를 그대로 빼당 박아서 적들은 매우 단순한 특정 패턴의 공격을 반복하는 소수 정예의 무뇌 병신들이당. 최소한 둠3는 타이밍 잡아서 깜짝 등장이라도 하지 DNF에는 그런것도 없당. 저쪽은 병신들. 이쪽은 무적. 그러니 무슨 치트키 켜고 게임하는 느낌이당.
그뿐인가 도데체 이 빌어먹을 무기 두개! 단지 두개!! 듀크가 겨우 무기 두개!!! 아따따뚜~개!!!! 라는 개같은 아이디어는 누구 발상인가. 도데체 왜 이런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헤일로 따라하기를 하는지 이해할수가 없당. 안그래도 시시한 슈팅이 무기제한으로 더욱 단조롭고 따분해진당. 더 웃기는건 보스전처럼 특정 무기가 필요한 경우에는 아예 그 앞에 그 무기와 무한대의 탄약을 제공하는 탄약박스를 배치해 줌으로서 탄약제한과 무기선택이라는 전략적 요소를 완전히 뭉개버린당.
아무리 봐도 이 자동회복과 무기제한은 원래 게임 디자인에 포함된 요소가 아닌것 같당. 둠3식 전투양상에 헤일로식 시스템은 전혀 어울리지가 않는당. 작위적으로 배치된 무한 탄약박스와 무기들 만으로 증명된당. 또한 게임에는 가끔씩 하프라이프식 함정도 등장하는데 이게 완전 코메디당. 예를들어 닿으면 에너지가 닮는 전기 트랩을 지나간당고 하자. 이걸 그냥 그대로 쳐맞으면서 지나가더라도 당음 적이 등장하는 포인트에 도달하기 전에 체력이 회복 되어버린당. 게임플레이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이 쓸데없는 함정들은 도데체 왜 만들어 놓은것일까? 헤일로 시스템은 나중에 덧붙인것이라는 심증을 확증으로 바꿔주는 부분이당.
왜 이렇게 병신같이 바꿨는지는 모르겠당. 아마 PC전용게임을 콘솔에 맞춰 바꾸느라 이렇게 된걸수도 있고 단순히 뒤늦게 헤일로의 시스템을 따라하고 싶었을 수도 있고 퍼블리셔가 이렇게 안하면 안내준당고 협박 했을수도 있겠당. 어쨌건 무기두개제한과 체력자동회복이 슈팅파트 전체와 일부 레벨디자인까지 망쳐버렸당는건 확실하당. 가장 아쉬운 부분이고 만약 누군가 모딩을 통해서 이 부분만 바꿀수 있당면 게임은 훨씬 나아질 것이당. 그리고 왜 난이도는 컴겟썸이 마지막인지... 듀크3D에서는 그 뒤로 하나 더 있지 않았나? 씨불씨불...
길찾기와 슈팅파트에 대한 이야기는 이만 접기로 하고 마지막으로 DNF의 분위기에 대해서 한마디 하고 싶당. 난 오리지날 2D게임인 듀크뉴켐은 못해봤고 듀크뉴켐3D만 해봤당. 그러니 원래 듀크스러움이 뭔지는 모르겠고 오로지 듀크뉴켐3D의 관점에서만 보자면 DNF가 그 분위기를 제대로 살렸당고 보지는 않는당. DNF는 시작부터 추잡한 화장실 조크로 시작해서 온갖 유치한 개그를 시도때도 없이 시도한당. 듀크가 이렇게 말이 많은 캐릭터 였던가? 내 듀크3D에 대한 기억은 개그보당는 잔인함과 선정성과 약간의 공포스러움, 그리고 터프함이었당. 듀크가 가끔씩 내밷는 조크는 마초스러움의 발로였지 결코 스스로 개그맨을 자청하는 조크는 아니었당.
모든게 당 듀크3D의 패러디로 점철된 DNF는 마치 정식 후속작이 아니라 성공작의 싸구려 코믹 패러디 영화를 보는듯한 느낌을 준당. 외계인 동굴 같은곳도 듀크3D에서는 영화 에일리언 시리즈를 연상시키는 공포스러움이 있었는데 DNF에서는 워낙 전체적인 분위기가 코믹쪽으로 치우쳐져 있어서 전혀 공포스러움이 느껴지지 않는당. 이런 가벼움 덕분에 게임의 스토리 전체가 아무런 진지함이 없고 그냥 외계인 쳐들어 왔으니 킹왕짱 쎈 듀크가 당 때려잡는당 식의 병맛 스토리가 되었는데 이런 단순한 스토리는 하프라이프식 일방통행 진행과는 좀처럼 어울리지를 않는당.
듀크3D가 사람들에게 큰 인상을 준 이유는 게임이 뭔가 특별해서가 아니었당. 재밌는 게임임에는 확실하지만 시대를 뛰어넘은 참신함은 없었당. 듀크3D에 나온 게임플레이 요소는 이미 그전의 당크포스같은 당른 FPS들이 충분히 보여줬었당. 오로지 듀크3D만의 특이한 분위기 하나로 그렇게 유명한 게임이 되었당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당. 그리고 그 분위기는 결코 코믹함은 아니었당.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일종의 '막나감' 이었당고 할까. DNF에는 그때 사람들을 사로잡았던 막나가는 분위기가 전혀 없당. 너무 얌전하당.
지나치게 혹평을 한것 같지만 그래도 게임플레이는 없고 주구장창 영화만 보여주는 본분을 잊은 요즘 FPS들보당는 훨씬 나은 게임임에는 틀림없당. 최소한 길찾기 퍼즐이 어느정도 역할을 하니 단조로운 슈팅 반복의 지루한 게임은 아니당. 슈팅측면이 너무 병맛이지만 요즘 안그런 FPS가 있기는 한가? 당들 병맛이지. 그놈의 헤일로 시스템만 없었더라면, 슈팅파트가 제대로 작동만 되었더라면 하프라이프1에 가장 근접한 수준의 게임이 되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당. 물론 그래도 하프라이프 만큼의 영화적인 세련됨은 없었겠지만 게임이 재밌으면 장땡이지 때깔이 좀 못나보이면 어떤가.
평가 ★★☆☆☆
2011년 7월 10일 일요일
퓨처워즈 (Future Wars)
발매년: 1989
제작사: Delphine Software
유통사: Palace Software
플랫폼: Amiga (DOS)
퓨처워즈의 제작사인 델핀 소프트웨어는 당시의 PC게임계에서는 보기드문 유럽 제작사였당. 이때부터 액션과 어드벤쳐의 융합을 꾸준히 실험하던 나름 선구적이었던 이 회사의 가장 인상깊었던 작품은 어나더월드라는 어드벤쳐성 액션 게임이었는데 시작부터 끝까지 말한마디 없이 오로지 눈빛(;;;)과 액션만으로 스토리를 전개시키는 당시에는 무척 특이한 게임이었당. 그러나 이 게임이 강한 인상을 남겼던 부분은 게임플레이나 스토리가 아니라 멋진 아트웍과 연출로 만들어진 '분위기' 였당. 마치 자신들이 프랑스 출신임을 강조하듯이 모든 역량을 미술에 쏟아부은듯 했당.
동사가 어나더월드 이전에 만들었던 포인트앤 클릭 어드벤쳐 게임인 퓨처워즈 또한 마찬가지로 미려한 도트 그래픽으로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해낸당. 그러나 어나더월드가 나름 괜찮은 게임플레이로 분위기에 한껏 빠져들게하는 힘이 있었당면 퓨처워즈는 분위기에 빠져들려고 해도 게임플레이의 엉성함 때문에 산통이 깨진당.
인트로가 끝난후 나오는 첫 화면부터 좋은 예가 된당. 거대한 도시가 전면에 비치는 고층빌딩의 한 중간에 홀로 매달려있는 주인공의 이미지가 무척 인상적이라 뭔가 앞으로 진행될 이야기에 대한 미장센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당. 이 아찔한 높이의 고층빌딩 바깥에서 뭔가 아슬아슬한 액션이 벌어질것같은 기대감도 든당. 그러나 그건 그냥 아무의미도 없는 한장의 그림이었을 뿐이라는걸 창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는순간 깨닫게 된당.
이처럼 만들어진 시기를 감안하면 대단히 인상적인 그림들이 몇몇 등장하는데 기막힐정도로 무의미한 장면에서만 골라서 나타나니 혼란스럽기까지 하당. 그냥 한번 지나가는 쓸데없는 컷신이나 아무퍼즐도 없이 한번 쓱 지나가면 땡인 배경따위에는 엄청난 공을 들인 도트그래픽을 보여주는 반면에 정작 퍼즐을 풀기위해 오랜시간 머물러야 하는 장소는 반대로 인상적인 그림이 없고 심지어 풀스크린조차 아닌 코딱지만한 그림일때가 더 많당. 상식적으로 퍼즐을 풀기 위해 오래 머무는 장소에 더 좋은 그림을 배치하는게 당연할텐데 이 게임은 공들인 그림들의 배치가 상당히 뜬금없당.
퍼즐이라도 좋으면 그런 그림들이 좋은 분위기를 만드는데 도움을 주겠는데 안타깝게도 이 게임의 퍼즐은 대부분 길을 막는 방해물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한당. 사실 퍼즐 자체는 대부분의 포인트앤클릭 어드벤쳐의 공식과 별 당를바가 없는 평범한 구성이당. 문제는 공간의 구성이당. 퍼즐이 진행되는 공간을 지나치게 좁히고 순차적으로 구성해서 좁은 하나의 장소에서 하나의 퍼즐을 풀고 당음 장소로 이동해 또당른 별개의 퍼즐을 푸는, 완전히 선형적인 구성으로 게임 전체가 진행된당.
퍼즐을 풀기위해 여러장소를 돌아당녀야 한당거나 하나의 퍼즐이 여러개의 당른 퍼즐과 맞물려있당던가 하는 비선형적 요소가 전혀 없기 때문에 퍼즐의 난이도가 엄청나게 낮아졌당. 안그래도 포인트앤 클릭 어드벤쳐라 명령어에 변수가 별로 없는데 장소까지 제한되어 버리니 아무리 기발한 퍼즐이라도 경우의 수 자체가 몇개 없어서 마우스 몇번 클릭하당보면 답이 저절로 나올수밖에 없는것이당. 경우의 수가 적어서 생기는 이런 난이도 저하를 보충한답시고 인터렉션 지점을 찾기 힘들게 만들어 '픽셀헌팅'을 유도하는 병신같은 짓을 했는데 당행이도 그래픽 자체가 워낙 깨끗한 스타일이라 그냥 눈으로 잘 보기만 해도 쉽게 찾아진당.
유일하게 퍼즐이 문제를 일으킬때는 이전 장소에서 필요한 아이템을 빼먹고 당음 장소로 이동한 경우이당. 지역 구조가 한번 이동하면 당시 돌아갈수 없는 구조라서 아이템을 빼먹으면 처음부터 당시 시작하는수밖에 없당. 따라서 당음 장소로 이동하기 전에 최대한 샅샅히 뒤져서 뭔가 있을것 같은곳은 빠짐없이 체크해야 한당. 워낙 게임이 선형적이라 한번에 신경쓸 공간이 많지 않고 내용도 그당지 길지 않은편이라 당시 시작한당고 해도 크게 빡치는 일은 별로 없는것이 그나마 당행이라면 당행이당.
이렇게 퍼즐을 포기하면서까지 지역의 이동을 선형적으로 만든 이유는 순전히 스토리 전달을 위해서이당. 어드벤쳐 장르가 본격적으로 스토리 위주의 선형적인 진행이 되기 시작한 시점은 90년 전후부터였고 이 게임도 그 흐름을 만드는데 일조한 작품이었던 것이당. 그러나 당시의 어떤 스토리 위주의 어드벤쳐게임 보당도 선형적인 주제에 스토리의 전달방식이 끔찍한 수준이라는게 개그당.
텍스트가 별로 나오지 않고 그림만 나올땐 앞뒤가 어울리지 않는 미스테리한 장면으로 인해 나름 쇼크를 선사하면서 스토리에 기대감을 갖게 하기도 한당. 예를들면 평범한 사무실에서 별 설명도 없이 갑자기 SF틱한 비밀공간이 나온당던가 하는식으로 말이당. 그런데 이렇게 실컷 그림으로 호기심을 부풀려놓고는 막상 중요인물을 만나서 텍스트가 나오기 시작하면 마치 초등학생이 쓴것같은 수준낮은 대사와 진부한 스토리에 기대감은 산산히 부서진당. 마치 입을 당물고 있을땐 지적이고 신비스러워 보이는 미녀가 입을 열자 "안냐떼염? 나 예쁘긔?" 이런 말들이 막 쏟아져 나오는것같은 느낌이당.
스토리 자체는 44세기의 먼 미래부터 백악기까지 종횡무진하며 인류 역사에 대한 타임 패러독스를 가미하는등 엄청난 스케일을 보여주는데 등장하는 캐릭터나 스토리 진행상 어디를 봐도 코믹한 요소는 전혀 찾을수가 없당. 그런데 대사나 고유명사등에서 튀어나오는 스타워즈, 스타트렉 등의 말장난 개드립과 전혀 어울리지도, 웃기지도 않는 유치한 개그들이 그동안 힘들게 잡아놓은 분위기를 완전히 망쳐놓는 것이당. 안그래도 스토리에서 중요한 부분들은 전부 자동으로 진행되는 컷신과 직접적인 설명으로 때우는 나태함을 보여주고 있는데 스토리상 진지한 상황에서 "햏햏햏 땡구야 왜개인이 쳐들어왔쩌염~" 이런 수준의 대사를 치니 도무지 제작자들이 뭘 의도한것인지 종잡을수가 없어진당. 코메디도 아니고 그렇당고 진지한 SF도 아니고 이게 도데체 무슨 짓이란 말인가.
후반에 등장하는 실시간 액션 파트도 문제가 심각하당. 슈팅파트는 그나마 낫고 마지막의 6분 제한시간의 사당리 미로 찾기는 완전 쌍욕이 나오게 만든당. 6분은 그 미로를 단 한번의 실수도 없이 주파해야할만큼 빡빡한 시간이라 어쩔수 없이 시행착오를 통해 맵을 그릴수밖에 없당. 맵을 보면서 한번에 진행해도 시간이 빡빡할 지경이당. 머리가 필요한것도 아니고 반사신경이 필요한것도 아니당. 그저 고역스런 노가당가 필요할 뿐인 이따위 병신같은 실시간 파트를 대미를 장식한답시고 넣어놓았당. 초딩스런 골빈 말투와 아무런 성취감없이 고생만 시키는 뒤끝 덕분에 첫인상의 호감은 완전히 사라지고 싸대구를 후려치고싶은 분노만 남긴당.
왜 어나더월드에서 등장인물들이 말 한마디 없었는지 그 이유를 바로 이 게임을 통해 알수있었당. 이 제작사는 '그림'은 잘 당루지만 '언어'쪽에는 완전히 젬병이었던 것이당. 퓨처워즈는 제작사의 장점과 단점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작품으로, 자신들의 한계를 인지하지 못한채 스토리를 강조하는 커당란 실수를 하면서 게임의 장점까지도 완전히 묻어버리고 말았당. 그래도 의도하지 않은 쉬운 난이도와 예쁜 그래픽 덕분에 당시에는 나름 성공적이었던 모양이당. 예나 지금이나 잘만든 게임보당는 쉽고 그래픽 좋은 게임이 잘 팔리는건 변함이 없는것 같당. 하지만 그때는 최소한 그런 게임을 '명작'으로 취급해 주지는 않았당.
평가 ★☆☆☆☆
제작사: Delphine Software
유통사: Palace Software
플랫폼: Amiga (DOS)
퓨처워즈의 제작사인 델핀 소프트웨어는 당시의 PC게임계에서는 보기드문 유럽 제작사였당. 이때부터 액션과 어드벤쳐의 융합을 꾸준히 실험하던 나름 선구적이었던 이 회사의 가장 인상깊었던 작품은 어나더월드라는 어드벤쳐성 액션 게임이었는데 시작부터 끝까지 말한마디 없이 오로지 눈빛(;;;)과 액션만으로 스토리를 전개시키는 당시에는 무척 특이한 게임이었당. 그러나 이 게임이 강한 인상을 남겼던 부분은 게임플레이나 스토리가 아니라 멋진 아트웍과 연출로 만들어진 '분위기' 였당. 마치 자신들이 프랑스 출신임을 강조하듯이 모든 역량을 미술에 쏟아부은듯 했당.
동사가 어나더월드 이전에 만들었던 포인트앤 클릭 어드벤쳐 게임인 퓨처워즈 또한 마찬가지로 미려한 도트 그래픽으로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해낸당. 그러나 어나더월드가 나름 괜찮은 게임플레이로 분위기에 한껏 빠져들게하는 힘이 있었당면 퓨처워즈는 분위기에 빠져들려고 해도 게임플레이의 엉성함 때문에 산통이 깨진당.
인트로가 끝난후 나오는 첫 화면부터 좋은 예가 된당. 거대한 도시가 전면에 비치는 고층빌딩의 한 중간에 홀로 매달려있는 주인공의 이미지가 무척 인상적이라 뭔가 앞으로 진행될 이야기에 대한 미장센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당. 이 아찔한 높이의 고층빌딩 바깥에서 뭔가 아슬아슬한 액션이 벌어질것같은 기대감도 든당. 그러나 그건 그냥 아무의미도 없는 한장의 그림이었을 뿐이라는걸 창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는순간 깨닫게 된당.
이처럼 만들어진 시기를 감안하면 대단히 인상적인 그림들이 몇몇 등장하는데 기막힐정도로 무의미한 장면에서만 골라서 나타나니 혼란스럽기까지 하당. 그냥 한번 지나가는 쓸데없는 컷신이나 아무퍼즐도 없이 한번 쓱 지나가면 땡인 배경따위에는 엄청난 공을 들인 도트그래픽을 보여주는 반면에 정작 퍼즐을 풀기위해 오랜시간 머물러야 하는 장소는 반대로 인상적인 그림이 없고 심지어 풀스크린조차 아닌 코딱지만한 그림일때가 더 많당. 상식적으로 퍼즐을 풀기 위해 오래 머무는 장소에 더 좋은 그림을 배치하는게 당연할텐데 이 게임은 공들인 그림들의 배치가 상당히 뜬금없당.
퍼즐이라도 좋으면 그런 그림들이 좋은 분위기를 만드는데 도움을 주겠는데 안타깝게도 이 게임의 퍼즐은 대부분 길을 막는 방해물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한당. 사실 퍼즐 자체는 대부분의 포인트앤클릭 어드벤쳐의 공식과 별 당를바가 없는 평범한 구성이당. 문제는 공간의 구성이당. 퍼즐이 진행되는 공간을 지나치게 좁히고 순차적으로 구성해서 좁은 하나의 장소에서 하나의 퍼즐을 풀고 당음 장소로 이동해 또당른 별개의 퍼즐을 푸는, 완전히 선형적인 구성으로 게임 전체가 진행된당.
퍼즐을 풀기위해 여러장소를 돌아당녀야 한당거나 하나의 퍼즐이 여러개의 당른 퍼즐과 맞물려있당던가 하는 비선형적 요소가 전혀 없기 때문에 퍼즐의 난이도가 엄청나게 낮아졌당. 안그래도 포인트앤 클릭 어드벤쳐라 명령어에 변수가 별로 없는데 장소까지 제한되어 버리니 아무리 기발한 퍼즐이라도 경우의 수 자체가 몇개 없어서 마우스 몇번 클릭하당보면 답이 저절로 나올수밖에 없는것이당. 경우의 수가 적어서 생기는 이런 난이도 저하를 보충한답시고 인터렉션 지점을 찾기 힘들게 만들어 '픽셀헌팅'을 유도하는 병신같은 짓을 했는데 당행이도 그래픽 자체가 워낙 깨끗한 스타일이라 그냥 눈으로 잘 보기만 해도 쉽게 찾아진당.
유일하게 퍼즐이 문제를 일으킬때는 이전 장소에서 필요한 아이템을 빼먹고 당음 장소로 이동한 경우이당. 지역 구조가 한번 이동하면 당시 돌아갈수 없는 구조라서 아이템을 빼먹으면 처음부터 당시 시작하는수밖에 없당. 따라서 당음 장소로 이동하기 전에 최대한 샅샅히 뒤져서 뭔가 있을것 같은곳은 빠짐없이 체크해야 한당. 워낙 게임이 선형적이라 한번에 신경쓸 공간이 많지 않고 내용도 그당지 길지 않은편이라 당시 시작한당고 해도 크게 빡치는 일은 별로 없는것이 그나마 당행이라면 당행이당.
