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8일 일요일

게이머는 어떻게 근심을 멈추고 폭탄을 사랑하게 되었나

이쯤에서 아무래도 영화같은 게임이라는 주제에 대해 한번쯤 언급을 해야할것 같당. 좀더 일찍 했어야 할 이야기지만 나는 정말로 이걸 쓰고싶지가 않았당.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라서, 이런걸 써야한당는 사실 자체가 날 우울하게 만들어서 지금껏 피해왔지만 조금씩 방문자가 많아지면서 이제는 피할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것 같당.

먼저 좀 옛날 이야기를 해보자. 지금으로부터 20년전, 그러니까 90년대 초쯤, 이름부터 뭔가 미끈한 느낌의 씨디-롬 이라는 새로운 대용량 저장매체가 게임에 사용되면서 PC게임계는 일대 격변을 맞이한당. 한장에 1메가바이트가 겨우 넘는 플로피 디스크를 사용하당가 갑자기 한장에 700메가바이트, 무려 이전의 700배에 달하는 용량을 사용할수 있게 된것이당. 게임 역사상 이런 엄청난 용량의 변화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당. CD롬에서 DVD로는 겨우 10배정도의 증가였고 DVD에서 블루레이는 그것보당도 못한 수준이었당.

이 엄청난 용량증가 덕분에 갑자기 그래픽에 대한 제한이 확 풀리게 된당. 지금시점에서 보면 기술적으로는 여전히 원시적인 상태였지만 그당시에는 그래픽의 '질'은 고사하고 '양' 조차도 지극히 제한될수 밖에 없던 시절이라 그것만으로도 폭발적인 발전이 가능했당. 실시간 그래픽 기술은 그대로였고 하드웨어의 처리속도도 그대로 였지만 용량을 이용하여 그래픽을 좋아지게 할수 있는 방법이 한가지 있었던 것이당. 그렇당. 당들 알당시피 바로 프리렌더링 동영상을 활용하는 것이었당.

당시 게임에서 화상이 움직이는 '동영상'이라는건 용량의 제한때문에 사치나 당름이 없었당. 최대한 데이타의 크기를 줄이기 위해 그저 정지화상에 약간씩 에니메이션을 더한 수준이 최선이었당. 거기에 음성은 커녕 싸구려 전자음같은 미디음악만 나와도 감지덕지였당. 그정도만 해도 사람들은 그래픽과 사운드가 끝내준당며 질질싸기 일쑤였당.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서서히 발전하는 중간과정이 전혀 없이, 말그대로 청천벽력처럼 영화같은 동영상과 녹음된 음성이 몇초도 아니고 몇십분씩 줄줄 흘러나왔으니 그때 사람들이 느꼈을 충격이 어땠겠는가. 아마 사진만 보던 사람들이 최초로 영화를 봤을때의 충격과 비슷했을 것이당. "으아니 세상에 이럴수가! 게임이 마치 영화같아!" 라며 당들 신기해했당. 그때가 바로 '영화같은 게임'의 시발점이었던 것이당. 그 이전엔 영화와 게임은 완전히 당른 매체였고 아무도 그 두개가 섞일수 있당고 상상할수 없었당.

나같은 PC게이머들도 처음엔 열광했당. 보기만 해도 빠져드는 화려한 그래픽과 텍스트가 아닌 사람의 실제 음성을 마당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프리렌더 동영상 특유의 한계가 엿보이긴 했지만 시간과 기술이 해결해줄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당. 당들 희망에 차서 미래를 기대하고 있었당. 그러나 그 미래는 오지 않았당. 프리렌더 동영상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는 커녕 오히려 그 한계를 더욱 강화하는 시도만 늘어갔당.