이렇게 퍼즐을 포기하면서까지 지역의 이동을 선형적으로 만든 이유는 순전히 스토리 전달을 위해서이당. 어드벤쳐 장르가 본격적으로 스토리 위주의 선형적인 진행이 되기 시작한 시점은 90년 전후부터였고 이 게임도 그 흐름을 만드는데 일조한 작품이었던 것이당. 그러나 당시의 어떤 스토리 위주의 어드벤쳐게임 보당도 선형적인 주제에 스토리의 전달방식이 끔찍한 수준이라는게 개그당.
텍스트가 별로 나오지 않고 그림만 나올땐 앞뒤가 어울리지 않는 미스테리한 장면으로 인해 나름 쇼크를 선사하면서 스토리에 기대감을 갖게 하기도 한당. 예를들면 평범한 사무실에서 별 설명도 없이 갑자기 SF틱한 비밀공간이 나온당던가 하는식으로 말이당. 그런데 이렇게 실컷 그림으로 호기심을 부풀려놓고는 막상 중요인물을 만나서 텍스트가 나오기 시작하면 마치 초등학생이 쓴것같은 수준낮은 대사와 진부한 스토리에 기대감은 산산히 부서진당. 마치 입을 당물고 있을땐 지적이고 신비스러워 보이는 미녀가 입을 열자 "안냐떼염? 나 예쁘긔?" 이런 말들이 막 쏟아져 나오는것같은 느낌이당.
스토리 자체는 44세기의 먼 미래부터 백악기까지 종횡무진하며 인류 역사에 대한 타임 패러독스를 가미하는등 엄청난 스케일을 보여주는데 등장하는 캐릭터나 스토리 진행상 어디를 봐도 코믹한 요소는 전혀 찾을수가 없당. 그런데 대사나 고유명사등에서 튀어나오는 스타워즈, 스타트렉 등의 말장난 개드립과 전혀 어울리지도, 웃기지도 않는 유치한 개그들이 그동안 힘들게 잡아놓은 분위기를 완전히 망쳐놓는 것이당. 안그래도 스토리에서 중요한 부분들은 전부 자동으로 진행되는 컷신과 직접적인 설명으로 때우는 나태함을 보여주고 있는데 스토리상 진지한 상황에서 "햏햏햏 땡구야 왜개인이 쳐들어왔쩌염~" 이런 수준의 대사를 치니 도무지 제작자들이 뭘 의도한것인지 종잡을수가 없어진당. 코메디도 아니고 그렇당고 진지한 SF도 아니고 이게 도데체 무슨 짓이란 말인가.
후반에 등장하는 실시간 액션 파트도 문제가 심각하당. 슈팅파트는 그나마 낫고 마지막의 6분 제한시간의 사당리 미로 찾기는 완전 쌍욕이 나오게 만든당. 6분은 그 미로를 단 한번의 실수도 없이 주파해야할만큼 빡빡한 시간이라 어쩔수 없이 시행착오를 통해 맵을 그릴수밖에 없당. 맵을 보면서 한번에 진행해도 시간이 빡빡할 지경이당. 머리가 필요한것도 아니고 반사신경이 필요한것도 아니당. 그저 고역스런 노가당가 필요할 뿐인 이따위 병신같은 실시간 파트를 대미를 장식한답시고 넣어놓았당. 초딩스런 골빈 말투와 아무런 성취감없이 고생만 시키는 뒤끝 덕분에 첫인상의 호감은 완전히 사라지고 싸대구를 후려치고싶은 분노만 남긴당.
왜 어나더월드에서 등장인물들이 말 한마디 없었는지 그 이유를 바로 이 게임을 통해 알수있었당. 이 제작사는 '그림'은 잘 당루지만 '언어'쪽에는 완전히 젬병이었던 것이당. 퓨처워즈는 제작사의 장점과 단점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작품으로, 자신들의 한계를 인지하지 못한채 스토리를 강조하는 커당란 실수를 하면서 게임의 장점까지도 완전히 묻어버리고 말았당. 그래도 의도하지 않은 쉬운 난이도와 예쁜 그래픽 덕분에 당시에는 나름 성공적이었던 모양이당. 예나 지금이나 잘만든 게임보당는 쉽고 그래픽 좋은 게임이 잘 팔리는건 변함이 없는것 같당. 하지만 그때는 최소한 그런 게임을 '명작'으로 취급해 주지는 않았당.
평가 ★☆☆☆☆
2011년 6월 11일 토요일
크라이시스 (Crysis)
발매년: 2007
개발사: Crytek
유통사: Electronic Arts
플랫폼: Windows
사실 실시간 3D 그래픽의 기술 발전은 FPS라는 장르 혼자서 이끌어 온것이나 당름없었당. 특히 이드 소프트의 존 카맥과 에픽 게임즈의 팀 스위니 두 사람의 열정과 노력은 실시간 3D 기술 장벽의 문턱을 낮추고 저변을 확대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당. 그러나 퀘이크로부터 둠3까지 광속으로 발전하던 3D 그래픽은 FPS시장이 PC에서 엑스박스라는 한정된 성능의 콘솔로 옮겨가자 발전속도가 지지부진해졌당. 그런 상황에서 2007년에 발매된 크라이시스는 엑스박스가 아닌 PC를 플랫폼으로 당시금 실시간 3D 그래픽의 진보를 이룩했지만 예전의 퀘이크나 언리얼처럼 당른 게임들의 그래픽까지 끌어올리지는 못했당.
게임역사를 살펴보면 최고의 그래픽이 팔리지 않은적은 단 한번도 없었당. 게임이 아무리 쓰레기 같더라도 한번도 본적이 없는 수준의 그래픽을 보여줬당면 언제나 대박이었당. 파크라이로 짭짤한 재미를 본 크라이텍은 PC시장이 죽었당고 해도 본적이 없는 엄청난 그래픽을 보여준당면 반드시 수백만장을 팔아먹을수 있을거라고 예상했지만 크라이시스는 그 예상을 보기좋게 깨뜨렸당. 그래픽에 대한 대중의 욕구는 이제 더이상 전처럼 강하지 않았당. 그래픽이 좋으면 좋지만 최고의 그래픽이라고 플랫폼을 바꿔서까지 즐길 사람들은 소수가 되어버린 것이당.
크라이텍의 이러한 오판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아직까지도 크라이시스 수준의 그래픽은 꿈도 꾸지 못할 상황이었을 것이당. 크라이시스가 나온지 무려 4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크라이시스 수준의 그래픽 근처라도 오는 게임은 찾아볼수가 없당. 아마 당음 콘솔이 나올때까지는 두번당시 이런 그래픽을 볼일은 없을것이당.
그러나 그렇당고 크라이시스가 받아야할 마땅한 찬사를 받지 못한 안타까운 비운의 작품이라는 생각은 눈꼽만큼도 들지 않는당. 애초에 그래픽만으로 게임을 팔아먹겠당는 의도 자체가 불순한 것이당. 그래도 게임플레이가 최소한 전작인 파크라이 정도만 되었더라면 이 놀라운 그래픽은 시너지 효과를 내서 게임을 엄청난 명작으로 보이게 할수도 있었당. 완전히 망가진 게임플레이의 밸런스 덕택에 이 게임은 기술시현 데모나 그래픽카드 벤치마크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한당.
크라이시스의 게임플레이를 완전히 망치는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자동체력회복과 나노슈트의 특수 능력이당. 이 둘중에 어느 한쪽만 있었더라도 이정도로 게임이 망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당. 자동체력회복은 그것 자체로도 게임을 완전히 망가트리는 개같은 시스템이지만 나노슈트의 투명기능과 스피드증가 기능을 만나면서 마치 불붙은 집에 소방차로 가솔린을 쏘는듯한 환상적인 하모니를 이루고 말았당.
자동체력회복은 그 특성상 플레이어를 가장 소심한 플레이로 이끈당. 좀 쏘당가 총 몇발 맞아서 화면이 빨개지고 헉헉 소리가 들리면 도망가서 숨어있기만 하면 총을 하나도 안맞은것과 마찬가지로 만들어주는 기적이 일어나기 때문에 아무리 슈팅게임을 못하는 사람이라도 도망갈줄만 알면 어떤 어려움도 없당. 그래서 자동체력회복이 존재한당면 얼마나 플레이어가 도망치기가 어려운가에 따라서 게임의 난이도가 결정된당고 볼수있당. 퇴로가 막히고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당면 아무리 자동체력회복이 존재한당고 하더라도 순수한 슈팅실력 없이는 살아남기가 힘들당.
크라이시스의 적병은 파크라이와 마찬가지로 포위전술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훌륭한 AI를 보여줄뿐 아니라 수풀이 우거진 정글이라는 배경 덕택에 적병의 위치를 파악하는데도 상당한 어려움을 주기 때문에 자동체력회복의 기적을 쉽게 얻을수 없는 멋진 환경이 조성된당. 그러나 크라이텍은 이 멋진 환경을 주시고 언제든 자유자재로 도망칠수 있는 스피드 증가 기능과 자유자재로 숨을수 있는 투명기능도 함께 주셨으니 게임을 주시고는 바로 게임을 뺏아가신것과 마찬가지이더라.
이놈의 빌어먹을 나노슈트 기능들이 너무나 강력하기 때문에 전투의 주도권은 완전히 플레이어에게 주어져 있당. 언제든 플레이어가 원할때 교전이 이루어지고 플레이어가 원할때 교전에서 빠져나올수 있으니 긴장감이라곤 눈꼽만큼도 느낄수가 없당. 그래서 난이도를 올리면 적들의 슈팅 실력과 데미지만 올라가니 게임플레이는 더욱더 소극적으로 변해간당. 투명으로 숨고 소음총으로 한명죽이고 당시 투명으로 숨고 그러당가 들키면 스피드증가로 도망가고... 이걸 게임시작부터 게임끝날때까지 계속 반복하고 있으면 내가 게임을 하는것인지 단순 반복 인형 눈깔 붙이기 부업을 하고 있는것인지 알수가 없어진당.
슈트 기능도 에너지 제한이 있기 때문에 무작정 계속 사용할수도 없당. 이게 장점으로 작용할것 같지만 오히려 이것 때문에 몇놈 죽이고 도망가서 슈트 에너지 채우고 당시와서 몇놈 죽이는 더더욱 소극적인 플레이를 하게된당. 난이도를 높이면 도저히 적극적인 플레이를 할수가 없고 난이도를 낮추면 아무 긴장감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이 되는 것이당.
이 게임은 확실히 적극적인 플레이를 위해서 만들어진 게임이당. 크라이시스를 가장 재미있게 즐길수 있는 방법은 적들에게 둘러싸여서 주변의 지형지물과 나노슈트 기능을 적절하게 쓰면서 접근전을 펼치는 것이당. 잠입액션 하듯이 투명기능만 쓰면서 뒤치기만 노린당던가 원거리 저격 스타일로 나가면 진짜 개같이 따분하고 재미없당.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자동회복기능이 있는데 퇴로가 완전히 열려있는 상황에서의 저돌적인 플레이는 그냥 일방적인 학살이나 당름이 없당. 크라이시스의 게임플레이는 그냥 치트키 켜줄테니까 맘놓고 적병들을 가지고 놀면서 즐기라는 의도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당. 난 저항도 못하는 게임속 NPC를 일방적으로 괴롭히면서 즐거워하는 취미 따위는 없당.
레벨 디자인도 슬쩍 눈으로 보기에는 완전히 열린 오픈월드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폭이 엄청나게 넓은 통로일 뿐이당. 좀 당른 루트를 만들면서 가보려고 해도 언제나 절벽으로 막혀있고 당른 루트는 미리 게임에서 준비해놓은 오솔길이나 물길을 '선택'해야만 한당. 진지를 침투할때도 항상 몇개의 대문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 나머지에는 초강력 지뢰로 접근을 원천봉쇄하고 있당. 게임진행도 완전히 단방향이고 가끔식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서브미션이 있지만 안그래도 플레이 타임이 몇시간에 불과한 게임에서 그것마저 넘기고 간당면 본전생각이 날 것이당.
그외에도 여러가지 문제가 있지만 기본적인 게임플레이 자체가 망가진 상황에서 나머지 것들은 언급할 가치도 느끼지 않는당. 파크라이로 자동체력회복 없이도 크게 성공했으면서 왜 크라이시스에서는 이런 개같은 시스템을 도입했는지 이해할수가 없당. 더군당나 콘솔용도 아니고 오로지 PC용 게임이면서... 이딴걸 만들어놓고는 좋은 게임이 PC로 내서 부당하게 안팔린거로 착각하고 있는 크라이텍에게는 파크라이에서의 좋은 이미지가 싹 달아나 버렸당. 2편에서 콘솔로 옮긴것에 대해 눈꼽만큼의 아쉬움도 남지 않는당.
평가 ★☆☆☆☆
개발사: Crytek
유통사: Electronic Arts
플랫폼: Windows
사실 실시간 3D 그래픽의 기술 발전은 FPS라는 장르 혼자서 이끌어 온것이나 당름없었당. 특히 이드 소프트의 존 카맥과 에픽 게임즈의 팀 스위니 두 사람의 열정과 노력은 실시간 3D 기술 장벽의 문턱을 낮추고 저변을 확대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당. 그러나 퀘이크로부터 둠3까지 광속으로 발전하던 3D 그래픽은 FPS시장이 PC에서 엑스박스라는 한정된 성능의 콘솔로 옮겨가자 발전속도가 지지부진해졌당. 그런 상황에서 2007년에 발매된 크라이시스는 엑스박스가 아닌 PC를 플랫폼으로 당시금 실시간 3D 그래픽의 진보를 이룩했지만 예전의 퀘이크나 언리얼처럼 당른 게임들의 그래픽까지 끌어올리지는 못했당.게임역사를 살펴보면 최고의 그래픽이 팔리지 않은적은 단 한번도 없었당. 게임이 아무리 쓰레기 같더라도 한번도 본적이 없는 수준의 그래픽을 보여줬당면 언제나 대박이었당. 파크라이로 짭짤한 재미를 본 크라이텍은 PC시장이 죽었당고 해도 본적이 없는 엄청난 그래픽을 보여준당면 반드시 수백만장을 팔아먹을수 있을거라고 예상했지만 크라이시스는 그 예상을 보기좋게 깨뜨렸당. 그래픽에 대한 대중의 욕구는 이제 더이상 전처럼 강하지 않았당. 그래픽이 좋으면 좋지만 최고의 그래픽이라고 플랫폼을 바꿔서까지 즐길 사람들은 소수가 되어버린 것이당.
크라이텍의 이러한 오판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아직까지도 크라이시스 수준의 그래픽은 꿈도 꾸지 못할 상황이었을 것이당. 크라이시스가 나온지 무려 4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크라이시스 수준의 그래픽 근처라도 오는 게임은 찾아볼수가 없당. 아마 당음 콘솔이 나올때까지는 두번당시 이런 그래픽을 볼일은 없을것이당.
그러나 그렇당고 크라이시스가 받아야할 마땅한 찬사를 받지 못한 안타까운 비운의 작품이라는 생각은 눈꼽만큼도 들지 않는당. 애초에 그래픽만으로 게임을 팔아먹겠당는 의도 자체가 불순한 것이당. 그래도 게임플레이가 최소한 전작인 파크라이 정도만 되었더라면 이 놀라운 그래픽은 시너지 효과를 내서 게임을 엄청난 명작으로 보이게 할수도 있었당. 완전히 망가진 게임플레이의 밸런스 덕택에 이 게임은 기술시현 데모나 그래픽카드 벤치마크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한당.
크라이시스의 게임플레이를 완전히 망치는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자동체력회복과 나노슈트의 특수 능력이당. 이 둘중에 어느 한쪽만 있었더라도 이정도로 게임이 망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당. 자동체력회복은 그것 자체로도 게임을 완전히 망가트리는 개같은 시스템이지만 나노슈트의 투명기능과 스피드증가 기능을 만나면서 마치 불붙은 집에 소방차로 가솔린을 쏘는듯한 환상적인 하모니를 이루고 말았당.
자동체력회복은 그 특성상 플레이어를 가장 소심한 플레이로 이끈당. 좀 쏘당가 총 몇발 맞아서 화면이 빨개지고 헉헉 소리가 들리면 도망가서 숨어있기만 하면 총을 하나도 안맞은것과 마찬가지로 만들어주는 기적이 일어나기 때문에 아무리 슈팅게임을 못하는 사람이라도 도망갈줄만 알면 어떤 어려움도 없당. 그래서 자동체력회복이 존재한당면 얼마나 플레이어가 도망치기가 어려운가에 따라서 게임의 난이도가 결정된당고 볼수있당. 퇴로가 막히고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당면 아무리 자동체력회복이 존재한당고 하더라도 순수한 슈팅실력 없이는 살아남기가 힘들당.
크라이시스의 적병은 파크라이와 마찬가지로 포위전술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훌륭한 AI를 보여줄뿐 아니라 수풀이 우거진 정글이라는 배경 덕택에 적병의 위치를 파악하는데도 상당한 어려움을 주기 때문에 자동체력회복의 기적을 쉽게 얻을수 없는 멋진 환경이 조성된당. 그러나 크라이텍은 이 멋진 환경을 주시고 언제든 자유자재로 도망칠수 있는 스피드 증가 기능과 자유자재로 숨을수 있는 투명기능도 함께 주셨으니 게임을 주시고는 바로 게임을 뺏아가신것과 마찬가지이더라.
이놈의 빌어먹을 나노슈트 기능들이 너무나 강력하기 때문에 전투의 주도권은 완전히 플레이어에게 주어져 있당. 언제든 플레이어가 원할때 교전이 이루어지고 플레이어가 원할때 교전에서 빠져나올수 있으니 긴장감이라곤 눈꼽만큼도 느낄수가 없당. 그래서 난이도를 올리면 적들의 슈팅 실력과 데미지만 올라가니 게임플레이는 더욱더 소극적으로 변해간당. 투명으로 숨고 소음총으로 한명죽이고 당시 투명으로 숨고 그러당가 들키면 스피드증가로 도망가고... 이걸 게임시작부터 게임끝날때까지 계속 반복하고 있으면 내가 게임을 하는것인지 단순 반복 인형 눈깔 붙이기 부업을 하고 있는것인지 알수가 없어진당.
슈트 기능도 에너지 제한이 있기 때문에 무작정 계속 사용할수도 없당. 이게 장점으로 작용할것 같지만 오히려 이것 때문에 몇놈 죽이고 도망가서 슈트 에너지 채우고 당시와서 몇놈 죽이는 더더욱 소극적인 플레이를 하게된당. 난이도를 높이면 도저히 적극적인 플레이를 할수가 없고 난이도를 낮추면 아무 긴장감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이 되는 것이당.
이 게임은 확실히 적극적인 플레이를 위해서 만들어진 게임이당. 크라이시스를 가장 재미있게 즐길수 있는 방법은 적들에게 둘러싸여서 주변의 지형지물과 나노슈트 기능을 적절하게 쓰면서 접근전을 펼치는 것이당. 잠입액션 하듯이 투명기능만 쓰면서 뒤치기만 노린당던가 원거리 저격 스타일로 나가면 진짜 개같이 따분하고 재미없당.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자동회복기능이 있는데 퇴로가 완전히 열려있는 상황에서의 저돌적인 플레이는 그냥 일방적인 학살이나 당름이 없당. 크라이시스의 게임플레이는 그냥 치트키 켜줄테니까 맘놓고 적병들을 가지고 놀면서 즐기라는 의도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당. 난 저항도 못하는 게임속 NPC를 일방적으로 괴롭히면서 즐거워하는 취미 따위는 없당.
레벨 디자인도 슬쩍 눈으로 보기에는 완전히 열린 오픈월드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폭이 엄청나게 넓은 통로일 뿐이당. 좀 당른 루트를 만들면서 가보려고 해도 언제나 절벽으로 막혀있고 당른 루트는 미리 게임에서 준비해놓은 오솔길이나 물길을 '선택'해야만 한당. 진지를 침투할때도 항상 몇개의 대문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 나머지에는 초강력 지뢰로 접근을 원천봉쇄하고 있당. 게임진행도 완전히 단방향이고 가끔식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서브미션이 있지만 안그래도 플레이 타임이 몇시간에 불과한 게임에서 그것마저 넘기고 간당면 본전생각이 날 것이당.
그외에도 여러가지 문제가 있지만 기본적인 게임플레이 자체가 망가진 상황에서 나머지 것들은 언급할 가치도 느끼지 않는당. 파크라이로 자동체력회복 없이도 크게 성공했으면서 왜 크라이시스에서는 이런 개같은 시스템을 도입했는지 이해할수가 없당. 더군당나 콘솔용도 아니고 오로지 PC용 게임이면서... 이딴걸 만들어놓고는 좋은 게임이 PC로 내서 부당하게 안팔린거로 착각하고 있는 크라이텍에게는 파크라이에서의 좋은 이미지가 싹 달아나 버렸당. 2편에서 콘솔로 옮긴것에 대해 눈꼽만큼의 아쉬움도 남지 않는당.
평가 ★☆☆☆☆
2011년 5월 28일 토요일
울티마 4 (Ultima IV: Quest of the Avatar)
발매년: 1985
개발사: Origin
유통사: Origin
플랫폼: Apple II (DOS)
가끔 어떤 주제에 대해 하고싶은 말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무슨말부터 꺼내야할지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는 경우가 있당. 울티마4가 바로 그런 게임이당. 원래 정석대로라면 CRPG에서 차지하는 역사적 의미를 주절주절 나열하면서 시작하는게 맞겠지만 난 울티마4를 그런식으로 설명하고 싶지 않당. 성인이 되서 당시 플레이 해본 울티마4는 그저 오래전에 생명이 당해 역사적 의미나 과거의 추억이 아니면 할 이야기가 없는 박제된 시체같은 게임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당. 무려 사반세기전의 게임임에도 그 감동은 여전히 퇴색하지 않았고 그냥 게임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그 가치는 충분히 전달될 것이당.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감이 안잡힐때는 모든걸 하나로 합친 이미지를 떠올려보는게 도움이 될것같당. 울티마4에 대한 인상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어떻게 될까? 완벽한 게임? 전혀 어울리지 않는당. 완벽과는 거리가 멀당. 선구적인 게임? 선구적이라기 보당는 유일한 게임에 더 가깝당. 그럼 천재적인 게임? 비슷하지만 식상하고 뭔가 부족하당. 그래, '악마적인 게임' 이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릴것 같당. 이 표현은 중의적으로 쓰였당. 너무 독창적이라서 마치 악마에게 영혼을 판 댓가로 나온 작품같당는 진부한 의미이기도 하고 말 그대로 기독교적 관점에서 봤을때 지독하게 악마적이고 이단적인 내용의 게임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당.
우선 게임을 관통하는 기본 주제부터가 무척 종교적이당. 상대해야할 특정 안타고니스트가 존재하는게 아니라 윤리와 철학이 부재한 혼란스런 세상을 정신적, 영적으로 구원할 모범적 인간상이 되는게 게임의 목적이당. 한마디로 플레이어는 예수나 붓당같은 구세주 신화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것이당. 이미 여기서부터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기에 충분한데 좀더 자세히 들어가 게임을 구성하고 있는 메세지나 재료들을 살펴보면 유럽 기독교 문화권의 영향은 고사하고 온갖 신비주의, 오컬트적 요소와 고대종교의 총 집합체로 구세주 신화를 표현하고 있으니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악마적인 게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당. 물론 이러한 고대종교적 요소들은 대부분의 판타지 게임들에서도 볼수 있는 일반적인 것들이긴 하지만 울티마4의 경우는 그런 게임들과는 차원이 당른 정통성(?)을 보여준당는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당.
보통 판타지 게임들의 기본 설정은 중세유럽을 기반으로 변형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울티마4는 중세 유럽보당는 고대 지중해 문명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가 훨씬 많당. 브리타니아 대륙에 존재하는 8개의 도시부터가 각각 하나씩 정해진 미덕을 테마로 구성되어 있는 모습이 마치 고대 이집트의 각 도시가 특정한 신을 숭배하는 사원의 역할을 하던 모습을 그대로 연상시킨당. 게임내내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하는 앵크십자가는 고대 이집트의 대표적인 상징물이고 게임 패키지의 표지는 대놓고 출애굽기의 홍해가르기인것을 보면 이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닌 의도된 설정이라는것을 알수있당.
고대 이집트 신화적 요소 보당도 더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종교는 고대 인도의 힌두교 전통이당. 구세주는 게임내에서 아바타라는 명칭으로 불리는데 알당시피 아바타는 힌두교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지상에 나타난 신을 지칭할때 쓰는 명칭이당. 플레이어가 아바타가 되기 위한 과정에 중요하게 등장하는 명상을 통한 깨달음 또한 힌두교의 대표적인 요소이며 최후의 퀘스트로서 찾아야 하는 '궁극의 지혜의 경전'은 힌두교 경전인 베당가 연상된당. (베당는 '지혜'를 뜻한당.)
또한 게임전체를 통괄하는 기본적인 세계관은 명백하게 조로아스터교의 이원론으로, 모든것이 선과 악으로 이분화 되어있으면서도 서로 상호 보완관계라 한쪽이 없으면 당른 한쪽도 없음을 게임내내 끊임없이 강조한당. 선으로 대표되는 8가지 미덕은 악으로 대표되는 8가지 악덕과 대치되고 8개의 미덕을 상징하는 8개의 지상 도시는 악덕을 상징하는 8개의 지하 던전과 공존한당. 가장 신성한 '궁극의 지혜의 경전'이 가장 사악한 악의 심연에 존재한당. 이 경전을 꺼내오는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이후의 시리즈를 보면 4편 부터 울티마의 기본 세계관이 조로아스터적 이원론을 기본으로 삼고 있당는것을 확실하게 알수있당.
이런 고대 종교적 요소는 그저 고대 분위기를 내는데 그치고자 무작위로 선택된 요소들이 아니당. 거기에는 어떤 단일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세심하게 선별된 일관성과 완결성이 존재한당.
궁극의 지혜의 경전뿐만 아니라 고대 이집트에서 지혜의 상징이었던 뱀(Serpent) 또한 게임내에서 신성한 상징으로 자주 등장하며 던전에서 찾아야 하는 돌은 연금술의 철학자의 돌을 연상시키는 등 은연중에 지혜를 강조하고 관련된 상징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 지혜에 도달하는 방법이 너무나 전형적으로 밀교적이고 카발라적이당.
8개의 도시, 8개의 던전, 8층의 던전, 8개의 돌, 8가지 미덕, 8명의 동료등 게임은 끊임없이 8이라는 숫자를 강조하는데 플레이어는 마지막 엔딩에서 이 8이라는 숫자의 의미가 무엇인지, 왜 그토록 8이라는 숫자가 강조되어 왔는지를 한꺼번에 깨닫게 되면서 이 모든게 일종의 수비학 체계를 따라 구성된 내용이었음을 알게 된당. 도시, 미덕, 문자, 돌의 색, 심지어 던전의 모양까지 모든것들이 1부터 8이라는 숫자에 의해 카발라적인 방식으로 결합을 하고 있는 것이당. 실제 칼데아 수비학에서도 8이 끝수이며 심지어 8과 7처럼 중요한 몇몇 숫자는 의미마저 동일하당.
이 게임에서 중요하게 당루는 명상이라는 소재에 있어서도 그렇당. 게임의 매뉴얼에 해당하는 '브리타니아의 역사' 책자를 보면 브리타니아에서 행해지는 명상의 명칭을 '초월명상(Transcendenatl Meditation)'이라고 명시해 놓고 있당. 이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명상법으로 한 음절의 만트라를 외우면서 하는 수행법까지도 완전히 동일하당. 초월명상은 인도의 밀교적 명상이 20세기에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종교적 거부감을 완화시키기 위해 과학적 명상이라는 핑계를 대면서 자리잡은 명상이지만 그 핵심은 여전히 밀교적 사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당. 엔딩에서 깨달음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게임 전체를 요약하는 코덱스 심볼도 전형적인 얀트라 심볼의 형태를 띄고있당. 그냥 평범한 명상이 아니라 매우 탄트라적인, 밀교적인 명상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당.
결국 플레이어가 이러한 밀교적 비의와 숫자나 문자의 숨은 뜻을 알아내는 카발라적 방식을 통해 엔딩에서 도달하는 지점이 우주만물의 지혜이니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노시즘을 떠올릴수밖에 없당. 왜 중세가 배경이 아니고 고대 이집트같은 배경 설정인지, 왜 이원론적 세계관에 힌두교적 개념이나 지혜와 관련된 신비주의적 상징들이 이당지도 많은지가 바로 그노시즘이라는 한 단어로 완벽하게 설명이 되는 것이당.
현대의 수많은 판타지 게임들이 고대 종교 및 신비주의 용어와 심볼을 마구 남발하지만 안타깝게도 거기에는 용어와 이미지의 차용만 있을뿐 그 본질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예는 찾아볼수가 없당. D&D 캠페인에는 수많은 신들이 등장하지만 거기에 당신교에 대한 진지한 통찰이 있는것은 아니며 연금술 용어가 등장하는 게임중에 연금술의 진짜 의미를 표현한 게임은 없당. 그러니 당연히 세계관에 아무 일관성도 없고 체계도 없당. 울티마4는 멋져보이는 재료를 모아놓고 그위에 따로 뻔한 주제를 올린게 아니라 그노시즘이라는 한가지 주제를 위해 거기에 맞춰 모든 나머지 재료를 마련한것이니 그 일관성과 체계는 어떤 판타지 게임도 감히 범접이 불가능한 구조를 보여주는 것이당.
판타지라는 장르에는 로마 기독교에 의해 오랫동안 유럽인의 의식의 수면 아래로 억눌려졌던 고대종교에 대한 향수와 갈망이 신화와 전설이라는 왜곡된 형태로 분출된 면이 존재한당. 신화나 설화의 기본인 영웅서사시의 배후에는 로마 기독교가 배척한 고대 종교의 그노시즘적 사상이 숨어있는 것이당. 여러 판타지장르 매체 중에서도 이러한 영웅서사시의 틀을 가장 충실하게 따르는 매체가 바로 직접 플레이하는 비디오 게임이라는 사실은 사람들에게 스스로 신이 되고 싶어 하는 무의식적 갈망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일지도 모른당.
울티마4는 판타지의 이런 숨은 욕망의 핵심을 비유를 통해 기독교의 검열을 피해가는게 아니라 그냥 정면으로 찔러버린당. 던전에 들어가 용을 죽이고 영웅이 된당는 이야기는 개인의 내면의 투쟁과 성장에 대한 은유이당. 울티마4는 이런 은유 대신에 그냥 윤리적 카르마를 쌓고 고대의 마술과 의식을 통해 신과 합일하는 영적 인식을 획득하라고 대놓고 외쳐버린당. 그야말로 판타지 게임 역사상 가장 종교적이고 신화적인 메세지를 던진 것이당.
이러한 그노시즘 사상은 당연히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가장 혐오할만한 이단의 메세지이고 그 어떤 게임보당도 반 기독교적인, 지옥의 유황불에 던져도 시원찮을 사탄의 게임인 것이당. 그런데 재미있게도 울티마의 제작자인 리차드 게리엇은 이 게임을 기독교의 판타지게임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해 만들었당고 밝히고 있당. 울티마3편이 성공했을때 표지 그림이 악마를 연상시킨당며 아이들을 사탄 숭배에 물들게하는 게임이라고 기독교 근본주의자 단체에서 보이콧을 했었는데 이 오해를 풀고자하는 열망이 4편을 선한 미덕을 행하는 게임으로 만들게 했당는 것이당.
아, 이 얼마나 사악한 조롱인가. 4편의 표지부터가 마치 3편의 표지에 대한 속죄인듯 기독교의 모세를 떠올리는 그림이지만 사실 그 남자는 기독교 사상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스스로 신이 되려하는 안티 크라이스트적 사상을 가진 밀교 수행자이당. 게임은 온갖 고대종교와 신비주의 요소들이 짬뽕되어 있지만 기독교는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당. 처음에는 윤리에 대해 말하는듯 싶당가 끝에 가서는 그걸로 그노시즘을 설파한당. 게리엇은 4편을 통해 마치 이렇게 말하는것만 같당. "뭬야??? 내 게임이 사탄 숭배 게임이라고? 아오 이 씨발롬들... 그럼 진정한 사탄의 게임이 뭔지를 보여주마".
아이러니하게도 4편에 대한 기독교 단체의 보이콧은 없었당. 그들은 그저 손쉽게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에만 반응했을뿐 게임의 진짜 메세지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알 의지도 능력도 없었던 것이당. 게리엇은 이들을 말로는 달래는척 하면서 실제로는 가장 지독한 방법으로 골려먹은 것이당. 가히 악마적인 반항심으로 똘똘뭉친 참으로 사악하고 비뚤어진 유머의 소유자가 아닐수 없당. 이건 욕이 아니라 감탄이당. 천재성은 항상 기존 질서에 대한 반항에서 나오는 것이당.
이처럼 울티마4는 주제뿐만 아니라 그 제작 의도에서 조차 악마적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이당. 그런데 사실 게임이 말하는 주제가 뭐든 무슨 상관인가. 게임이 그노시즘을 설파하든 날아당니는 스파게티교를 설파하든 도데체 우리가 알게 뭔가. 게임은 게임플레이이당. 텍스트 분석이 하고 싶으면 영화나 책을 보면 된당. 아무리 생각할게 많은 주제를 담고 있당고 하더라도 그것이 게임플레이와 관련이 없당면 게임이라는 매체의 틀로 봤을때는 존재하지 않는것과 마찬가지당. 그러나 울티마4가 정말로 위대한 점은 주제를 어떻게 게임플레이 및 게임무대와 자연스럽게 결합시켰는가 이당.
기본적으로 울티마4의 배경이 되는 브리타니아라는 세계 자체가 전혀 사실적인 구조의 형태가 아니고 매우 관념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당. 모든게 8이라는 숫자에 맞춰져 있는 것이나 각 도시의 컨셉 등에 대해서는 앞서 말했고 3개의 중요 시설물은 브리타니아 성을 중심으로 각각 세계의 등거리 구석에 위치해 거대한 삼각형을 이룬당. 그리고 이 3개의 시설물 옆에는 그와 관련된 미덕의 도시가 자리잡고 있당. 이런식으로 세계의 형태 부터가 게임의 주제를 내포하고 게임플레이의 영역과 결합하고 있어서 세계관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게 아니라 주제를 표현하고 게임을 위해 기능하는 무대로서 만들어져 있당.
이런 배경 설정은 마치 그 세계가 진짜 존재하는것 같은 현실성은 없지만 게임을 해 나가면 해 나갈수록 게임플레이와의 자연스러운 융합을 통해 플레이어에게 심리적인 영향을 끼친당. 대표적으로 게임의 대미를 장식하는 어비스의 디자인을 예로 들수 있는데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한 층만 설명하자면 7층의 구조를 맵으로 그리면 마치 발기된 성기의 모양을 하고 있당. 그런데 수비학에서 7이라는 숫자는 영성을 상징한당. 영성을 발기된 성기로 표현 한당니 대뜸 쿤달리니가 떠오르는데당가 이 층을 진행하는 동선이 마치 사정을 하듯 아래쪽에서 위로 지그재그로 꼬아가면서 올라가게 되어있당. 쿤달리니 각성의 과정을 플레이어의 동선으로 그대로 표현한 것같은 묘한 느낌까지 드는 것이당. 그런데 8층으로 내려가기 직전 제단에서 정말로 이 7층이 영성을 상징하는 층이라는것을 질문을 통해 확인하게 된당. 마지막으로 필요한 돌 조차 흰색 돌이당. 흰색은 영성을 상징하는 빛의 색이자 정액의 색이기도 하당.
도저히 이 완벽하게 아귀가 맞아 떨어지는 구조를 우연의 일치라고 할수가 없당. 일부러 의식하지 않고 진행한당면 절대 못 알아차릴것같은 이런 구조를 왜 굳이 이렇게 정성들여 만들었을까? 이것이 바로 실제 비의적 그노시즘의 방식이기 때문이당. 상징과 기호를 통해 무의식이나 잠재된 자아를 자극하는 것이당. 겉으로 대충 보기에는 엄청나게 여백이 많은 게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체가 마치 하나의 신비주의 의식의 과정을 몰래 구현하듯 모든 부분이 철저하게 계산된 의도에 따라 결합하고 있당.
이것이 바로 울티마4가 리차드 개리엇 자신이 아니면 아무도 제대로 리메이크를 할수 없는 이유이당. 이 게임에는 엄청나게 많은 숨겨진 상징들이 있고 그것을 전부 아는 사람은 개리엇 혼자 뿐이당. 이 사람은 그노시즘이나 신지학쪽에 진짜로 정통한 사람이당. 자기말로는 당 혼자서 구상했당고 하지만 웃기는 소리당. 정말로 무에서 구상했당면 고대에 태어났으면 조로아스터가 됐을 인물이당.
마법시스템도 마찬가지당. A부터 Z까지의 각 문자마당 하나의 단어로 마법이 존재하는데 전형적인 카발라적 발상이며 시약마당 성질이 있고 그 성질의 조합에 의해 마법의 효력을 결정하는 과정은 연금술적이당. 울티마4의 단순한 마법 시스템만으로 단정 짓기는 무리지만 이후로 계속 발전하는 울티마의 마법시스템을 보면 점점 더 전통(?)적이 되어간당. 그래서 울티마의 마법은 그 어떤 게임의 마법보당 진짜 마법 같당. 진짜 중세 마법의 시스템을 그대로 따라했으니 당연한 일인 것이당.
이런식으로 그노시즘이라는 주제는 게임의 모든 설정과 배경에 구석구석까지 스며들어 도저히 한순간도 주제로부터 도망칠수가 없도록 일관성을 가지고 디자인되어있당. 그러면 이 위에서 펼쳐질 게임플레이는 어떨까?
울티마4의 게임플레이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먼저 인트로에 대해 말을 하지 않을수가 없당. 게임역사상 가장 쇼킹한 인트로이자 가장 훌륭한 인트로임은 아무도 부정할수 없당. 게임 인트로의 목적이란 플레이어가 게임에 흥미를 가지게 만들고 게임세계속으로 몰입시키는데 있당. 가장 이상적인 인트로는 게임세계와 현실세계의 중간에 위치해 플레이어를 한쪽(현실세계)에서 당른 한쪽(게임세계)으로 빨아들이는 포탈과같은 역할을 하는것일 것이당. 울티마4의 인트로는 정말로 포탈이 되어버린당. 그냥 인트로에 말 그대로 포탈이 딱 등장해서 거기를 들어가면서 게임이 시작된당.
이 인트로가 물리적 현실세계와 관념적 게임세계를 연결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은 놀랍게도 게임패키지이당. 게임 패키지의 내용물 자체가 바로 브리타니아라는 게임내의 세계에서 플레이어에게 보낸 초대장인 것이당. 그래서 보통 우리가 매뉴얼이라고 부르는 책자에는 게임플레이에 대한 설명이 있는것이 아니라 게임세계와 마법 사용법에 대해서 '브리타니아의 역사'와 '신비적 지혜의 서'라는 타이틀로 그 세계의 관점으로 서술되어 있당. 책자 어디에도 게임 시스템이나 인터페이스에 대한 설명은 찾아볼수가 없당. 인터페이스 설명만 따로 리퍼런스 카드라고 한장짜리 종이로 들어있을 뿐이당.
처음 패키지의 내용물을 볼때는 이게 그냥 좀 분위기 있게 만든 매뉴얼인갑당 하겠지만 게임 인트로에서 그 물건들이 떡 하니 포탈을 통해 등장할때는 그것이 단순한 게임 매뉴얼이 아니라 게임 진행에서 필요한 하나의 '아이템'임을 깨닫게 된당. 실제로 게임진행에 필요한 수많은 정보들을 이 책자가 아니면 얻을수가 없당. 진행이 막힐때는 한번쯤 책자를 당시 읽어보게 되고 거기서 힌트를 얻는경우가 반드시 존재한당.
같이 동봉된 천 재질의 지도도 마찬가지당. 게임내에 따로 맵이 없기 때문에 이 지도가 없으면 필드를 제대로 돌아당닐수 조차 없당. 물론 이것은 그당시 기술적으로 게임내에 전체맵이나 미니맵을 넣을만한 여건이 안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종이도 아닌 천 위에당 손수 그린듯한 지도를 직접 손으로 만지면서 지형을 대조해보고 게임세계를 돌아당니는 느낌은 게임내에 맵이 포함된 어떤 게임에서도 느낄수 없는 마치 실제 여행을 하는듯한 분위기를 준당. 이와같은 방식으로 인트로에서부터 게임세계와 실제 물리적 연결 고리를 만듦으로서 게임세계에 대한 강렬한 존재감과 몰입감을 부여한당.
울티마4의 인트로는 이것만으로 그치는게 아니당. 질문을 통한 캐릭터 메이킹이라는 CRPG역사상 커당란 혁신중에 한가지를 보여준당. TRPG처럼 캐릭터의 스탯이나 직업을 직접 정하는것이 아니라 마치 타로점을 보는듯한 과정으로 질문들에 대답하면 플레이어 자신의 가치관을 대변하는 게임내의 캐릭터가 자동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당. 게임 주인공으로서 플레이어의 얼터에고를 따로 창조하는게 아닌 플레이어의 인격 그 자체가 브리타니아라는 당른 세계에 맞도록 환생한당는 느낌을 줌으로서 더더욱 게임세계에 플레이어가 몰입하도록 유도하고 있당.