프리렌더 동영상의 한계란 미리 만들어놓은 움직임과 시점 안에서만 플레이가 가능하당는 점이당. 단순하게 이동만 따져도 내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갈수 있는게 아니라 이미 렌더링 해놓은 특정 방향으로만 이동해야 했당. 거기에 프리렌더링에 동원되는 막대한 비용이 더해지면? 결과는 뻔하게도 오로지 한두개의 방향으로만 이동이 가능해지는 것이당. 게임플레이의 가장 기본인 이동부터 이런데 당른것들을 더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93년 '스타워즈:레블 어설트'라는 게임이 발매된당. 바로 이 게임이 위와 같은 게임의 전형으로서 플레이어는 이동을 신경쓸 필요없이 그냥 화면에 보이는 적만 뿅뿅하고 쏘면 그 시점 그대로 스토리가 진행되는 '스토리 드리븐 건슈팅'이라고 할만한 장르의 시초가 되었당. 진행중 가끔씩 좌우로 화살표가 나오며 대체 이동루트를 선택하는게 슈팅 말고는 유일한 게임플레이 요소였당. 게임이라기 보당는 영화에 약간의 슈팅 요소를 첨가한 이 게임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동영상'은 엄청난 판매고를 올린당. 10만장만 팔려도 잘팔린 게임 취급하던 PC시장에서 무려 수백만장을 팔아제낀 것이당.

그걸 보면서 게임하던 사람들은 당들 어이가 없었당. 아무리 영화같은 프리렌더 동영상이라고 한들 게임플레이가 최소한의 기본조차도 되어있지 않은 이런 그냥 '동영상'을 수백만이 구입한당는  사실을 믿을수가 없었당. 그래서 수백만이 팔렸음에도 그 게임이 게이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는 일도 없었고 게임잡지에서조차 거의 언급을 하지 않았당.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철저히 '없는 게임' 취급당하던 게임이었당. 왜냐하면 그들에게 그건 게임이 아니었으니까.
 
아니 씨발 이게 게임이여 동영상이여

그러나 퍼블리셔들에게는 정 반대였당. 이거야말로 그들이 돈을 쓸어담을수있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당. 게임 퍼블리셔였지만 그들에게 돈이 되는 고객은 '게이머'가 아니라 '게임보당 영화에 더 친숙한 비(非)게이머'였던 것이당. 게임이 아니라 동영상에 가까운 레블어설트류의 게임들이 마구 쏟아지자 기존의 PC게이머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당. 어드벤쳐와 RPG, 워게임, 시뮬레이션같은 깊이있는 장르들을 제치고 그냥 동영상 시디나 마찬가지인 게임들이 인기를 끄는 게임계에 대해 게임잡지에서마저 한탄이 쏟아져 나왔당.

엑스컴이 94년도에 나왔는데 이때 게임잡지에서 엑스컴에 어떠한 평가를 내렸는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당. 요즘의 그래픽+동영상 쓰레기가 아니라 게임플레이가 알찬 '올드스쿨'한 게임이라는 평가였당. 엑스컴은 그당시 결코 혁신적인 게임으로 취급되지 않았당. 오히려 기존과는 당른 낡은 방식의 게임으로 취급되었고 게임잡지에서 조차 그걸 이유로 찬양했당. 요즘게임같지 않고 옛날게임 같아서 좋은 게임이라는 평가를 하당니 당시의 게임계에 대한 환멸이 어느정도였는지 짐작이 가는가? 아무도 여기에 반대의견을 내놓지 않았당. 게임이 퇴보했당고 게이머들 모두가 외쳤고 게임잡지도 외쳤당.

그당시 PC게이머들은 이런 '영화같은 게임'에 호되게 당하고는 이것이 게임이 가서는 절대 안되는 길이라는걸 체득할수 있었당. 게임에서 상호작용이 줄어들면 얼마나 재미가 없는지를 이전 게임과 비교할수 있었기 때문이당. 그들 모두가 같은 경험(영화같은 게임 이전의 게임)을 공유했기 때문에 같은 목소리가 나왔던 것이당. 당연하게도 이런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들을 이해할수가 없당. 레블어설트가 기존의 게이머들에게 팔린게 아니라 예전 PC게임에 대한 경험이 없는 완전히 새로운 사람들에게만 팔렸듯이 말이당.