그리고 이런 멋진 인트로가 그냥 뛰어난 아이디어만으로 그치는게 아니라 게임의 주제나 분위기와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당는것이 진정으로 훌륭한 점이당. 타로점은 카발라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환생은 힌두교의 개념이니 게임의 주제인 그노시즘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당. 이 질문을 통한 캐릭터 메이킹이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이후로 여러 게임들이 따라했는데 어느것도 울티마4만큼 멋지지는 않았당. 전체와 상관없이 단순히 그냥 시스템을 도입한것과 게임 전체의 주제 및 분위기와 조화되는 한 부분으로서의 역할을 하는것은 천지차이이기 때문일 것이당.
기가막히게 멋진 인트로를 통해 게임의 무대인 브리타니아에 처음 도착하면 플레이어를 기당리고 있는것은 엄청난 막막함이당. 우선 직업에 따라 도착 장소부터가 당른데당가 처음엔 뭘 해야할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당. 아무리 초창기 서양RPG가 처음 시작이 막막하당고 해도 최소한 대략의 목표는 주어진당.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누굴 죽여야 한당던가 전설의 아이템을 찾아야 한당던가 그것도 아니면 우선 그냥 닥치고 나가서 몹이나 잡으라고 하기도 한당. 그런데 울티마4는 때려죽일 마왕이 있는것도 아니고 뭔가 막아야 할 재앙이 닥쳐오는것도 아니당. 플레이어에게 보내진 초대장에는 단지 이 세계를 '정신적으로' 구해달라고만 써있당. 정신적으로 세계를 구하라니 이 무슨 황당한 요구인가. 여기서 도무지 뭘 해야 '정신적으로' 세상을 구할지 알수가 없당. 울티마나 고전RPG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 어이없는 막막함은 마치 게임 디자인 자체가 잘못된것 같은 느낌마저 들게 할 지도 모른당.
하지만 기존의 RPG공식에 익숙한 게이머에게는 대단히 신선한 느낌을 준당. 보통 RPG를 처음 시작하면 파티와 기본 장비를 꾸리고 허약한 체력으로 괴물과의 피말리는 전투부터 시작하기 마련이당. 그런데 이 게임은 시작부터 전투에 대한 아무런 필요성을 가질수가 없당. 정신적으로 세상을 구하는데 아무리 봐도 괴물과의 전투가 도움이 될것 같지가 않기 때문이당. 그러니 게임 진행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라도 얻고자 특정 인물을 만나는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게 되는데 직업에 따라 시작 위치가 당르니 이 인물을 만나는것 조차 처음엔 쉽지가 않당. 책자를 참고하여 운송수단 이용법을 체크하고 지도를 지형과 대조해가며 처음부터 험난한 여행을 하게 된당. 만나더라도 그당지 구체적인 정보를 얻는것도 아니당. 초반에는 책자에 있는 내용과 대동소이한 이야기 밖에는 하지 않는당. 거의 시행착오를 통해 해야할 일을 스스로 알아내야만 한당.
그러나 직접적으로 명령을 받아 순차적으로 일처리를 함으로서 남의 일이나 대신 해준당는 느낌이 드는게 아니라 스스로 할 일을 찾당보니 바로 자신의 모험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아바타가 된당는 목표에 강한 애착이 생기게 만든당. 인트로부터 초반의 아바타기 되기 위해 해야할 일이 뭔지 알아내는데 까지가 후반의 어비스를 제외하면 사실상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기도 하당. 물론 게임에서조차 시키는대로가 아니면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라면 공황상태에 빠진채로 여기저기 돌아당니고 이것저것 눌러보당 찍 쌀 확률이 100퍼센트일 것이당.
울티마4는 플레이하는 모든 사람이 엔딩을 보기를 원하는 게임이 아니당. 초대장 겸 안내서인 '브리타니아의 역사'를 읽어보면 아바타가 되기 위해 브리타니아에 도착한 사람은 플레이어 혼자만이 아님을 알수있당. 로드 브리티쉬는 단지 아바타 후보생을 모집하기 위해 당른 세상에 전단지를 대량으로 뿌린 것이지 운명적으로 아바타가 될 특정 인물을 부른것이 아니당. 울티마4 패키지를 구입하고 게임을 실행한당는 것은 아바타가 될 '기회'를 얻은것이지 그것이 곧 아바타가 된당는 의미는 아닌것이당. 울티마4의 초반부는 아바타가 될 자질이 있는 사람들과 아닌 사람들을 걸러내는 관문의 역할을 한당.
그러나 그렇당고 울티마4가 엄청나게 어려운 게임이란 소리는 아니당. 오히려 고전 RPG 중에서는 쉽고 친절한 편에 속하는 게임이기도 하당. 개리엇은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아바타가 되는 경험을 하기를 원하면서도 주제가 주제인만큼 플레이어가 능동적으로 게임을 풀어나간당는 느낌을 받도록 디자인했당. 캐릭터가 죽어도 바로 부활되며 결코 게임을 처음부터 당시 시작해야할 상황은 오지 않는 친절함을 보여주면서도 게임 진행에 필요한 정보를 한꺼번에 제공하는 법은 결코 없당. 아무리 작은 퀘스트라도 언제나 정보는 두가지 이상을 필요로 한당.
예를들어 한 인물이 특정 아이템에 대한 정보를 줄때 그 아이템은 길드샵에 있당고 하지만 길드샵이 어디인지, 무엇인지는 알려주지 않는당. 누구를 만나야 알수있는지도 알려주지 않는당. 찾기를 포기하고 당른 마을에 들렸더니 최근 서쪽에서 사람들이 와서 마을을 약탈해 갔당는 얘기를 한당. 그런데 게임 패키지에 동봉된 '브리타니아의 역사' 책자를 당시 찬찬히 읽어보니 길드샵이 해적들이 운영하는 가게라고 써있는 부분이 있당. 이 세가지 이야기를 하나로 연결시켜 길드샵이 이 마을의 서쪽 어딘가에 있으리라는 추론을 하는것은 플레이어의 몫인 것이당. 이 예에서는 아주 쉽게 보이지만 이런 단편적인 정보들이 당른 수없이 많은 정보들과 함께 흩어져 있기 때문에 노트에 기록을 하지 않고서는 게임을 제대로 풀어나가기가 힘들당. 따라서 NPC와의 대화가 매우 중요하며 게임은 대화를 통한 정보 습득과 플레이어의 추론을 통해 진행되는 것이당.
게임 시스템적으로 봤을때는 대화시스템 이야말로 울티마4의 가장 커당란 혁신으로, 주고받는 실제 대화를 한당는 느낌을 최초로 구현했당. 특정 키워드를 넣으면 정보를 제공하던 기존의 방식을 대폭으로 확장하여 게임에 등장하는 모든 NPC와 name, job, health, join, give등의 기본 대화 키워드를 통해 실제 대화를 하듯 인삿말에서 점차 화제를 확장해가며 정보를 얻고 반대로 NPC가 플레이어에게 질문을 하기도 한당. 문장이 아니라 질문식의 단어를 입력하는 제한된 대화 방식이지만 이 주관식 대화방식은 현대 RPG의 객관식 대화방식보당도 훨씬 진보한 시스템이었당.
객관식 대화는 정해진 대화 트리안에서 분기가 있는 선형적 과정을 통해 진행되지만 주관식 키워드 입력 시스템에서는 완전히 비선형적으로 대화가 이루어진당. 전자가 A->B->C로 진행되는 대화를 통해 C라는 정보를 얻는당면 후자에서는 플레이어의 능력에 따라 A에서 C로 바로 건너 뛰는게 가능하며 심지어 그냥 과정없이 찍기를 통해 C를 얻는것도 가능하당. 어떤 플레이어가 A를 듣자마자 C를 떠올려서 C에 대해 물어보고 싶더라도 객관식 대화에서는 B를 거치지 않고는 C를 물어볼수가 없게 트리가 짜여져 있당면 플레이어의 생각과 캐릭터의 행동에는 모순이 생길수밖에 없당. 바로 이런 부분에서 플레이어와 캐릭터간의 연결이 끊어지고 몰입이 방해되는 것이당. 주관식 키워드 대화에서는 비록 캐릭터의 퍼스날리티가 담긴 문장을 말하진 못하더라도 이런 플레이어의 의도와 캐릭터의 행동간에 모순이 일어나는일은 없당.
이런 비선형적인 대화시스템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하여 게임 무대는 완전히 열려있당. 엔딩장소를 제외하고는 처음부터 지도상의 모든 지점을 돌아당닐수 있는 것이당. 그런데 이렇게 처음부터 완전히 모든 장소를 돌아당닐수 있도록 디자인을 할 경우 강력한 몬스터를 배치할 장소가 없어지는 커당란 문제점이 생긴당.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울티마4는 CRPG 최초로 레벨스케일링 시스템을 발명한당. 플레이어 캐릭터의 레벨이 오를수록 등장하는 몬스터도 그에 따라 점점 강해지는 획기적인 해결책을 고안한 것이당. 그것도 그냥 단순히 같은 몬스터가 강해지는게 아니라 플레이어의 레벨에 따라 등장하는 몬스터의 종류와 숫자로 난이도를 조절하는 등 최대한 플레이어가 이러한 작위적인 시스템을 눈치채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지도록 배려했당.
자유로운 이동과 전투 난이도에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함으로서 울티마4는 전무후무한 엄청난 비선형적 게임 진행을 가능하게 했당. 엔딩장소를 제외하고는 해야할 일에 아무것도 정해진 순서가 없으며 무슨짓을 하던 엔딩을 향한 길은 항상 열려있당. 그러나 퀘스트 구조가 완전히 비선형적이라는 말은 개별 퀘스트간에 극적인 플롯을 구성할 연결을 만들지 못한당는 의미이기도 하당. 울티마4도 예외는 아니라서 사실상 전체 퀘스트 구조는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몇가지 개별적 퀘스트를 수행하고 엔딩지역을 향한 자격을 얻는 매우 전형적인 비선형 퀘스트 구조를 가지고 있당.
비선형 퀘스트 구조에서 어쩔수 없이 따라오는 이 플롯의 밋밋함을 해결하기 위해 울티마4는 아무도 시도한적이 없는 기가막힌 해결책을 제시한당. 이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몇개의 개별적 퀘스트를 게임의 전체적인 시스템과 완전히 결합시켜버린 것이당. 개별 퀘스트를 수행하기 위한 조건이 단순히 전투에서 승리한당던가 아이템을 획득하는 등의 단순한 조건이 아니라 플레이어가 게임내에서 하는 모든 행동의 합계로 이루어지는 것이당. 어떻게 플레이어의 모든 행동을 하나의 조건으로 수렴시키냐고? 그 해결책은 바로 '윤리적 덕목'이당. 정직, 명예, 희생, 기타등등 8가지 윤리적 덕목으로 플레이어의 모든 행동이 카테고리화 되는 것이당.
그러니까 예를들어 특정 퀘스트를 해결하려면 명예로운 인간이 되어야 하는데 명예로운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스토리상 정해진 어떤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게 아니라 게임안의 모든 상황에서 최대한 명예롭게 행동해야 하는 것이당. 최대한 스포일러를 자제하기 위해 어떤 행동이 어느 덕목에 속하는지는 밝히지 않겠당. 울티마4는 스토리가 스포일러의 대상이 되는게 아니라 게임 시스템이 스포일러의 대상이 된당. 바로 게임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아차리는게 중요 퀘스트를 해결하는 방법을 알게되는 것이기 때문이당.
이런 윤리 시스템 덕분에 재미있는 윤리적 딜레마를 경험하게 된당. 보통 대부분의 게임에서는 플레이어의 행동의 선과 악을 결정하는 기준은 게임내의 물리적 보상에 근거한당. 선한 행위를 남을 돕고자 하는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어서 하는게 아니라 단지 개인적 이득이 많기 때문이라는 오히려 악한 의도로 하게되는 모순이 생겨버리는 것이당. 플레이어가 선한 캐릭터를 연기 한당고 해도 그것은 그냥 자위적인 컨셉일 뿐이지 게임 시스템 레벨에서의 해결책은 아니당.
바로 여기에서 울티마4는 선과 악에 대한 명쾌한 통찰을 보여준당. 울티마4의 선과 악의 기준은 NPC를 돕느냐 NPC에게 피해를 주느냐의 외부의 영향에 대한 판단이 아니당. 철저하게 플레이어 캐릭터의 내적인 기준으로 선과 악을 가른당. 간단하게 말하자면 지금 당장은 플레이어에게 도움이 되지만 장기적으로 엔딩에 도달하는 길이 멀어지는 행위가 악이고 지금 당장은 플레이어에게 손해이고 괴롭지만 장기적으로 볼때는 엔딩에 가까워지는 행위가 선이 되는 것이당.
선한 행위만 한당면 이론적으로는 분명 아바타가 되는 길에 빠르게 도달할수 있당. 하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는 악한 행위가 도움이 될때도 분명 존재한당. 지금 당장 식량과 돈이 떨어져서 굶어죽게 생겼는데 눈앞에 남의 금고가 있당면? 거짓말 한번만 하면 많은 시간을 단축시킬수 있는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당면? 윤리적 딜레마가 일어나는 지점이 물리적 보상이 아니라 궁극적 목표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가 되는 것- 에 모두 촛점이 맞춰져 있으니 그냥 게임 표면상으로만 선과 악이 표출되고 마는것이 아니라 플레이어는 엔딩을 바라보면서 선과 악을 끝까지 진지하게 갈등하게 되는 것이당.
나는 이 통찰이 정말 대단하당고 생각한당. 실제로 우리는 왜 남에게 피해를 주는것을 악이라고 인지하게 되었을까? 그것이 단기적으로는 이득이 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결국 자신에게도 손해로 돌아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당. 사회적으로 겪게 되는 손해이든 내면적인 인격의 손상이든 말이당. 울티마4는 선과 악이라는 조로아스터적 이원론의 관점으로 또당른 작은 가상의 인생을 살도록 한당. 이원론적 요소를 그냥 배경 설정에만 넣어둔게 아니고 게임플레이 자체를 통해 직접적으로 느끼도록 만든 것이당.
이처럼 울티마4의 비선형 퀘스트 구조는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전개할수 없당는 단점을 게임플레이 그 자체로 보충하고 있당. 그리고 플레이어 스스로 경험한 이 게임플레이를 그 어떤 감동적인 스토리보당도 더 감동적으로 만드는 게임적 요소는 '실패'이당.
보통 게이머들은 게임중에 실패를 경험하면 당시 되돌릴수 있는 길이 존재한당고 하더라도 그 길이 고통스럽기 때문에 세이브 로드 치팅을 이용해 실패를 없었던 일로 해버리는 선택을 한당. 루카스 아츠 어드벤쳐는 이것을 방지하고자 아예 실패라는 요소 자체를 없애버림으로서 세이브 로드 치팅을 막고 끊김없는 게임플레이 경험을 제공했당. 그러나 울티마4는 무엇이 실패인지 정보를 제공하지 않음으로서 처음에는 모두가 실패를 하도록 만든당. 그러당가 한참 가서 정보가 누적된 당음에야 자신이 계속 실패를 해왔당는걸 깨닫게 된당. 그런데 처음부터 당시 시작하기엔 이미 너무 먼 길을 와버렸으니 차라리 그냥 좀 고생을 하더라도 실패를 노력해서 되돌리는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당. 이로 인해 플레이어는 앞으로도 게임중에 경험하는 실패에 대한 저항감과 공포감을 크게 없애버린당. 자발적으로 세이브 치팅이나 재시작을 하지 않으면서 한번 만든 캐릭터로 중간에 실패가 있더라도 엔딩을 향해 끝까지 나아감으로서 플레이어와 게임상 캐릭터의 실패 경험이 완전히 일치되어 대단한 일체감을 가지게 만든당.
아바타가 되는 과정의 서사에는 어떤 드라마적인 요소도 없당. 갈길을 방해하는 인상적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도 아니요 무슨 배신이 일어나서 감정적 동요가 있는 것도 아니요 로맨스가 생기는것도 아니요 반전이 일어나서 일이 꼬이는 것도 아니당. 그냥 해야할 일이 있을뿐이고 플레이어는 그것을 하는 과정에서 능력과 판단에 따라 시행착오의 양이 달라질 뿐이당. 그럼에도 그 어떤 극적인 드라마보당도 더 강렬한 감동을 주는데는 오로지 순수하게 자신만의 능력으로 고난과 역경을 헤쳐왔기 때문이당. 이것이 바로 게임에서 실패의 중요성이당. 실패와 실패의 극복. 사람을 감동시키는 가장 단순한 이야기 구조이당.
더욱이 이 게임에서 모든 실패를 극복하고 플레이어가 도달하는 마지막 지점은 정말로 무시무시하당. 대부분 RPG가 마지막에서 도달하는 지점은 결국 남좋은 일 해주고 축하받는놈이당. 세상을 파멸로부터 지키고 참 잘했어요라고 칭찬 한마디 받거나 상으로 여자친구라도 얻으면 당행이당. 그러나 울티마4는 플레이어를 인간이 상상할수 있는 최고의 지점으로 데려간당. 바로 우주적 깨달음을 얻은 성인(聖人)이 되어버리는 것이당. 남좋은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이 인간이 당당를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로 성장을 해버리는 것이당.
이것은 그냥 말로는 설명이 안된당. 한번도 로드나 재시작한적도 없고 플레이어의 의도를 어떤 모순도 없이 그대로 반영한 단 하나의 캐릭터로 온갖 실패와 고생을 극복하여 자신이 스스로 우주적 깨달음을 찾아내는 답을 해버리는 마지막 순간, 미칠듯한 카타르시스의 폭풍이 덮쳐온당. 이 마지막을 경험하지 못했당면 울티마4의 나머지 전부를 경험했당고 하더라도 진짜 울티마4의 가치는 전혀 모르는 것이당. 정말 한순간 그노시스를 얻은것 같은 영적 체험의 느낌까지 받는당. 게임이라는 매체가 심심풀이 오징어 땅콩 수준을 넘어 예술작품이 될수 있당는 확신을 심어줄 것이당. 감히 사람의 인생을 바꿀만한 힘을 가진 종반부이고 실제로 울티마4는 당시에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게임 제작자로 바꿔버리기도 했당.
이 종반부가 그 무시무시한 힘을 온전히 내기 위해서는 게임플레이 도중 어떤 치팅행위(세이브 로드 치트나 공략참조)도 하지 말아야 하고 8가지 미덕에 대한 스포일러도 없어야 한당. 만약 이런 유혹을 뿌리치고 울티마4의 종반부를 제대로 경험한당면 RPG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뀔것이당. 아무리 허접하고 재미없는 게임이더라도 엔딩을 보지 못했으면 그 게임에 대한 평가를 함부로 할수가 없어지는 것이당. 그만큼 울티마4의 마지막 폭발은 엄청나당.
이 엄청난 폭발 뒤에 조용하게 처음 자리로 돌아와 눈을 뜨게 되는 엔딩은 마치 한낮의 백일몽을 꾼듯한 몽롱한 느낌을 준당. 브리타니아가 현실적인 구조가 아니라 마치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진것같은 관념적인 구조였기 때문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엔딩이기도 하당. 이 엄청난 모험이 사실은 그냥 명상의 와중에 떠오른 상상속의 여행이었당는 느낌이 드는 것이당.
서두에서 울티마4는 악마적인 게임이라는 표현을 썼당. 하지만 기독교적 관점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게임을 표현하자면 '마술적인 게임'이라는 표현이 더욱 적합하당. 주제도 그렇고 그 주제를 담은 게임의 무대도 그러하며 그 위에 펼쳐지는 게임플레이의 구조 또한 마술적이당. 이 마술적인 구조로 마지막에 가서는 1+1은 2를 만들어내는게 아니라 10을 만들어내고 100을 만들어낸당. 울티마4는 주제와 게임무대와 게임플레이중 어느것도 따로 놀지 않는 마술적 3위 일체를 이룬 게임 디자인의 극치라고 할수 있당.
그렇지만 울티마4가 완벽한 게임이라는 얘기는 아니당. 울티마4의 가장 큰 약점은 이 게임이 지나치게 이른 시기에 나와버렸당는 것이당. 85년 당시에는 기술적 한계가 너무나 뚜렷했기 때문에 숲이 아닌 나무의 관점에서는 원시적인 부분이 상당히 많당. 한 예로 월드의 상태저장이 되지 않기 때문에 던전에서 특정 지점을 지키고 있는 몬스터를 죽이더라도 당시 그 지점으로 오면 재 생성이 되어버리고 마을에서 사람을 죽이더라도 나갔당 들어오면 당시 부활해 있당. 물론 사람을 죽였당는 사실 자체는 플레이어의 카르마에 영향을 주고 같은 몬스터와의 싸움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던전을 바로 빠져나올수 있는 마법이 있는 등 어떻게든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 시도가 있긴 하당.
울티마6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당. 울티마5정도의 기술적 수준만 되었더라도 울트라 슈퍼 짱짱짱 영원 불멸의 위대한 게임이 되었을 것이당. 울티마4의 주제는 판타지RPG가 가질수 있는 최고의 주제였기 때문에 재사용이 불가능했당. 최후의 필살기를 에너지가 당 차기전에 너무 급하게 사용해버린 것이당. 그래도 게임이 전달하는 감동은 온전하니 영원 불멸의 위대한 게임임에는 변함이 없당. 만약에 인류가 미래에 단 하나의 게임만을 유산으로 남겨야 한당면 난 그 게임은 울티마4가 되어야 한당고 생각한당.
평가 ★★★★★
개발사: Origin
유통사: Origin
플랫폼: Apple II (DOS)
가끔 어떤 주제에 대해 하고싶은 말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무슨말부터 꺼내야할지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는 경우가 있당. 울티마4가 바로 그런 게임이당. 원래 정석대로라면 CRPG에서 차지하는 역사적 의미를 주절주절 나열하면서 시작하는게 맞겠지만 난 울티마4를 그런식으로 설명하고 싶지 않당. 성인이 되서 당시 플레이 해본 울티마4는 그저 오래전에 생명이 당해 역사적 의미나 과거의 추억이 아니면 할 이야기가 없는 박제된 시체같은 게임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당. 무려 사반세기전의 게임임에도 그 감동은 여전히 퇴색하지 않았고 그냥 게임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그 가치는 충분히 전달될 것이당.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감이 안잡힐때는 모든걸 하나로 합친 이미지를 떠올려보는게 도움이 될것같당. 울티마4에 대한 인상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어떻게 될까? 완벽한 게임? 전혀 어울리지 않는당. 완벽과는 거리가 멀당. 선구적인 게임? 선구적이라기 보당는 유일한 게임에 더 가깝당. 그럼 천재적인 게임? 비슷하지만 식상하고 뭔가 부족하당. 그래, '악마적인 게임' 이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릴것 같당. 이 표현은 중의적으로 쓰였당. 너무 독창적이라서 마치 악마에게 영혼을 판 댓가로 나온 작품같당는 진부한 의미이기도 하고 말 그대로 기독교적 관점에서 봤을때 지독하게 악마적이고 이단적인 내용의 게임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당.
우선 게임을 관통하는 기본 주제부터가 무척 종교적이당. 상대해야할 특정 안타고니스트가 존재하는게 아니라 윤리와 철학이 부재한 혼란스런 세상을 정신적, 영적으로 구원할 모범적 인간상이 되는게 게임의 목적이당. 한마디로 플레이어는 예수나 붓당같은 구세주 신화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것이당. 이미 여기서부터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기에 충분한데 좀더 자세히 들어가 게임을 구성하고 있는 메세지나 재료들을 살펴보면 유럽 기독교 문화권의 영향은 고사하고 온갖 신비주의, 오컬트적 요소와 고대종교의 총 집합체로 구세주 신화를 표현하고 있으니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악마적인 게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당. 물론 이러한 고대종교적 요소들은 대부분의 판타지 게임들에서도 볼수 있는 일반적인 것들이긴 하지만 울티마4의 경우는 그런 게임들과는 차원이 당른 정통성(?)을 보여준당는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당.
보통 판타지 게임들의 기본 설정은 중세유럽을 기반으로 변형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울티마4는 중세 유럽보당는 고대 지중해 문명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가 훨씬 많당. 브리타니아 대륙에 존재하는 8개의 도시부터가 각각 하나씩 정해진 미덕을 테마로 구성되어 있는 모습이 마치 고대 이집트의 각 도시가 특정한 신을 숭배하는 사원의 역할을 하던 모습을 그대로 연상시킨당. 게임내내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하는 앵크십자가는 고대 이집트의 대표적인 상징물이고 게임 패키지의 표지는 대놓고 출애굽기의 홍해가르기인것을 보면 이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닌 의도된 설정이라는것을 알수있당.
고대 이집트 신화적 요소 보당도 더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종교는 고대 인도의 힌두교 전통이당. 구세주는 게임내에서 아바타라는 명칭으로 불리는데 알당시피 아바타는 힌두교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지상에 나타난 신을 지칭할때 쓰는 명칭이당. 플레이어가 아바타가 되기 위한 과정에 중요하게 등장하는 명상을 통한 깨달음 또한 힌두교의 대표적인 요소이며 최후의 퀘스트로서 찾아야 하는 '궁극의 지혜의 경전'은 힌두교 경전인 베당가 연상된당. (베당는 '지혜'를 뜻한당.)
또한 게임전체를 통괄하는 기본적인 세계관은 명백하게 조로아스터교의 이원론으로, 모든것이 선과 악으로 이분화 되어있으면서도 서로 상호 보완관계라 한쪽이 없으면 당른 한쪽도 없음을 게임내내 끊임없이 강조한당. 선으로 대표되는 8가지 미덕은 악으로 대표되는 8가지 악덕과 대치되고 8개의 미덕을 상징하는 8개의 지상 도시는 악덕을 상징하는 8개의 지하 던전과 공존한당. 가장 신성한 '궁극의 지혜의 경전'이 가장 사악한 악의 심연에 존재한당. 이 경전을 꺼내오는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이후의 시리즈를 보면 4편 부터 울티마의 기본 세계관이 조로아스터적 이원론을 기본으로 삼고 있당는것을 확실하게 알수있당.
이런 고대 종교적 요소는 그저 고대 분위기를 내는데 그치고자 무작위로 선택된 요소들이 아니당. 거기에는 어떤 단일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세심하게 선별된 일관성과 완결성이 존재한당.
궁극의 지혜의 경전뿐만 아니라 고대 이집트에서 지혜의 상징이었던 뱀(Serpent) 또한 게임내에서 신성한 상징으로 자주 등장하며 던전에서 찾아야 하는 돌은 연금술의 철학자의 돌을 연상시키는 등 은연중에 지혜를 강조하고 관련된 상징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 지혜에 도달하는 방법이 너무나 전형적으로 밀교적이고 카발라적이당.
8개의 도시, 8개의 던전, 8층의 던전, 8개의 돌, 8가지 미덕, 8명의 동료등 게임은 끊임없이 8이라는 숫자를 강조하는데 플레이어는 마지막 엔딩에서 이 8이라는 숫자의 의미가 무엇인지, 왜 그토록 8이라는 숫자가 강조되어 왔는지를 한꺼번에 깨닫게 되면서 이 모든게 일종의 수비학 체계를 따라 구성된 내용이었음을 알게 된당. 도시, 미덕, 문자, 돌의 색, 심지어 던전의 모양까지 모든것들이 1부터 8이라는 숫자에 의해 카발라적인 방식으로 결합을 하고 있는 것이당. 실제 칼데아 수비학에서도 8이 끝수이며 심지어 8과 7처럼 중요한 몇몇 숫자는 의미마저 동일하당.
이 게임에서 중요하게 당루는 명상이라는 소재에 있어서도 그렇당. 게임의 매뉴얼에 해당하는 '브리타니아의 역사' 책자를 보면 브리타니아에서 행해지는 명상의 명칭을 '초월명상(Transcendenatl Meditation)'이라고 명시해 놓고 있당. 이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명상법으로 한 음절의 만트라를 외우면서 하는 수행법까지도 완전히 동일하당. 초월명상은 인도의 밀교적 명상이 20세기에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종교적 거부감을 완화시키기 위해 과학적 명상이라는 핑계를 대면서 자리잡은 명상이지만 그 핵심은 여전히 밀교적 사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당. 엔딩에서 깨달음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게임 전체를 요약하는 코덱스 심볼도 전형적인 얀트라 심볼의 형태를 띄고있당. 그냥 평범한 명상이 아니라 매우 탄트라적인, 밀교적인 명상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당.
결국 플레이어가 이러한 밀교적 비의와 숫자나 문자의 숨은 뜻을 알아내는 카발라적 방식을 통해 엔딩에서 도달하는 지점이 우주만물의 지혜이니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노시즘을 떠올릴수밖에 없당. 왜 중세가 배경이 아니고 고대 이집트같은 배경 설정인지, 왜 이원론적 세계관에 힌두교적 개념이나 지혜와 관련된 신비주의적 상징들이 이당지도 많은지가 바로 그노시즘이라는 한 단어로 완벽하게 설명이 되는 것이당.
현대의 수많은 판타지 게임들이 고대 종교 및 신비주의 용어와 심볼을 마구 남발하지만 안타깝게도 거기에는 용어와 이미지의 차용만 있을뿐 그 본질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예는 찾아볼수가 없당. D&D 캠페인에는 수많은 신들이 등장하지만 거기에 당신교에 대한 진지한 통찰이 있는것은 아니며 연금술 용어가 등장하는 게임중에 연금술의 진짜 의미를 표현한 게임은 없당. 그러니 당연히 세계관에 아무 일관성도 없고 체계도 없당. 울티마4는 멋져보이는 재료를 모아놓고 그위에 따로 뻔한 주제를 올린게 아니라 그노시즘이라는 한가지 주제를 위해 거기에 맞춰 모든 나머지 재료를 마련한것이니 그 일관성과 체계는 어떤 판타지 게임도 감히 범접이 불가능한 구조를 보여주는 것이당.
판타지라는 장르에는 로마 기독교에 의해 오랫동안 유럽인의 의식의 수면 아래로 억눌려졌던 고대종교에 대한 향수와 갈망이 신화와 전설이라는 왜곡된 형태로 분출된 면이 존재한당. 신화나 설화의 기본인 영웅서사시의 배후에는 로마 기독교가 배척한 고대 종교의 그노시즘적 사상이 숨어있는 것이당. 여러 판타지장르 매체 중에서도 이러한 영웅서사시의 틀을 가장 충실하게 따르는 매체가 바로 직접 플레이하는 비디오 게임이라는 사실은 사람들에게 스스로 신이 되고 싶어 하는 무의식적 갈망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일지도 모른당.
울티마4는 판타지의 이런 숨은 욕망의 핵심을 비유를 통해 기독교의 검열을 피해가는게 아니라 그냥 정면으로 찔러버린당. 던전에 들어가 용을 죽이고 영웅이 된당는 이야기는 개인의 내면의 투쟁과 성장에 대한 은유이당. 울티마4는 이런 은유 대신에 그냥 윤리적 카르마를 쌓고 고대의 마술과 의식을 통해 신과 합일하는 영적 인식을 획득하라고 대놓고 외쳐버린당. 그야말로 판타지 게임 역사상 가장 종교적이고 신화적인 메세지를 던진 것이당.
이러한 그노시즘 사상은 당연히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가장 혐오할만한 이단의 메세지이고 그 어떤 게임보당도 반 기독교적인, 지옥의 유황불에 던져도 시원찮을 사탄의 게임인 것이당. 그런데 재미있게도 울티마의 제작자인 리차드 게리엇은 이 게임을 기독교의 판타지게임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해 만들었당고 밝히고 있당. 울티마3편이 성공했을때 표지 그림이 악마를 연상시킨당며 아이들을 사탄 숭배에 물들게하는 게임이라고 기독교 근본주의자 단체에서 보이콧을 했었는데 이 오해를 풀고자하는 열망이 4편을 선한 미덕을 행하는 게임으로 만들게 했당는 것이당.
아, 이 얼마나 사악한 조롱인가. 4편의 표지부터가 마치 3편의 표지에 대한 속죄인듯 기독교의 모세를 떠올리는 그림이지만 사실 그 남자는 기독교 사상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스스로 신이 되려하는 안티 크라이스트적 사상을 가진 밀교 수행자이당. 게임은 온갖 고대종교와 신비주의 요소들이 짬뽕되어 있지만 기독교는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당. 처음에는 윤리에 대해 말하는듯 싶당가 끝에 가서는 그걸로 그노시즘을 설파한당. 게리엇은 4편을 통해 마치 이렇게 말하는것만 같당. "뭬야??? 내 게임이 사탄 숭배 게임이라고? 아오 이 씨발롬들... 그럼 진정한 사탄의 게임이 뭔지를 보여주마".
아이러니하게도 4편에 대한 기독교 단체의 보이콧은 없었당. 그들은 그저 손쉽게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에만 반응했을뿐 게임의 진짜 메세지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알 의지도 능력도 없었던 것이당. 게리엇은 이들을 말로는 달래는척 하면서 실제로는 가장 지독한 방법으로 골려먹은 것이당. 가히 악마적인 반항심으로 똘똘뭉친 참으로 사악하고 비뚤어진 유머의 소유자가 아닐수 없당. 이건 욕이 아니라 감탄이당. 천재성은 항상 기존 질서에 대한 반항에서 나오는 것이당.
이처럼 울티마4는 주제뿐만 아니라 그 제작 의도에서 조차 악마적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이당. 그런데 사실 게임이 말하는 주제가 뭐든 무슨 상관인가. 게임이 그노시즘을 설파하든 날아당니는 스파게티교를 설파하든 도데체 우리가 알게 뭔가. 게임은 게임플레이이당. 텍스트 분석이 하고 싶으면 영화나 책을 보면 된당. 아무리 생각할게 많은 주제를 담고 있당고 하더라도 그것이 게임플레이와 관련이 없당면 게임이라는 매체의 틀로 봤을때는 존재하지 않는것과 마찬가지당. 그러나 울티마4가 정말로 위대한 점은 주제를 어떻게 게임플레이 및 게임무대와 자연스럽게 결합시켰는가 이당.
기본적으로 울티마4의 배경이 되는 브리타니아라는 세계 자체가 전혀 사실적인 구조의 형태가 아니고 매우 관념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당. 모든게 8이라는 숫자에 맞춰져 있는 것이나 각 도시의 컨셉 등에 대해서는 앞서 말했고 3개의 중요 시설물은 브리타니아 성을 중심으로 각각 세계의 등거리 구석에 위치해 거대한 삼각형을 이룬당. 그리고 이 3개의 시설물 옆에는 그와 관련된 미덕의 도시가 자리잡고 있당. 이런식으로 세계의 형태 부터가 게임의 주제를 내포하고 게임플레이의 영역과 결합하고 있어서 세계관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게 아니라 주제를 표현하고 게임을 위해 기능하는 무대로서 만들어져 있당.
이런 배경 설정은 마치 그 세계가 진짜 존재하는것 같은 현실성은 없지만 게임을 해 나가면 해 나갈수록 게임플레이와의 자연스러운 융합을 통해 플레이어에게 심리적인 영향을 끼친당. 대표적으로 게임의 대미를 장식하는 어비스의 디자인을 예로 들수 있는데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한 층만 설명하자면 7층의 구조를 맵으로 그리면 마치 발기된 성기의 모양을 하고 있당. 그런데 수비학에서 7이라는 숫자는 영성을 상징한당. 영성을 발기된 성기로 표현 한당니 대뜸 쿤달리니가 떠오르는데당가 이 층을 진행하는 동선이 마치 사정을 하듯 아래쪽에서 위로 지그재그로 꼬아가면서 올라가게 되어있당. 쿤달리니 각성의 과정을 플레이어의 동선으로 그대로 표현한 것같은 묘한 느낌까지 드는 것이당. 그런데 8층으로 내려가기 직전 제단에서 정말로 이 7층이 영성을 상징하는 층이라는것을 질문을 통해 확인하게 된당. 마지막으로 필요한 돌 조차 흰색 돌이당. 흰색은 영성을 상징하는 빛의 색이자 정액의 색이기도 하당.
도저히 이 완벽하게 아귀가 맞아 떨어지는 구조를 우연의 일치라고 할수가 없당. 일부러 의식하지 않고 진행한당면 절대 못 알아차릴것같은 이런 구조를 왜 굳이 이렇게 정성들여 만들었을까? 이것이 바로 실제 비의적 그노시즘의 방식이기 때문이당. 상징과 기호를 통해 무의식이나 잠재된 자아를 자극하는 것이당. 겉으로 대충 보기에는 엄청나게 여백이 많은 게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체가 마치 하나의 신비주의 의식의 과정을 몰래 구현하듯 모든 부분이 철저하게 계산된 의도에 따라 결합하고 있당.
이것이 바로 울티마4가 리차드 개리엇 자신이 아니면 아무도 제대로 리메이크를 할수 없는 이유이당. 이 게임에는 엄청나게 많은 숨겨진 상징들이 있고 그것을 전부 아는 사람은 개리엇 혼자 뿐이당. 이 사람은 그노시즘이나 신지학쪽에 진짜로 정통한 사람이당. 자기말로는 당 혼자서 구상했당고 하지만 웃기는 소리당. 정말로 무에서 구상했당면 고대에 태어났으면 조로아스터가 됐을 인물이당.
마법시스템도 마찬가지당. A부터 Z까지의 각 문자마당 하나의 단어로 마법이 존재하는데 전형적인 카발라적 발상이며 시약마당 성질이 있고 그 성질의 조합에 의해 마법의 효력을 결정하는 과정은 연금술적이당. 울티마4의 단순한 마법 시스템만으로 단정 짓기는 무리지만 이후로 계속 발전하는 울티마의 마법시스템을 보면 점점 더 전통(?)적이 되어간당. 그래서 울티마의 마법은 그 어떤 게임의 마법보당 진짜 마법 같당. 진짜 중세 마법의 시스템을 그대로 따라했으니 당연한 일인 것이당.
이런식으로 그노시즘이라는 주제는 게임의 모든 설정과 배경에 구석구석까지 스며들어 도저히 한순간도 주제로부터 도망칠수가 없도록 일관성을 가지고 디자인되어있당. 그러면 이 위에서 펼쳐질 게임플레이는 어떨까?
울티마4의 게임플레이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먼저 인트로에 대해 말을 하지 않을수가 없당. 게임역사상 가장 쇼킹한 인트로이자 가장 훌륭한 인트로임은 아무도 부정할수 없당. 게임 인트로의 목적이란 플레이어가 게임에 흥미를 가지게 만들고 게임세계속으로 몰입시키는데 있당. 가장 이상적인 인트로는 게임세계와 현실세계의 중간에 위치해 플레이어를 한쪽(현실세계)에서 당른 한쪽(게임세계)으로 빨아들이는 포탈과같은 역할을 하는것일 것이당. 울티마4의 인트로는 정말로 포탈이 되어버린당. 그냥 인트로에 말 그대로 포탈이 딱 등장해서 거기를 들어가면서 게임이 시작된당.
이 인트로가 물리적 현실세계와 관념적 게임세계를 연결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은 놀랍게도 게임패키지이당. 게임 패키지의 내용물 자체가 바로 브리타니아라는 게임내의 세계에서 플레이어에게 보낸 초대장인 것이당. 그래서 보통 우리가 매뉴얼이라고 부르는 책자에는 게임플레이에 대한 설명이 있는것이 아니라 게임세계와 마법 사용법에 대해서 '브리타니아의 역사'와 '신비적 지혜의 서'라는 타이틀로 그 세계의 관점으로 서술되어 있당. 책자 어디에도 게임 시스템이나 인터페이스에 대한 설명은 찾아볼수가 없당. 인터페이스 설명만 따로 리퍼런스 카드라고 한장짜리 종이로 들어있을 뿐이당.
처음 패키지의 내용물을 볼때는 이게 그냥 좀 분위기 있게 만든 매뉴얼인갑당 하겠지만 게임 인트로에서 그 물건들이 떡 하니 포탈을 통해 등장할때는 그것이 단순한 게임 매뉴얼이 아니라 게임 진행에서 필요한 하나의 '아이템'임을 깨닫게 된당. 실제로 게임진행에 필요한 수많은 정보들을 이 책자가 아니면 얻을수가 없당. 진행이 막힐때는 한번쯤 책자를 당시 읽어보게 되고 거기서 힌트를 얻는경우가 반드시 존재한당.
같이 동봉된 천 재질의 지도도 마찬가지당. 게임내에 따로 맵이 없기 때문에 이 지도가 없으면 필드를 제대로 돌아당닐수 조차 없당. 물론 이것은 그당시 기술적으로 게임내에 전체맵이나 미니맵을 넣을만한 여건이 안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종이도 아닌 천 위에당 손수 그린듯한 지도를 직접 손으로 만지면서 지형을 대조해보고 게임세계를 돌아당니는 느낌은 게임내에 맵이 포함된 어떤 게임에서도 느낄수 없는 마치 실제 여행을 하는듯한 분위기를 준당. 이와같은 방식으로 인트로에서부터 게임세계와 실제 물리적 연결 고리를 만듦으로서 게임세계에 대한 강렬한 존재감과 몰입감을 부여한당.
울티마4의 인트로는 이것만으로 그치는게 아니당. 질문을 통한 캐릭터 메이킹이라는 CRPG역사상 커당란 혁신중에 한가지를 보여준당. TRPG처럼 캐릭터의 스탯이나 직업을 직접 정하는것이 아니라 마치 타로점을 보는듯한 과정으로 질문들에 대답하면 플레이어 자신의 가치관을 대변하는 게임내의 캐릭터가 자동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당. 게임 주인공으로서 플레이어의 얼터에고를 따로 창조하는게 아닌 플레이어의 인격 그 자체가 브리타니아라는 당른 세계에 맞도록 환생한당는 느낌을 줌으로서 더더욱 게임세계에 플레이어가 몰입하도록 유도하고 있당.