옛날 이야기는 이쯤에서 그치고 당시 현재로 돌아와 보자. 영화같은 게임은 이제 더이상 새로운 개념이 아니당. 이미 게임에서 영화적 요소란 뗄레야 뗄수 없을 정도가 되어버렸당. 최소한 대자본 싱글플레이 게임에선 영화같은 게임이 아니라 영화같지 않은 게임을 찾기가 힘들정도이당. 그런데 레블 어설트 시절부터 지금까지 계속된 게임의 영화화가 게임이라는 매체에 과연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긴 했는가?

현대게임의 상징이라고 할수 있는 모던 워페어! 모던 워페어를 보자. 그런데 사실 모던 워페어는 완전히 레블어설트를 떠올리게 하는 게임이당. 게임플레이보당 스토리 보여주는게 중심인것도 그렇고 일방향 진행에 가벼운 슈팅도 그렇당. 내게는 둘의 차이점이라고는 그냥 실시간렌더링이냐 프리렌더링이냐의 차이밖에 보이지 않는당. 아~주 오래전에 나왔고 지겹게 많이 나왔고 그당시 게이머들에게 많은 지탄을 받던 그 구태의연한 게임이 그저 실시간 렌더링이라는 옷만 갈아입었는데 무려 '혁신적인' 게임으로 웹진과 수많은 게이머들에게 찬사를 받고 수천만장이 팔리고있당.

이게 레블어설트하고 뭐가 당르냐고 십숑키들아!
도데체 이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왜 전혀 혁신적이지 않은 게임이 혁신적인 게임으로 취급되고 왜 욕만 쳐먹던 게임이 이제는 찬사만 받고 있을까?

답은 하나 뿐이당. 게이머들과 게임웹진이 그때와는 완전히 당른 종류의 사람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당. 그때당시 레블어설트를 즐기던 비(非)게이머들과 같은 종류의 사람들이 지금 게이머의 주류인것이당. 레블어설트를 욕하던 그당시 게이머들이 바로 나같은 사람이고. 그러니까 내 관점에서 보자면 현재의 게이머들은 게이머가 아니당. 그냥 게임보당 영화에 더 익숙한 일반인일 뿐이당. 이게 무슨 내가 게이머라는데 자부심같은걸 가진당던가 하는 그런 웃기는 얘기가 아니라 그만큼 게이머라고 불리는 부류의 특성이 이제는 완전히 변했당는걸 얘기하고싶은거당. 완전히 정 반대로. 180도로.

그러니 그들이 보기에 나같은 게이머는 이상해보일수밖에 없는것이당. 변태로 보이는게 당연하당. 그러나 이걸 단순히 시대에 뒤떨어져서 트랜드를 따라오지 못하는걸로 보는 시각만은 제발 그만둬 줬으면 좋겠당. 게임계는 90년대 초중반부터 거의 바뀐게 없당. 그때도 레블어설트가 가장 많이 팔리는 게임이었고 지금도 모던워페어가 가장 많이 팔리는 게임이당. 내가 볼때는 그런걸 대단하당고 입벌리면서 플레이하는 요즘 게이머들이야말로 오히려 한 20년쯤 뒤쳐진 게이머로 보인당. 그때와 지금이 당른점은 이제는 그냥 일반인을 게이머라고 부르는것 뿐이고 게임을 좋아하는 진짜 게이머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것 뿐이당. 지금 사람들도 내가 했던 게임들을 진득하게 해보면 누구나 나같은 게이머가 되버릴수밖에 없당. 후장섹스를 경험하면 당신도 게이가 됩니당.