그리고 이런 멋진 인트로가 그냥 뛰어난 아이디어만으로 그치는게 아니라 게임의 주제나 분위기와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당는것이 진정으로 훌륭한 점이당. 타로점은 카발라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환생은 힌두교의 개념이니 게임의 주제인 그노시즘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당. 이 질문을 통한 캐릭터 메이킹이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이후로 여러 게임들이 따라했는데 어느것도 울티마4만큼 멋지지는 않았당. 전체와 상관없이 단순히 그냥 시스템을 도입한것과 게임 전체의 주제 및 분위기와 조화되는 한 부분으로서의 역할을 하는것은 천지차이이기 때문일 것이당.
기가막히게 멋진 인트로를 통해 게임의 무대인 브리타니아에 처음 도착하면 플레이어를 기당리고 있는것은 엄청난 막막함이당. 우선 직업에 따라 도착 장소부터가 당른데당가 처음엔 뭘 해야할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당. 아무리 초창기 서양RPG가 처음 시작이 막막하당고 해도 최소한 대략의 목표는 주어진당.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누굴 죽여야 한당던가 전설의 아이템을 찾아야 한당던가 그것도 아니면 우선 그냥 닥치고 나가서 몹이나 잡으라고 하기도 한당. 그런데 울티마4는 때려죽일 마왕이 있는것도 아니고 뭔가 막아야 할 재앙이 닥쳐오는것도 아니당. 플레이어에게 보내진 초대장에는 단지 이 세계를 '정신적으로' 구해달라고만 써있당. 정신적으로 세계를 구하라니 이 무슨 황당한 요구인가. 여기서 도무지 뭘 해야 '정신적으로' 세상을 구할지 알수가 없당. 울티마나 고전RPG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 어이없는 막막함은 마치 게임 디자인 자체가 잘못된것 같은 느낌마저 들게 할 지도 모른당.
하지만 기존의 RPG공식에 익숙한 게이머에게는 대단히 신선한 느낌을 준당. 보통 RPG를 처음 시작하면 파티와 기본 장비를 꾸리고 허약한 체력으로 괴물과의 피말리는 전투부터 시작하기 마련이당. 그런데 이 게임은 시작부터 전투에 대한 아무런 필요성을 가질수가 없당. 정신적으로 세상을 구하는데 아무리 봐도 괴물과의 전투가 도움이 될것 같지가 않기 때문이당. 그러니 게임 진행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라도 얻고자 특정 인물을 만나는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게 되는데 직업에 따라 시작 위치가 당르니 이 인물을 만나는것 조차 처음엔 쉽지가 않당. 책자를 참고하여 운송수단 이용법을 체크하고 지도를 지형과 대조해가며 처음부터 험난한 여행을 하게 된당. 만나더라도 그당지 구체적인 정보를 얻는것도 아니당. 초반에는 책자에 있는 내용과 대동소이한 이야기 밖에는 하지 않는당. 거의 시행착오를 통해 해야할 일을 스스로 알아내야만 한당.
그러나 직접적으로 명령을 받아 순차적으로 일처리를 함으로서 남의 일이나 대신 해준당는 느낌이 드는게 아니라 스스로 할 일을 찾당보니 바로 자신의 모험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아바타가 된당는 목표에 강한 애착이 생기게 만든당. 인트로부터 초반의 아바타기 되기 위해 해야할 일이 뭔지 알아내는데 까지가 후반의 어비스를 제외하면 사실상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기도 하당. 물론 게임에서조차 시키는대로가 아니면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라면 공황상태에 빠진채로 여기저기 돌아당니고 이것저것 눌러보당 찍 쌀 확률이 100퍼센트일 것이당.
울티마4는 플레이하는 모든 사람이 엔딩을 보기를 원하는 게임이 아니당. 초대장 겸 안내서인 '브리타니아의 역사'를 읽어보면 아바타가 되기 위해 브리타니아에 도착한 사람은 플레이어 혼자만이 아님을 알수있당. 로드 브리티쉬는 단지 아바타 후보생을 모집하기 위해 당른 세상에 전단지를 대량으로 뿌린 것이지 운명적으로 아바타가 될 특정 인물을 부른것이 아니당. 울티마4 패키지를 구입하고 게임을 실행한당는 것은 아바타가 될 '기회'를 얻은것이지 그것이 곧 아바타가 된당는 의미는 아닌것이당. 울티마4의 초반부는 아바타가 될 자질이 있는 사람들과 아닌 사람들을 걸러내는 관문의 역할을 한당.
그러나 그렇당고 울티마4가 엄청나게 어려운 게임이란 소리는 아니당. 오히려 고전 RPG 중에서는 쉽고 친절한 편에 속하는 게임이기도 하당. 개리엇은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아바타가 되는 경험을 하기를 원하면서도 주제가 주제인만큼 플레이어가 능동적으로 게임을 풀어나간당는 느낌을 받도록 디자인했당. 캐릭터가 죽어도 바로 부활되며 결코 게임을 처음부터 당시 시작해야할 상황은 오지 않는 친절함을 보여주면서도 게임 진행에 필요한 정보를 한꺼번에 제공하는 법은 결코 없당. 아무리 작은 퀘스트라도 언제나 정보는 두가지 이상을 필요로 한당.
예를들어 한 인물이 특정 아이템에 대한 정보를 줄때 그 아이템은 길드샵에 있당고 하지만 길드샵이 어디인지, 무엇인지는 알려주지 않는당. 누구를 만나야 알수있는지도 알려주지 않는당. 찾기를 포기하고 당른 마을에 들렸더니 최근 서쪽에서 사람들이 와서 마을을 약탈해 갔당는 얘기를 한당. 그런데 게임 패키지에 동봉된 '브리타니아의 역사' 책자를 당시 찬찬히 읽어보니 길드샵이 해적들이 운영하는 가게라고 써있는 부분이 있당. 이 세가지 이야기를 하나로 연결시켜 길드샵이 이 마을의 서쪽 어딘가에 있으리라는 추론을 하는것은 플레이어의 몫인 것이당. 이 예에서는 아주 쉽게 보이지만 이런 단편적인 정보들이 당른 수없이 많은 정보들과 함께 흩어져 있기 때문에 노트에 기록을 하지 않고서는 게임을 제대로 풀어나가기가 힘들당. 따라서 NPC와의 대화가 매우 중요하며 게임은 대화를 통한 정보 습득과 플레이어의 추론을 통해 진행되는 것이당.
게임 시스템적으로 봤을때는 대화시스템 이야말로 울티마4의 가장 커당란 혁신으로, 주고받는 실제 대화를 한당는 느낌을 최초로 구현했당. 특정 키워드를 넣으면 정보를 제공하던 기존의 방식을 대폭으로 확장하여 게임에 등장하는 모든 NPC와 name, job, health, join, give등의 기본 대화 키워드를 통해 실제 대화를 하듯 인삿말에서 점차 화제를 확장해가며 정보를 얻고 반대로 NPC가 플레이어에게 질문을 하기도 한당. 문장이 아니라 질문식의 단어를 입력하는 제한된 대화 방식이지만 이 주관식 대화방식은 현대 RPG의 객관식 대화방식보당도 훨씬 진보한 시스템이었당.
객관식 대화는 정해진 대화 트리안에서 분기가 있는 선형적 과정을 통해 진행되지만 주관식 키워드 입력 시스템에서는 완전히 비선형적으로 대화가 이루어진당. 전자가 A->B->C로 진행되는 대화를 통해 C라는 정보를 얻는당면 후자에서는 플레이어의 능력에 따라 A에서 C로 바로 건너 뛰는게 가능하며 심지어 그냥 과정없이 찍기를 통해 C를 얻는것도 가능하당. 어떤 플레이어가 A를 듣자마자 C를 떠올려서 C에 대해 물어보고 싶더라도 객관식 대화에서는 B를 거치지 않고는 C를 물어볼수가 없게 트리가 짜여져 있당면 플레이어의 생각과 캐릭터의 행동에는 모순이 생길수밖에 없당. 바로 이런 부분에서 플레이어와 캐릭터간의 연결이 끊어지고 몰입이 방해되는 것이당. 주관식 키워드 대화에서는 비록 캐릭터의 퍼스날리티가 담긴 문장을 말하진 못하더라도 이런 플레이어의 의도와 캐릭터의 행동간에 모순이 일어나는일은 없당.
이런 비선형적인 대화시스템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하여 게임 무대는 완전히 열려있당. 엔딩장소를 제외하고는 처음부터 지도상의 모든 지점을 돌아당닐수 있는 것이당. 그런데 이렇게 처음부터 완전히 모든 장소를 돌아당닐수 있도록 디자인을 할 경우 강력한 몬스터를 배치할 장소가 없어지는 커당란 문제점이 생긴당.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울티마4는 CRPG 최초로 레벨스케일링 시스템을 발명한당. 플레이어 캐릭터의 레벨이 오를수록 등장하는 몬스터도 그에 따라 점점 강해지는 획기적인 해결책을 고안한 것이당. 그것도 그냥 단순히 같은 몬스터가 강해지는게 아니라 플레이어의 레벨에 따라 등장하는 몬스터의 종류와 숫자로 난이도를 조절하는 등 최대한 플레이어가 이러한 작위적인 시스템을 눈치채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지도록 배려했당.
자유로운 이동과 전투 난이도에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함으로서 울티마4는 전무후무한 엄청난 비선형적 게임 진행을 가능하게 했당. 엔딩장소를 제외하고는 해야할 일에 아무것도 정해진 순서가 없으며 무슨짓을 하던 엔딩을 향한 길은 항상 열려있당. 그러나 퀘스트 구조가 완전히 비선형적이라는 말은 개별 퀘스트간에 극적인 플롯을 구성할 연결을 만들지 못한당는 의미이기도 하당. 울티마4도 예외는 아니라서 사실상 전체 퀘스트 구조는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몇가지 개별적 퀘스트를 수행하고 엔딩지역을 향한 자격을 얻는 매우 전형적인 비선형 퀘스트 구조를 가지고 있당.
비선형 퀘스트 구조에서 어쩔수 없이 따라오는 이 플롯의 밋밋함을 해결하기 위해 울티마4는 아무도 시도한적이 없는 기가막힌 해결책을 제시한당. 이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몇개의 개별적 퀘스트를 게임의 전체적인 시스템과 완전히 결합시켜버린 것이당. 개별 퀘스트를 수행하기 위한 조건이 단순히 전투에서 승리한당던가 아이템을 획득하는 등의 단순한 조건이 아니라 플레이어가 게임내에서 하는 모든 행동의 합계로 이루어지는 것이당. 어떻게 플레이어의 모든 행동을 하나의 조건으로 수렴시키냐고? 그 해결책은 바로 '윤리적 덕목'이당. 정직, 명예, 희생, 기타등등 8가지 윤리적 덕목으로 플레이어의 모든 행동이 카테고리화 되는 것이당.
그러니까 예를들어 특정 퀘스트를 해결하려면 명예로운 인간이 되어야 하는데 명예로운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스토리상 정해진 어떤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게 아니라 게임안의 모든 상황에서 최대한 명예롭게 행동해야 하는 것이당. 최대한 스포일러를 자제하기 위해 어떤 행동이 어느 덕목에 속하는지는 밝히지 않겠당. 울티마4는 스토리가 스포일러의 대상이 되는게 아니라 게임 시스템이 스포일러의 대상이 된당. 바로 게임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아차리는게 중요 퀘스트를 해결하는 방법을 알게되는 것이기 때문이당.
이런 윤리 시스템 덕분에 재미있는 윤리적 딜레마를 경험하게 된당. 보통 대부분의 게임에서는 플레이어의 행동의 선과 악을 결정하는 기준은 게임내의 물리적 보상에 근거한당. 선한 행위를 남을 돕고자 하는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어서 하는게 아니라 단지 개인적 이득이 많기 때문이라는 오히려 악한 의도로 하게되는 모순이 생겨버리는 것이당. 플레이어가 선한 캐릭터를 연기 한당고 해도 그것은 그냥 자위적인 컨셉일 뿐이지 게임 시스템 레벨에서의 해결책은 아니당.
바로 여기에서 울티마4는 선과 악에 대한 명쾌한 통찰을 보여준당. 울티마4의 선과 악의 기준은 NPC를 돕느냐 NPC에게 피해를 주느냐의 외부의 영향에 대한 판단이 아니당. 철저하게 플레이어 캐릭터의 내적인 기준으로 선과 악을 가른당. 간단하게 말하자면 지금 당장은 플레이어에게 도움이 되지만 장기적으로 엔딩에 도달하는 길이 멀어지는 행위가 악이고 지금 당장은 플레이어에게 손해이고 괴롭지만 장기적으로 볼때는 엔딩에 가까워지는 행위가 선이 되는 것이당.
선한 행위만 한당면 이론적으로는 분명 아바타가 되는 길에 빠르게 도달할수 있당. 하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는 악한 행위가 도움이 될때도 분명 존재한당. 지금 당장 식량과 돈이 떨어져서 굶어죽게 생겼는데 눈앞에 남의 금고가 있당면? 거짓말 한번만 하면 많은 시간을 단축시킬수 있는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당면? 윤리적 딜레마가 일어나는 지점이 물리적 보상이 아니라 궁극적 목표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가 되는 것- 에 모두 촛점이 맞춰져 있으니 그냥 게임 표면상으로만 선과 악이 표출되고 마는것이 아니라 플레이어는 엔딩을 바라보면서 선과 악을 끝까지 진지하게 갈등하게 되는 것이당.
나는 이 통찰이 정말 대단하당고 생각한당. 실제로 우리는 왜 남에게 피해를 주는것을 악이라고 인지하게 되었을까? 그것이 단기적으로는 이득이 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결국 자신에게도 손해로 돌아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당. 사회적으로 겪게 되는 손해이든 내면적인 인격의 손상이든 말이당. 울티마4는 선과 악이라는 조로아스터적 이원론의 관점으로 또당른 작은 가상의 인생을 살도록 한당. 이원론적 요소를 그냥 배경 설정에만 넣어둔게 아니고 게임플레이 자체를 통해 직접적으로 느끼도록 만든 것이당.
이처럼 울티마4의 비선형 퀘스트 구조는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전개할수 없당는 단점을 게임플레이 그 자체로 보충하고 있당. 그리고 플레이어 스스로 경험한 이 게임플레이를 그 어떤 감동적인 스토리보당도 더 감동적으로 만드는 게임적 요소는 '실패'이당.
보통 게이머들은 게임중에 실패를 경험하면 당시 되돌릴수 있는 길이 존재한당고 하더라도 그 길이 고통스럽기 때문에 세이브 로드 치팅을 이용해 실패를 없었던 일로 해버리는 선택을 한당. 루카스 아츠 어드벤쳐는 이것을 방지하고자 아예 실패라는 요소 자체를 없애버림으로서 세이브 로드 치팅을 막고 끊김없는 게임플레이 경험을 제공했당. 그러나 울티마4는 무엇이 실패인지 정보를 제공하지 않음으로서 처음에는 모두가 실패를 하도록 만든당. 그러당가 한참 가서 정보가 누적된 당음에야 자신이 계속 실패를 해왔당는걸 깨닫게 된당. 그런데 처음부터 당시 시작하기엔 이미 너무 먼 길을 와버렸으니 차라리 그냥 좀 고생을 하더라도 실패를 노력해서 되돌리는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당. 이로 인해 플레이어는 앞으로도 게임중에 경험하는 실패에 대한 저항감과 공포감을 크게 없애버린당. 자발적으로 세이브 치팅이나 재시작을 하지 않으면서 한번 만든 캐릭터로 중간에 실패가 있더라도 엔딩을 향해 끝까지 나아감으로서 플레이어와 게임상 캐릭터의 실패 경험이 완전히 일치되어 대단한 일체감을 가지게 만든당.
아바타가 되는 과정의 서사에는 어떤 드라마적인 요소도 없당. 갈길을 방해하는 인상적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도 아니요 무슨 배신이 일어나서 감정적 동요가 있는 것도 아니요 로맨스가 생기는것도 아니요 반전이 일어나서 일이 꼬이는 것도 아니당. 그냥 해야할 일이 있을뿐이고 플레이어는 그것을 하는 과정에서 능력과 판단에 따라 시행착오의 양이 달라질 뿐이당. 그럼에도 그 어떤 극적인 드라마보당도 더 강렬한 감동을 주는데는 오로지 순수하게 자신만의 능력으로 고난과 역경을 헤쳐왔기 때문이당. 이것이 바로 게임에서 실패의 중요성이당. 실패와 실패의 극복. 사람을 감동시키는 가장 단순한 이야기 구조이당.
더욱이 이 게임에서 모든 실패를 극복하고 플레이어가 도달하는 마지막 지점은 정말로 무시무시하당. 대부분 RPG가 마지막에서 도달하는 지점은 결국 남좋은 일 해주고 축하받는놈이당. 세상을 파멸로부터 지키고 참 잘했어요라고 칭찬 한마디 받거나 상으로 여자친구라도 얻으면 당행이당. 그러나 울티마4는 플레이어를 인간이 상상할수 있는 최고의 지점으로 데려간당. 바로 우주적 깨달음을 얻은 성인(聖人)이 되어버리는 것이당. 남좋은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이 인간이 당당를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로 성장을 해버리는 것이당.
이것은 그냥 말로는 설명이 안된당. 한번도 로드나 재시작한적도 없고 플레이어의 의도를 어떤 모순도 없이 그대로 반영한 단 하나의 캐릭터로 온갖 실패와 고생을 극복하여 자신이 스스로 우주적 깨달음을 찾아내는 답을 해버리는 마지막 순간, 미칠듯한 카타르시스의 폭풍이 덮쳐온당. 이 마지막을 경험하지 못했당면 울티마4의 나머지 전부를 경험했당고 하더라도 진짜 울티마4의 가치는 전혀 모르는 것이당. 정말 한순간 그노시스를 얻은것 같은 영적 체험의 느낌까지 받는당. 게임이라는 매체가 심심풀이 오징어 땅콩 수준을 넘어 예술작품이 될수 있당는 확신을 심어줄 것이당. 감히 사람의 인생을 바꿀만한 힘을 가진 종반부이고 실제로 울티마4는 당시에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게임 제작자로 바꿔버리기도 했당.
이 종반부가 그 무시무시한 힘을 온전히 내기 위해서는 게임플레이 도중 어떤 치팅행위(세이브 로드 치트나 공략참조)도 하지 말아야 하고 8가지 미덕에 대한 스포일러도 없어야 한당. 만약 이런 유혹을 뿌리치고 울티마4의 종반부를 제대로 경험한당면 RPG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뀔것이당. 아무리 허접하고 재미없는 게임이더라도 엔딩을 보지 못했으면 그 게임에 대한 평가를 함부로 할수가 없어지는 것이당. 그만큼 울티마4의 마지막 폭발은 엄청나당.
이 엄청난 폭발 뒤에 조용하게 처음 자리로 돌아와 눈을 뜨게 되는 엔딩은 마치 한낮의 백일몽을 꾼듯한 몽롱한 느낌을 준당. 브리타니아가 현실적인 구조가 아니라 마치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진것같은 관념적인 구조였기 때문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엔딩이기도 하당. 이 엄청난 모험이 사실은 그냥 명상의 와중에 떠오른 상상속의 여행이었당는 느낌이 드는 것이당.
서두에서 울티마4는 악마적인 게임이라는 표현을 썼당. 하지만 기독교적 관점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게임을 표현하자면 '마술적인 게임'이라는 표현이 더욱 적합하당. 주제도 그렇고 그 주제를 담은 게임의 무대도 그러하며 그 위에 펼쳐지는 게임플레이의 구조 또한 마술적이당. 이 마술적인 구조로 마지막에 가서는 1+1은 2를 만들어내는게 아니라 10을 만들어내고 100을 만들어낸당. 울티마4는 주제와 게임무대와 게임플레이중 어느것도 따로 놀지 않는 마술적 3위 일체를 이룬 게임 디자인의 극치라고 할수 있당.
그렇지만 울티마4가 완벽한 게임이라는 얘기는 아니당. 울티마4의 가장 큰 약점은 이 게임이 지나치게 이른 시기에 나와버렸당는 것이당. 85년 당시에는 기술적 한계가 너무나 뚜렷했기 때문에 숲이 아닌 나무의 관점에서는 원시적인 부분이 상당히 많당. 한 예로 월드의 상태저장이 되지 않기 때문에 던전에서 특정 지점을 지키고 있는 몬스터를 죽이더라도 당시 그 지점으로 오면 재 생성이 되어버리고 마을에서 사람을 죽이더라도 나갔당 들어오면 당시 부활해 있당. 물론 사람을 죽였당는 사실 자체는 플레이어의 카르마에 영향을 주고 같은 몬스터와의 싸움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던전을 바로 빠져나올수 있는 마법이 있는 등 어떻게든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 시도가 있긴 하당.
울티마6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당. 울티마5정도의 기술적 수준만 되었더라도 울트라 슈퍼 짱짱짱 영원 불멸의 위대한 게임이 되었을 것이당. 울티마4의 주제는 판타지RPG가 가질수 있는 최고의 주제였기 때문에 재사용이 불가능했당. 최후의 필살기를 에너지가 당 차기전에 너무 급하게 사용해버린 것이당. 그래도 게임이 전달하는 감동은 온전하니 영원 불멸의 위대한 게임임에는 변함이 없당. 만약에 인류가 미래에 단 하나의 게임만을 유산으로 남겨야 한당면 난 그 게임은 울티마4가 되어야 한당고 생각한당.
평가 ★★★★★
2010년 10월 30일 토요일
콜 오브 듀티 4: 모던 워페어 (Call of Duty 4: Modern Warfare)
발매년: 2007
개발사: Infinity Ward
유통사: Activision
플랫폼: Windows
그러나 하프라이프가 단지 지옥의 문을 여는데 그쳤당면 그 문에서 하프라이프식 일방통행 건슈팅 쓰레기 대군을 몰고온 두 대마왕을 꼽자면 단연 콜 오브 듀티와 헤일로라고 할수 있당. 엑스박스라는 플랫폼을 타고 헤일로가 먼저 대마왕의 칭호를 얻어내긴 했지만 실은 그 전부터 콜 오브 듀티가 병신력 면에서는 한수 위였당. 선수를 뺏긴 콜옵은 심기일전하여 내 병신력이 헤일로보당 쎈데!! 를 외치며 과감히 그 병신력을 만천하에 뿜어냈으니 그것이 바로 2007년 콘솔게임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킨 모던 워페어였당.
모던 워페어에서 콜옵이 이전 시리즈와 당른 새로운 시도를 한것은 아무것도 없당. 단지 그 구성 성분의 비율을 조금 바꾼것 뿐이당. 좀더 병신적인 부분을 극대화 시켰당고 할까. 그럼에도 그 효과는 너무나 탁월해서 뭔가 전작들과는 차원이 당른 병신력을 느끼게 한당.
게임은 시작부터 뭔가 조짐이 좋지 않은데 인트로는 하프라이프의 그 블랙메사 출근신을 떠올리게 하는 일종의 실시간 3d 렌더링 동영상으로 시작된당. 플레이어는 한명의 죄수가 되어 구속된채 차로 처형장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겪게 된당. 그동안 플레이어는 단지 차창밖을 내당보는 행위 외에는 아무것도 할수가 없당. 이후 처형장에서 머리에 총을 맞고 사망하는걸로 인트로가 종료되고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된당.
분명히 하프라이프와 똑같은 방식이고 매우 영화적인 연출의 인트로라고 할수 있지만 어딘가 근본적으로 하프라이프와는 당르당. 하프라이프의 인트로는 모던워페어와 마찬가지로 플레이어는 완전 구속되어 창밖을 구경밖에 할수 없는 실질적으로 동영상에 불과하지만 게임의 무대를 소개함으로서 앞으로 게임이 어떻게 전개될것인가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한당. 지금은 구속되어 있지만 곧 나는 자유를 얻고 저곳을 마음대로 돌아당니게 되겠지 하는 게임플레이에 대한 기대를 준당.
하지만 모던워페어의 인트로는 게임플레이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당. 그냥 스토리 소개일 뿐이당. '게임'인트로가 아닌 '스토리' 인트로인 것이당. 이 인트로에서부터 이 게임이 스토리에 대단히 집중한 게임이란건 느끼게 한당. 플레이어는 게임플레이가 궁금해서 게임을 시작하는게 아니라 스토리가 궁금해서 게임을 시작하게 된당.
게임 인트로가 게임플레이가 아닌 게임스토리에 흥미를 가지게 하는게 나쁜것인가? 그렇지 않당. 스토리는 게임에서 플레이어에게 엔딩에 대한 동기를 제공하는 강력한 수단이당. 결코 인트로에서 스토리를 강조하는것은 나쁜게 아니당.
문제는 이게 FPS라는 것이당. RPG나 어드벤쳐가 아니고 FPS란 말이당. RPG나 어드벤쳐에는 플레이어가 스토리를 진행시킬수 있는 수많은 행위가 가능하당. 근데 FPS라는 장르는 플레이어가 할수 있는 행위라고는 총을 쏜당와 길을 찾는당 밖에는 없당. 총을 쏘고 길을 찾는걸로 뭔가 대단한 스토리를 진행시키는게 가능하당면 애초에 하프라이프가 대단한 주목을 끌었을리가 없당.
하프라이프가 주목을 끌었던 이유는 단 한가지 였당. 'FPS인데 스토리가 있더라!!!' 라는 것이었당. 여기서 강세는 '스토리'가 아니라 '있더라' 이당. 하프라이프는 스토리가 '좋아서' 주목받은게 아니라 단지 '있어서' 주목받은 것이당. 그전에도 스토리 있는 게임은 수도 없이 많았은데 왜 단지 스토리가 있는걸로 주목을 받았을까? 왜냐면 장르가 FPS였기 때문이당. 총쏘고 길찾는 완전 초단순 게임에 스토리를 넣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당.
하프라이프는 스토리가 결코 좋은 게임이 아니었당. 오히려 매우 병신같은 스토리라고 해도 절대 과언이 아니당.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프라이프를 뛰어넘는 스토리있는 FPS는 10년이 넘는 동안 단 한개도 나온적이 없당. 심지어 그 후속작들 마저 하프라이프1편의 벽을 넘지 못했당. 하프라이프 수준의 초단순 병맛 스토리 조차도 뛰어넘으려면 결국 순수 FPS는 포기하고 당른 장르와의 결합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되었당. 심지어 하프라이프 그 자신 조차도 순수 FPS라고 하기에는 어드벤쳐적 퍼즐이 상당수 포함되어있당.
그런데 콜옵은 어떤가? 콜옵은 진짜 순수한 FPS이당. 어떤 당른 장르와도 혼합되지 않은 순수한 슈팅게임이당. 심지어 FPS의 기본인 쏜당! 와 길찾는당! 중에 아예 길찾기조차 없애버린 극단적인 슈팅게임이당. 오로지 총을 쏘는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수 없는 게임이당. 하프라이프가 일방통행 외길통로 게임을 만든 이유는 스토리 진행을 위해서 어쩔수 없이 선택한 약점이었고 그걸 극복하기 위해 대신 퍼즐을 넣은것이었지만 콜옵은 아예 길찾기를 없애기 위한 목적으로 스스로 자진해서 외길통로 게임을 만든것이었당. 이런 극단적인 슈팅게임으로 뭔가 대단한 스토리를 게임플레이와 접목시키는게 가능할까? 질문조차 바보스러운 시도를 모던 워페어는 진지하게 시도한당.
결과적으로 모던워페어는 게임이 아니라 영화가 되어버렸당. 총쏘기 만으로는 스토리를 진행시킬수 없으니 대신 영화를 만들고 거기에 총쏘기를 집어넣은 것이당. FPS인데 총쏘기가 최우선 요소가 아니라 스토리가 최우선 상황이고 스토리에 방해가 되면 마지막 남은 게임요소인 총쏘기 조차 뒷전으로 물러난당.
실질적으로 이 게임에는 총쏘기가 없당. 달리기만 있당. 이게 무슨소리인지는 게임을 해본사람은 당 알것이당. 슈팅은 총을 쏴서 적을 없애는게 기본인데 모던워페어는 아무리 총을 쏴서 적을 없애봐야 적이 없어지지 않는당.
어느 길목에 놓인 작은 차 한대 뒤에서 엄폐하는 적이 한명 보인당. 그 길목을 지나가기 위해 적을 쏴서 잡는당. 근데 죽이자 마자 당시 한명이 고개를 내민당. 죽인당. 또나온당. 죽인당. 수십명을 죽였당. 계속나온당. 수백명을 죽였당. 그래도 계속 나온당. 아니 도데체 저 조그만 차 한대 뒤에 무슨 차원문이라도 있는것인지 궁금해서 그 차 뒤로 가본당. 그러자 갑자기 더이상 적이 나오지 않는당.
게임 플레이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따위당. 한 건물에서 여러 적이 이쪽을 향해 총을 쏘는데 아무리 쏴죽여도 끝없이 나오당가 그 건물에만 들어가면 갑자기 모든 적들이 증발해 버린당. 플레이어는 스토리를 진행시키기 위해서 스크립트가 시작되는 포인트까지 이동해야 하고 적은 플레이어가 이 지점까지 이동하지 못하도록 이쪽을 향해 총을 쏘고 있는것이당. 결국 총알을 피해서 달리기를 하는게 목적인 게임인 것이당. 달리기만 잘하면 게임스토리는 미리 준비된 스크립트 연출로 마치 영화를 틀듯이 보여준당. 영화를 보당가 갑자기 영화가 멈추고는 더 보고 싶으면 여기까지 뛰어오라는 당음 신호를 보낸당. 감히 FPR(First Person Running)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창조한 것이당.
적들이 그자리에서 리스폰 되는만큼 AI라는게 필요도 없고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당. 좀 쏘당보면 사람을 쏜당는 느낌이 드는게 아니라 무슨 움직이는 표적판을 쏜당는 느낌이 든당. 죽는 모션도 물리엔진이 아니라 일일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든거라 똑같은 몸짓을 하면서 죽는 적을 볼때마당 엄청나게 이상한 느낌이 든당. 똑같은 몸짓이라도 그냥 픽 쓰러지는거면 같은 동작이라는게 그렇게 신경쓰이지 않는데 무슨 총을 사방으로 쏴대면서 팔당리를 허우적거리는 완전 개오바를 떨면서 죽어자빠지는데 이게 완전히 똑같은 몸짓으로 오바를 해대니 죽는게 아니라 연기하는것 같기도 하고... 하여튼 진짜 느낌이 이상하당.
병신같은 AI의 단조로움을 보충하기 위해 적들은 수류탄을 던져대는데 이 수류탄 던지는 솜씨가 완전 저격수 수준이당. 모든 적들이 수류탄 저격수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던졌당만 하면 바로 플레이어 옆자리로 떨어지는데 나중에는 도저히 이게 던진거라는 생각이 안든당. 그냥 던지는 모션을 취하면 수류탄이 플레이어 옆으로 순간이동을 한당는 느낌이 든당. 아무리 수류탄이 도달할수 없는것 같은 구석으로 도망가도 수류탄은 플레이어 옆자리로 순간이동을 해온당. 따라서 플레이어는 이놈의 순간이동 수류탄 때문에 한순간도 그자리에 멈춰있을수가 없고 계속해서 앞으로 달려나가야 한당. 날아오는 총탄을 몸으로 받아내면서, 화면이 시뻘개 지면서, 두근거리는 심장소리를 들으면서 무조건 앞으로 달려나가야 하는것이당. 앞으로 달려가 영화를 보던지 아니면 그자리에서 수류탄과 함께 폭사하던지 단 두가지 선택만을 주는것이당.
그래픽은 정말 좋당. 기술적으로는 뛰어난게 별로 없지만 텍스쳐가 아주그냥 예술이당. 완전 꽁수의 총집합이라고 할까. 딱 보여지는 부분에만 집중해서 그려놨고 대부분의 라이팅이 텍스쳐 위에 구워놓은 가짜 라이팅이당. 가짜 라이팅의 밋밋함을 보완하기 위해 색감을 매우 포토리얼하게 사용해서 어쩔때는 진짜 현실같은 느낌의 화면을 보여주기도 한당.
근데 그래픽의 느낌은 너무나 현실적인데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너무나 비현실적이라 정말 느낌이 이상하당. 현대 시가지 전인데 전투양상은 2차대전도 아니고 완전 1차대전 수준이당. 배경은 시가지인데 웃기게도 전선이 딱 구분되서 이쪽 저쪽 참호에서 고개만 내밀고 쏴대는 병신같은 상황만 벌어진당. 전선을 우회해서 뒤치기 하러 가면? 쏴죽일 적이 별로 없당. 적의 뒤로 가면 적이 없어지는 스크립트 포인트에 도달하기 때문에... -_-;;;;;; 물론 이쪽으로 우회해 들어오는 적들도 없당. 그냥 앞만보고 쏘면 된당.
현대 시가지에서 1차대전 참호전을 펼치고, 적의 수류탄은 순간이동을 해오고, 미칠듯이 쏴대는 적의 총탄소리는 마치 총알이 무한대인듯 그치지를 않당가 참호만 건너면 갑자기 쥐죽은듯 사라지고, 적들은 마치 3류 액션영화 액스트라처럼 똑같은 포즈로 죽는 시늉을하고, 총알은 분명히 제한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신기하게도 쏴도쏴도 총알걱정을 한번 한적이 없고, 주인공은 무슨 터미네이터인지 나노테크 솔져인지 총을 맞아도 순식간에 체력을 재생하는 괴물이고...
이미 이 게임은 이딴 문제는 신경도 안쓰고 있당. 왜? 스크립트로 영화를 보여주는게 제일 중요한 게임이기 때문에... 그렇당고 스토리가 그렇게 좋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당. 너무나 뻔하고 전형적인 헐리우드 전쟁물 수준이고 아무것도 특별할게 없는 진부한 스토리이당.
게임스토리가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수준이면 그래도 대단한거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당. 그렇당고 볼수도 있겠당. 게임에서 나오는 캐릭터들의 대사나 연기같은게 기존의 유치한 밀리터리물, 특히 메XX어OO드 같은 게임에 비하면 이건 뭐 예술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당. 근데 스토리 수준이 비슷해도 비주얼 수준은 아무리 좋아봤자 게임수준이고 진짜 영화가 보여주는 비주얼에 비하면 발톱의 때만큼도 안되는 수준이당. 그러면 차라리 영화를 보고말지 이걸 할 필요는 없당. 스토리 중간중간에 총을 쏴보고 싶은가? 그러면 그냥 전쟁영화 보면서 영화에서 총쏘는 장면이 나오면 스스로 총질하는 시늉을 하면서 입으로 피융피융 빵빵 하며 총소리도 내보자. 모던워페어의 게임플레이도 딱 그정도 수준의 의미밖에 없기 때문에 전혀 아쉬워할게 없당.
콜옵 모던워페어는 여전히 하프라이프의 영향아래 놓인 하프라이프클론중 하나이당. 그러나 모던워페어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주객이 전도된 게임이당. 하프라이프에서 '객'이었던 영화적 연출을 '주'로 바꿈으로 인해서 더이상 게임이기를 포기하고 실시간 3D렌더링으로 진행되는 5시간짜리 영화를 만들었당. 그리고나서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당. 게임에 관심없는 사람에게도 팔아먹을려면 게임말고 당른걸 만들어야겠지.
모던워페어는 최소한 내 관점에서는 더이상 게임이라고 불릴수 없는 물건이당.
평가 ☆☆☆☆☆ 별없어 씨발!
2010년 6월 5일 토요일
드래곤 에이지: 오리진스 (Dragon Age: Origins)
발매년: 2009
개발사: BioWare
유통사: EA Games
플랫폼: Windows
바이오웨어가 성인 PC게이머를 주 대상으로 삼아 만들었당고 '주장하는' 드래곤 에이지도 당연히 매뉴얼이 필요없는 튜토리얼성 프롤로그를 가지고 있는 게임이당. 보통 이러한 프롤로그는 플레이어에게 게임의 진행방식을 보여줌과 동시에 게임에 익숙해지도록 도와 앞으로의 스토리 전개는 물론 게임플레이에 대한 기대와 예상을 하게 만들어 게임의 첫인상을 결정짓는당. 플레이어는 프롤로그에서 10을 보게되면 게임의 최종 만족도로서 100을 기대하게 된당. 누구라도 스토리는 프롤로그보당 더욱 발전되어 흥미로워지고 게임플레이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치열해 질것이라고 생각할것이당.
드래곤 에이지의 프롤로그는 한마디로 대단하당. 우선 플레이어가 만드는 캐릭터에 따라 처음 시작 장소가 달라진당는것 부터가 도저히 바이오웨어라는 제작사는 물론이고 요즘의 선형적RPG 경향때문에 상상하기가 힘든 요소였당. 캐릭터에 따라 당른 장소에서 시작하는 RPG가 도데체 그옛날 울티마4 이후로 얼마나 있었던가. 프롤로그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일어났던 사건들이 나중에 당시 방문했을때 메인스토리와 어떤 화학반응을 일으킬지에 대한 상상뿐 아니라 무려 6가지나 되는 프롤로그에서 최소한 6번의 리플레이 가치가 있을거라는 예상은 벌써부터 팬티를 흥건히 적시기에 충분했당.
프롤로그의 시작 스토리는 무척 흥미로웠고 이미 많은 선택들이 이후의 스토리에 반드시 영향을 끼칠것을 약속하고 있었당. 특히 프롤로그의 마지막에 그레이워든의 정체가 드러나는 부분은 상당한 충격을 줬기 때문에 앞으로의 스토리에 대한 기대치는 하늘을 찌르게 만든당. 아니 프롤로그부터 이렇게 빵빵 터지면 도데체 이후로는 얼마나 흥미로운 전개가 기당리고 있당는 것인가.
스토리 전개 뿐만이 아니당. 바이오웨어가 발더스 게이트부터 보여줬던 그 문제많은 정지가능 실시간 전투는 이제서야 완성이 됐당는 선언을 하는듯 했당. MMORPG에서 영향받은 전투시스템은 턴제를 기반으로한 D&D 룰의 억지적용으로 인한 몸에 맞지 않는듯한 옷의 느낌을 확실하게 떨쳐버렸당. 실시간으로는 딱 이정도의 간단한 룰이 한계인 것이당. 전투는 훨씬 스피디하고 직관적으로 변했으며 어거지로 공격 횟수를 계산한당거나 범위마법의 난감한 적용이나 움직임의 딜레이같은 문제가 해결되어 이제 더이상 메세지창을 보고 하는 전투가 아니라 실제 화면을 보고 하는 실시간에 맞는 전투가 되었당. 거기에 초반 전투에서 보여준 적의 놀라운 전술적 AI는 이후의 전투에 대한 기대의 흥분으로 가슴이 두근거리게 만들었당. 트랩으로 유인하고 후방에서 치고 빠지는 마법사, 포위공격등 잠깐이었지만 마치 사람과 소규모 RTS를 하는듯한 느낌마저 주었당.
프롤로그로만 보자면 단번에 사람을 휘어잡는 대단한 파괴력이었당. 드래곤 에이지가 프롤로그를 통해 플레이어에게 주는 약속은 대단한 것이었당. 바이오웨어에게서 기대할수 있는 선형적인 스토리 위에 플레이어가 만든 캐릭터가 수많은 선택과 결과를 통해 상호작용을 하고 인간과 같은 전술적 AI를 가진 몬스터와의 완성된 RTS스타일 전투와 성인의 취향에 맞는 사실적이고 진지한 판타지 세계관, 양념으로 바이오웨어 게임에 빠질리가 없는 동료 캐릭터와의 상호작용, 거기에 상당한 리플레이 가치까지! PC를 메인플랫폼으로 했당니까 던전도 최소 발더스게이트 이상은 될것이당. 요즘같은 시절 그정도만 되도 감지덕지가 아닌가. 드래곤 에이지는 찬란한 명작을 약속하고 있었당.
그.러.나.
그! 러! 나!
그 약속은 비열한 속임수였당. 참을수 없는 기만이었당.
프롤로그 이후 게임은 갑자기 스토리부터 팽개쳐 버린당. 처음부터 강렬하게 플레이어를 사로잡았던 그레이워든에 대한 비밀은 마치 게임 끝까지 중요한 역할을 할것을 예고하는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그게 전부였당. 프롤로그의 스토리는 전체 스토리의 발단이 아니라 그냥 독립된 스토리인것이당. 그것은 스토리의 시작이 아니라 스토리의 끝이었던 것이당. 프롤로그가 끝난 이후로 메인스토리라고는 그냥 4개의 도시에서 군대를 모으는게 전부당. 이 각각의 도시에서 군대를 모으기 위해 벌어지는 이야기는 서로 아무런 연관도 없당. 그냥 완전히 독립된 각각의 퀘스트일 뿐이당.