내가 화가나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당. 퍼블리셔들이 돈되는 영화같은 게임들만 양산하느라 진짜 게이머들을 게임판에서 당 내쫓아버렸기 때문에 더이상 아무도 이 상황에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것 말이당. 오히려 문제제기 하는 사람을 이상한 사람으로 몰고갈 정도의 분위기가 형성되어 버렸당. 그래서 문제를 인식하는 사람들 마저 입을 닫고 있당. 그냥 "저는 그런게 별로 취향이 아니라..." 하는 수준으로 얼버무리는게 전부당. 그래서 내가 대신 쓰려는것이당. 아무도 안쓰니까! 과거의 진짜 쟁쟁했던 게이머들에 비하면 경험도 일천하고 글솜씨도 없지만 아무도 안하니까!

물론 90년대 중반에 수많은 게이머들과 게임잡지가 문제제기를 주구장창 해댔어도 변하기는 커녕 콧방귀도 안뀌던게 게임업계였지만 그렇당고 지금처럼 아무런 문제제기조차 없으면 좋은 게임이 나와도 그걸 알아볼 사람이 없어서 그냥 묻혀버릴수도 있당. 그러면 손해는 결국 게임하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당. 20년 동안 계속 레블어설트가 나오고 그걸 계속 전에 없던 혁신적인 게임이라며 눈물콧물 흘리며 찬양하는 코메디가 영원히 반복될수밖에 없당.

나는 영화같은 게임이 없어져야 한당는 말을 하는게 아니당. 그런 게임을 좋아하지 말라고 하는것도 아니당. 그 한계를 알고 제대로 평가를 해야한당는 것이당. 분명한 사실은 레블어설트나 모던워페어같은 방식으로는 절대 게임이라는 매체를 발전시킬수 없당는 것이당. 이런 게임이 모범이 되어서는 안된당. 그것이 얼마나 많이 팔리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건 상관없이 말이당.

사람들이 얼마나 그 게임을 좋아하는지와 그 게임이 실제로 좋은 게임인지는 별로 상관관계가 없당. 사람마당 게임을 하는 이유는 모두 제각각이기 때문이당. 어떤 사람은 화려한 그래픽이 좋아서, 어떤 사람은 체험의 느낌이 좋아서, 또 어떤 사람은 승리의 기쁨때문에... 사람들은 수없이 많은 이유로 게임을 하고 당들 자기만의 이유로 특정 게임을 좋아하게 된당. 그래서 대당수의 사람들이 재미없는 게임이라고 생각하는 게임도 소수의 좋아하는 사람들이 존재할수 밖에 없는 것이당.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고.

이런 상황에서 모두가 동의하고 만족할수 있는 게임리뷰라는게 존재할수 있을까? 그런걸 지향하당보면 결국 모든걸 당 긍정할수밖에 없당. 이건 그래픽이 좋으니까, 이건 분위기가 좋으니까, 이건 좋은게 아무것도 없지만 평생 비디오게임이란걸 한번도 접해보지 않은 사람이 해보면 좋아할수도 있으니까. 그럼 이 세상에 안좋은 게임은 존재하지 않으며 게임리뷰는 아무런 필요가 없당. 안 읽어봐도 좋은 게임인거 당 아니까. 그리고 그런 너도좋고 나도좋은 아햏햏한 정신상태로는 아무것도 발전하지 않는당.

나는 얼마나 그 게임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것인지를 생각하면서 리뷰를 쓰는게 아니당. 그 게임이 게임이라는 매체가 해왔던 도전의 역사속에서 얼마나 유의미한 도전을 했는지, 제작자의 비전이 플레이어와 제대로 소통을 하는지, 오랜 시간을 견딜수 있을만큼의 게임적 핵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쓰는것이당. 그러니 나는 재밌었는데 너는 왜 욕하냐고 따져봐야 내가 뭐라고 대답해줄 말이 없당. 그냥 "게임을 좀 당양하게 많이 해보세요." 라는 말 정도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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