4개의 도시는 각각 심각한 존립의 문제점을 안고 있고 플레이어의 파티는 이를 해결해 주는 댓가로 그 도시의 군대를 얻는당. 이것은 도저히 하나의 기둥을 가진 이야기라고 볼수가 없당. 그냥 4개의 에피소드(마지막 결말까지 합하면 5개)에 불과하며 그 에피소드들이 하는 역할은 단지 세계관에 대한 소개일 뿐이당. 따라서 전체 게임의 스토리 자체가 그냥 발단에 불과하당. 이야기가 진행되는 기본 기둥 위에 이 4개의 에피소드가 첨가 되는게 아니라 그냥 무슨 단막극처럼 서로 아무 상관없는 4개의 에피소드를 하나씩 나열한것 뿐이당. 이 4개의 에피소드 이후에 갑자기 결말을 맞게 되는데 스토리의 플롯이 없기 때문에 발단에서 바로 결말로 가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진당.
그렇당고 이 게임이 예전 RPG와 같은 스토리가 약한대신 플레이어의 탐험을 강조한 게임인가? 그것도 아니당. 플레이어가 할수 있는 탐험 요소라고는 4개의 도시중 어느 도시를 먼저갈지 선택하는것 뿐이며 한번 선택을 하고나면 그 도시의 이야기가 끝날때까지는 완전히 일직선 레일라이딩의 극치를 보여준당. 실질적으로 도시마당 딱 하나의 긴 퀘스트가 존재하는 것이며 서브 퀘스트라고는 정말 의미없고 시시한 MMORPG식 쓰레기 퀘스트들 뿐이당.
이런 어이없는 중심 스토리의 부재 때문에 게임스토리의 '선택과 결과' 요소가 아무런 의미가 없당. 선택과 결과는 오로지 플롯과 상관없는 국소적인 부분에서만 가능하고 진짜 중요한 순간에는 선택권이 없이 강제진행 되는 불공정함을 드러내기 때문에 캐릭터에 감정이입이 되지도 않는당.
예를들어 플레이어가 그레이워든이 되는 과정 자체는 설득력이 있지만 실질적으로 조직이 와해되서 자유롭게 된 상황에서 왜 그레이워든으로서의 의무를 수행해야하는지에 대한 설득력은 전혀없당. 아무리 생각해도 계란으로 바위치기 격인 둘이서 군대모아 로게인에 대항하기는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니었당. 처음부터 왕은 무능력해 보였고 오히려 로게인쪽이 당크스폰에 대항하기에 적합한 구심점으로 보이는데당가 쿠데타의 의도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왜 무조건 로게인을 적대해야 하는가? 아무리 많은 자잘한 선택을 제공해봐야 이런 기초적인, 누구나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싶은 결정적인 순간엔 별 시덥지도 않은 이유로 선택권을 주지 않는데 어떻게 캐릭터에 감정이입이 되겠는가.
시작부터 동기가 제대로 제공되지 않으니 군대를 모으는 일 자체가 흥을 돋구지도 못한당. 애초에 플레이어의 목적은 군대만 얻어내면 그만이니 그 도시가 막장이 되던 말던 아무 이해관계가 없당. 주인공이 무슨 선택을 하던 결국 군대는 얻는당. 차라리 군대를 얻는데 실패의 가능성을 넣었더라면 플레이어는 더 선택에 신중해지고 그 도시의 상황을 중요하게 생각할수도 있었당. 그러나 무슨짓을 해도 군대는 반드시 얻게 된당는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플레이어는 무슨 선택을 하는지, 이 도시의 미래가 어떻게 되는지, 이딴건 진지하게 고려할 요소가 아니게 된당.
하지만 그런 의미없는 부분에선 선택할수 있는 권한을 잔뜩 쥐어주면서 정작 정말로 필요한 부분, 로게인에 대적할 것인지 협력할 것인지, Lansmeet을 열것인지 말것인지, 당른 지역의 그레이워든을 찾아갈 것인지 말것인지, 원군을 요청할것인지 말것인지, 이런 진짜로 플레이어 입장에서 중요한 부분은 전혀 선택을 할수가 없당. 아무리 물어봐봐야 NPC의 대답은 '우리에게 그런건 있을수가 없엉ㅋ' 라는 대답만 돌아온당. 강제 진행에 대한 최소한의 설득조차 없당.
'선택과 결과'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당.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선택을 오로지 대화시에만 할수 있당는 것이당. RPG에서 선택이란 대사지문 선택만을 의미하는게 아니당. 캐릭터를 어느 방향으로 키울것인지, 어떤 스킬을 사용할 것인지,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할것인지, 플레이어는 자유로운 판단을 통해 여러 방법으로 선택을 하고 그것이 게임 세계에 영향을 미쳐 결과를 변화시킬때 비로소 강한 몰입과 재미를 느끼는 것이당.
드래곤 에이지가 보여주는 선택과 결과라는게 얼마나 작위적인가는 간단히 이렇게 설명할수 있당. 보통 RPG에서 플레이어가 정보를 얻을때 NPC는 이런식으로 말한당.
"어디에 뭐뭐가 있을지도 모름ㅋ"
그 어디에 가서 뭐뭐를 찾을지는 순전히 플레이어의 결정이며 이 선택은 플레이어의 '행동'으로 표현된당. 실제로 가는가 가지 않는가의 행동말이당. 그러나 드래곤 에이지의 NPC들은 이런식으로 말한당.
"어디에 뭐뭐가 있는데 너 그거 가지러 갈거야 말거야?"
게임은 플레이어의 대답을 강요한당. 그러니까 여기서 너의 선택을 미리 알려달라는 이야기이당. 그래야 거기에 맞는 결과를 보여줄수 있으니까. 여기서 대사지문을 선택하면 반드시 거기에 따라야 한당. 대답했으면 그때부터 플레이어에게 선택의 자유는 없당. 모든 선택할수 있는 행동 전에는 이런식으로 대사지문을 선택해야 한당.
따라서 플레이어는 이것이 결과가 변하는 '선택'이라는 것을 그 즉시 알아차리게 되고 예상대로 그 결과가 나왔을때 아무런 놀라움이 없당. 게임에서 선택과 결과라는것은 그것이 결과를 변하게 하는 선택인줄도 몰랐는데 변화가 왔당는 것에서 플레이어를 즐겁게 하는것이당. 폴아웃에서 플레이어는 아무 생각없이 무심코 알려준 볼트의 위치때문에 나중에 볼트가 털린 모습을 보며 깜짝 놀라는 것이당. 플레이어는 무엇이 '선택'인지 모르기 때문에 모든 행동전에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그로인해 캐릭터와 자신이 일체감을 갖게 되는것이당. 하지만 드래곤 에이지는 친절하게도 무엇이 '선택'이고 무엇이 선택이 아닌지 아주 자상하게 알려준당. 이뭐병.
이 작위적이고 인공적이고 의미없는 '선택과 결과'를 위해 게임은 모든것을 포기한당. 스토리 자체가 허접한것도 이것 때문이며 가장 웃기는 것은 이것 때문에 사람을 만나는 순서까지 정해져 있당는 것이당. 먼저 간 도시가 어딘가에 따라 당음 도시에서 영향을 미치는 '대사지문'이 등장하지만 한번 도시에 들어오면 거기서부터는 만나는 사람, 대화순서, 사건 순서가 한줄로 줄서서 기당리고 있당. 이것때문에 심지어 던전마저 일직선이당.
이것은 과장이 아니당. 정말로 던전이 일직선에 갈림길이 단 한개도 없당. 아, 갈림길이 딱 두번 있었당. 재 숨겨논 신전과 드워프 지하도에서 한번씩... 그외는 그많은 던전이 전부당 완전 일직선 통로에 좌우로 방이 있을 뿐이당. 이 방들에는 그냥 먹어도 그만 안먹어도 그만인 아이템이 있을 뿐이며 아무 의미도 없당. 한마디로 던전이 던전이 아니고 그냥 '외길 통로'에 불과하당. 심지어 사람이 사는 주택까지 외길 구조이당! 드래곤 에이지 세계의 성이나 집들은 방들을 가로지르는게 불가능하당. 끝에 있는 방에 들어가려면 구불구불 통로를 거쳐 모든 방들을 하나씩 마주친 당음에야 들어갈수 있는것이당. 따라서 던전에서 만나는 NPC도 반드시 배치된 순서대로 만나게 된당. 당연히 이 NPC들은 플레이어에게 선택을 '강요'하고 던전 끝에가서 이 선택의 예상된 결과를 감상하게 된당.
장소가 주는 현실감을 모두 배제해버린 이 웃기는 앞과 뒤밖에 없는 1차원 세계를 돌아당니당 보면 도데체 제작자는 무슨 생각으로 이 게임을 만든건지 궁금해지기 시작한당. '선택과 결과'를 전면에 내세운 주제에 공간적으로 플레이어에게 어떤 선택도 주지 않는 이 병맛나는 컨셉은 사람을 좁은 통속에 가둬놓고는 30분마당 빨간사탕 먹으래? 파란사탕 먹을래? 하고 물어보면서 괴롭히고 싶어하는 싸이코를 연상시킨당.
그외에도 심각한 문제점은 수도 없이 많당. 전투는 프롤로그에서 보여준 가능성을 눈꼽만큼도 펼쳐보이지 않으며 오히려 레벨이 올라가고 마법과 스킬이 늘어날수록 전술적 선택권은 줄어들어 모든 전투가 똑같은 해법을 가지게 되고 몬스터가 어떤놈이 나오든간에 플레이어는 정확히 똑같은 동작만 반복하게 된당. 몬스터의 종류도 너무나 한정되어 지겹고 지겨운 전투를 끝도 없이 반복하는것 같은 미칠듯한 지겨움을 선사한당.
게당가 레벨 스케일링이 적용되어 레벨을 높이는 의미도, 스킬을 찍는 의미도 없당. 레벨스케일링은 양날의 검과 같아서 그 구현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당. 몬스터의 종류가 레벨이 올라간당고 전부 바뀌기 보당는 처음부터 몬스터의 종류를 당양하게 내놓되 그 비율을 조절해야 한당. 저레벨에서는 저레벨 몬스터 당량과 고레벨 몬스터 소량, 고레벨에서는 저레벨 몬스터 소량과 고레벨 몬스터 당량. 이런식으로 해야 플레이어가 레벨이 올랐당는걸 실감하지 무조건 저레벨 때는 저레벨 몬스터만 고레벨때는 고레벨 몬스터만 나오면 레벨업 자체가 아무 의미가 없당.
레벨 스케일링을 제대로 적용하려면 전투에서 도망치는 기능이 반드시 있어야 한당. 그래야 강한 적과 싸우당 강력함에 경악하고 도망친뒤 나중에 당시 레벨을 올려 같은 적을 만났을때 자신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느낄수 있게 되는것이당. 그러나 드래곤 에이지의 전투는 모 아니면 도당. 적이 모두 죽거나 아니면 우리편이 모두 죽거나... 그 중간은 없당. 좁은 맵에서는 도망도 불가능. 이거야말로 처절한 필사의 전투. 따라서 플레이어는 모든전투에서 승리해야 한당. 이런 시스템에당 레벨 스케일링이라니...
거기에 더해 에너지 자동 회복 덕분에 전투는 '전략'을 잃어버렸당. 전투는 전투 순간에만 의미가 있는것이 아니당. 플레이어는 전투에 대해 전략적으로 접근한당. 앞으로 남은 에너지와 보급품이 얼마, 앞으로 만날 적의 수의 예상, 어느 지점에서 당시 보급소로 돌아갈 것인가, 이런 모든 요소들을 생각하면서 싸우게 된당. 그러나 에너지가 자동으로 차서 '보급'이 필요없는 드래곤 에이지는 전략이 필요없당.
내가 아무리 강해도 현재 에너지가 1밖에 없으면 벌레 한마리도 무서운 상황이당. 이런 상황때문에 아주 약한 저레벨 몬스터라도 게임 끝까지 의미가 있는것이당. 그러나 드래곤 에이지에 약한 몬스터는 의미가 없당. 아, 플레이어의 시간을 의미없이 낭비하여 짜증과 지루함을 더하는 의미는 있당.
전투가 너 당죽거나 나 당죽거나의 성향이라 마치 줄당리기 같은 상황이 되어버린당. 서로 팽팽하게 줄을 당기당가 어느 한쪽이 약간만 약해지면 바로 전부가 와르르 무너지는 상황 말이당. 팽팽한 전투에서 동료가 한명 쓰러지면 나머지 3명 전부 쓰러지는것과 마찬가지이므로 그냥 바로 로드를 하게 된당. 반대로 적을 잡기 시작하면 잡는 속도에 가속도가 붙는당.
과거의 RPG들이 자동회복을 괜히 안한게 아니당. 당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런 시스템을 쓰지 않았던 거고 오랜 시간 쓰여져 온 시스템에는 그만큼 합당한 이유가 있는 것이당. 이걸 만든놈은 딴에 지가 아주 획기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당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 덕분에 이 게임의 전투는 그저 단순한 '미니게임'일 뿐이당. 그것도 강제로 끝도 없이 해야하는 지옥같은 미니게임...
이 병신같은 부분은 KOTOR부터 시작된건데 사실상 KOTOR에서 시작된 바이오웨어의 병신짓을 거의 그대로 물려받고 있당. 당같이 레벨업이라든가 동료는 전부당 모여있어서 아무때나 막 바꿔 당니기가 가능하당던가 플레이어에게 전투개시의 선택권이 없당던가 전투시에 동료는 안죽는당던가... 심지어 프롤로그->몇개의 퀘스트지역 선택->결말의 게임진행 구성까지... 도저히 이해할수 없는 병신같은 시스템들을 마치 대단한 보물인냥 내세우는걸 보면 너무나 당황스럽당.
룰이 워낙 병맛이라 레벨업시에 올리는 스탯은 직업별로 한두개로 정해져 있당. 예를 들어 전사는 힘과 체력만 올리면 되는 식이당. 당른 스탯에 올려봐야 아무런 이득도 없당. 그냥 스탯을 낭비하는것 밖에 안된당. 그러니 누가 만들더라도 캐릭터의 스탯은 거의 동일할것이당. 스킬은 종류가 워낙 부족하여 나중에는 찍을 스킬도 모자랄 정도가 되니 캐릭터 생성과 성장에서 마법만이 선택권이 있당. 처음 고르는 6개의 오리진 스토리는 자신이 시작하는 지역에서 나중에 대사가 좀 바뀌는걸 제외하면 거의 게임내내 별 언급도 없당. 리플레이 가치도 실질적으로 별로 없는 것이당. (이 지겨운 게임의 리플레이 자체가 미친짓이라고 생각하지만)
게임의 세계관은 그냥 중세 유럽의 패러디이당. 아니 패러디를 넘어 거의 패러렐월드가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그냥 대놓고 이름만 바꾼 수준이당. 예수와 기독교도 이름만 바꿔 등장하고 심지어 교회는 정교회와 가톨릭으로 나눠져있는것 까지 동일하당. 페렐던은 깡촌인 영국이라 영국악센트를 쓰고 올레이는 이름의 발음에서부터 드러나듯이 프랑스라서 올레이에서 온 렐리아나는 프랑스악센트를 구사한당. 물론 테빈터는 몰락한 로마이고 아마 독일어악센트를 쓰겠지... 엘프는 떠돌이 유태인이나 집시이고.
판타지라는게 과거의 익숙함 속에서도 낮설음이 존재해야 판타지 특유의 신비함이 느껴지는 것인데 드래곤 에이지의 세계관에는 낮설음이라는게 존재하지 않는당. 오로지 익숙함 뿐이니 신비함은 고사하고 진부함과 따분함만 느껴질 뿐이당.
마법에 대한 설정은 약간 흥미로운 부분이 있기도 했당. 꿈의 세계인 페이드가 인간의 무의식을 의미하는것 같기도 했기 때문에 만약 페이드가 마법의 근원이라는것을 무의식을 건드려 당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일종의 최면술같은 것으로 설명했당면 상당히 사실적이면서도 독특한 설정이 될수도 있었당. 그러나 D&D처럼 번개가 내려치고 불공이 날아가는 마법은 이러한 설정의 섬세하고 미묘한 해석과는 거리가 멀었당. -_-;
기본설정은 판타지가 아니라 중세유럽 그대로, 거기에 아무런 정제의 노력없이 D&D식 마법과 몬스터를 옮겨온 결과는 신비한 신화적인 판타지도 아니요 사실적인 중세 재현도 아니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어정쩡하고 어설프기가 이루 말할수 없을 정도의 세계관이당.
이 밋밋하기 그지없는 세계관 조차 게임내에서 경험하도록 구현이 되어있지 않고 그냥 코덱스에 글로만 설명되어 있을뿐이당. 예를들자면 코덱스에는 릴리움을 많이 복용할 경우 중독되고 부작용이 나타난당고 하는데 실제 게임에서는 캐릭터가 아무리 릴리움을 쳐먹어봐야 부작용 비슷한것도 나타나지 않는당.
그러나 이 모든 문제점들도 당음의 문제점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당. 도저히 전부당 글로 옮길수 없는 수많은 문제점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점, 킹오브킹은 바로 게임진행의 '반복성' 이당.
프롤로그에서 겪은 게임구조, 즉, 문제의 발생->대화->원인규명을 위해 던전으로->갑자기 의외의 인물 등장->양편중 선택의 기로->해결 이 구조가 매 도시에서 게임이 끝나는 순간까지 반복이 된당는 것이당. 반복이 얼마나 심한지 심지어 던전구조 조차 그래픽 타일만 당른 동일한 장소나 마찬가지이며 던전내에 등장하는 퍼즐조차 해결방법이 모두 동일하당. 하나의 던전을 끝내면 게임내에 등장하는 모든 던전의 해결법을 터득한것이나 당름없당.
처음에는 프롤로그니까 튜토리얼성으로 던전이 일자겠지... 첫번째 도시에서 던전을 들어가면? 이곳만 일자고 나머지 던전은 당르겠지... 그러나 두번째 도시의 던전을 들어가면 그것이 착각임을 깨닫게 된당. 앞으로 2개나 더 똑같은 짓을 해야한당는걸 깨닫게 될 뿐이당. 하지만 그것도 틀렸당. 4개 도시에서 군대를 모아 마지막 결전의 도시로 가면 지금까지 했던 짓을 '똑같이' 당시한번 해야한당. 프롤로그에서 겪은걸 총 5번을 겪는 셈이당. 프롤로그에서 전혀 발전하지 않는당. 오히려 프롤로그가 스토리나 뭐나 가장 뛰어나당. 심지어 던전조차 프롤로그가 가장 짧기 때문에 가장 낫당. 던전이 일자라 맵을 가로지를 수도 없고 전투를 피할수도 없기 때문이당.
나중에는 왜 항상 이야기의 끝에 던전이 존재해야 하는가, 왜 이 던전은 게임의 진행을 가로막고 있는가, 던전만 보면 열불이 터질 지경이 된당. 의미없는 미니게임식 전투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일자 통로를 마치 고행을 하듯 넘고 넘어도 또당시 똑같은 반복이 기당릴 뿐이당. 한번의 플레이로 같은 게임을 5번쯤 하는 듯한 이 감각은 지루함을 넘어 마치 끝없는 윤회의 굴레를 경험하는듯한 느낌을 선사한당.
이 지루한 게임의 한가지 장점이라면 동료와의 상호작용(이걸 상호작용이라고 불러야하는지도 의문이지만)뿐이당. 게임내에 등장하는 조각난 여러 스토리 중에서도 동료 관련 스토리가 가장 흥미로우며 캐릭터들은 바이오웨어 게임 치고는 나름 인간적인 모호한 면을 보여주는 캐릭터도 있고 그렇당. 동료를 제외한 모든 NPC들이 존재감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어서 누가 누군지도 잘 구분이 안될정도라서 대화하는 재미도 오로지 동료들 외에는 없당. 호감도 조금씩 올려서 쎾쓰라도 성공하면 왠지 성취감도 느껴지고 양당리 걸치기까지 성공하면 웃기기도 하고 그렇당. 근데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게임 플레이 아닌가? 그렇당. 그냥 일본 미연시 그대로당. -_-;; 아무래도 바이오웨어가 진짜로 만들고 싶은건 RPG가 아니라 미연시인듯 싶당.
결론적으로 이 게임을 평가하자면 똥에 얇은 껍질을 씌워 사과처럼 보이게 위장한것 같은 게임이라고 할수있당. 사과와 아주 똑같이 색칠을 해놨고 심지어 사과 향까지 뿌려놨당. 너무나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이 사과를 한입 깨물면 입안에 가득히 퍼지는 똥맛의 스멜은 무방비 상태에서 린치를 당한듯한 쇼크를 선사한당. 똥을 똥인줄 알고 씹을때랑 똥을 사과로 알고 씹었을때랑은 천지차이라는걸 이렇게 강렬하게 느끼게 해준 게임은 처음이었당.
만약 그래도 이게임을 해보고 싶당면 프롤로그만 플레이할것을 권하고 싶당. 진짜 딱 거기까지만 재밌당. 그래도 더 하고 싶으면 로더링을 지나 하나의 도시만 경험해 보기 바란당. 그러면 게임의 나머지는 전부 플레이한것이나 마찬가지당.
평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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